시험 삼아 외국 언론의 칼럼 하나를 번역 전재해 봅니다. 저작권 문제가 불거질 시 곧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출처는 알자지라 통신의 오피니언란입니다.(출처) 글이 좀 치밀하지 못한 구석이 있기는 한데, 그런 건 적절히 걸러 보시길..
(삽입된 사진은 모두 위키 공용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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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이티를 약화시키고 있는 서방
-Yves Eng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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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에 일어난 파괴적인 지진으로 인해 23만 명 이상의 아이티인들이 죽었고, 10만 채 이상의 가옥들과 대략 천 개 정도의 학교 및 여러 건물들이 전파(全破)되었다. 아이티의 이런 처참한 장면들은 TV 스크린을 채우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사태 반 년 후, 아이티의 상황은 기묘하게도 친숙하다.


대통령궁은 지진이 있을 때 부서져서 현재는 그저 돌 무더기가 되어 있다. 이곳에 얼마 전에 엄청난 파괴가 있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면서 말이다.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아직 파편들로 덮여 있다. 대략 130만 명의 사람들은 수도 안팎의 1200개 남짓한 임시 텐트 캠프에 머문다.


어떤 추정에 따르면,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잔해의 5퍼센트도 제거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포르토프랭스에만 2천만 제곱미터의 돌더미가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잔해를 처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천 대의 트럭이 매일 일을 한다고 해도 이 일을 끝마치려면 3~5년이 걸릴 텐데, 현재로서는 300대 미만의 트럭밖에 작업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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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대통령궁)

정치적 장애물


재건을 위한 기술적 장애물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정치적 장애물은 이보다 훨씬 거대하다. 지진 직후 100억 달러의 국제적 지원이 약속되었지만, 6월 30일까지 2010년 분인 25억 달러의 10%만이 전달되었을 뿐이다. 정치적 논쟁으로 인해 많은 원조금이 지급 유예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를 필두로 한 국제사회는 아이티 의회가 재건 문제에 관해 사실상 정부 통제를 포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18개월 간의 긴급상황법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원조금 지급 유예는 수십억 달러를 사용할 권한을 갖고 있는 아이티 재건 과도 위원회(Interim Commission for the Reconstruction of Haiti)에 대한 국제적 통제를 확실히 하기 위해 계획된 압박 전술의 일환이다. 아이티인들은 이 술책들에 적대적이지만, 국제사회는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위원회의 다수 의석이 외국 정부와 국제 금융기관을 대변했다. 이런 의석은 26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구호에 필요한 자금은 여전히 세계은행 및 여타 국제기관들이 융통해야 한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아이티의 장막스 벨리브(Jean-Max Bellerive) 수상은 재건위원회의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이들은 6월 17일 처음 만났다.


아이티 약화시키기


이 위원회 구성을 결정하기 위한 서방 정권들의 강권적 전술은 아이티 정부의 신뢰성과 능력에 흠집을 내기 위한 오래된 정책의 연장선 상에 있다. 20년 동안 워싱턴과 그 동맹자들은 의도적으로 아이티 정부를 약화시켜 왔다.


신자유주의 이론을 인용하며 그들은 다수 국영 기업의 민영화와 농업 생산물의 관세 감축을 요구했다. 이는 아이티의 국내 식품 생산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고,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를 자극했다. 이런 정황이 지진의 파괴 상황과 사상자 수를 악화시켰음은 물론이다.


또 워싱턴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외국계 기업들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정부들을 안정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2004년 4월 29일, 미국, 프랑스, 캐나다는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의 선출된 정부를 전복했다. 이는 끔찍한 정치적 탄압의 물결과 지속적인 UN 점령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때 이래로 아리스티드는 남아프리카로 강제 추방당해 있고, 그의 팡미 라발라스(Fanmi Lavalas; 아이티 크레올 읽는 법이 틀렸다면 지적 바람) 당은 선거 참여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당은 올해 11월 28일에 있을 선거에도 참여 금지당할 예정이다.


바로 이 모두가 아이티가 재건 작업을 수행할 신뢰성과 능력이 있는 기관이 부재한 상황에 처한 원인이다.


NGO 공화국


르네 프레발(Rene Preval) 대통령의 정부는 워싱턴과 지역 엘리트에 굴복하여 국가의 다수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포기해야 했다. 최근 프레발은 팡미 라발라스를 금지하려는 운동을 옹호했지만, 여전히 이 당은 아이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다.


1만 명의 UN "평화유지"군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2004년 정변 후 2년 동안 UN군은 아이티 경찰의 가난한 공동체와 팡미 라발라스 당의 복권을 요구하는 평화로운 시위에 대한 폭력적 공격을 자주 지원했기 때문이다. UN군은 또 포르토프랭스의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반복적인 공격-"갱"의 진압을 명분으로 하는-에 착수하면서 폭력적인 강화(講和) 캠페인에도 참가했다.


2005년 1월 6일과 2006년 12월 22일, 너무나도 끔찍한 두 번의 습격이 있었다. 이 때문에 시테 솔레유(Cité Soleil)의 인구가 밀집된 슬럼 지역-아리스티드 지지의 보루-에서 35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고 수십 명이 다쳤다.


2008년 4월, UN군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주 목적이 아이티에서 대규모의 경제적 분리를 옹호하는 것에 있음을 증명했다.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폭동 와중에 그들은 시위자들을 얼마간 죽여서 저항하는 이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외국계 기금을 지원받는 NGO들 역시 지난 20년 동안의 아이티 정부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긴 과정에 기여해 왔기 때문에 별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구호 물자를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꾸준히 활동할 거리가 생기고 있는데, 이들이 아이티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NGO들의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물론 그들이 얼마간 잘 해 내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모든 학교와 사회적 서비스가 외국의 민간 자선단체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면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라. 포르토프랭스에는 "타도 NGO"라고 적힌 그래피티가 있을 정도다.


2주 전, 아이티 저널리스트 바드네 피에르(Wadner Pierre)는 이렇게 불평했다.
"NGO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존경받는 아이티 시민들을 그들이 위험하고 폭력적이며 야만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함으로써 모욕하고 차별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이 사람들의 힘과 용기를 무시하면서도 텐트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2개월 동안 포르토프랭스 등에서 일련의 주요한 시위가 있었다. 시위대는 아리스티드의 복귀와 팡미 라발라스 당의 배제를 끝내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시위대는 느려터진 재건 속도와 6년이나 지속된 외국의 점령에 대해서도 화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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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프랭스 거리를 순찰하는 UN군 차량)

그들을 돕는 법


그러면, 어떻게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할 것인가?


첫째로, 어떤 진지한 재건 사업도 아이티 정부에게 주택 공급, 교육, 의료 관리 및 여러 사회적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원조는 신자유주의적 조정 절차, 노동력 착취, 비정부 자선 기구와는 별개여야 하며, 아이티 정부와 공공 기관에 대한 투자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로, 농업이 사실상 파탄 상태에 놓인 아이티의 시골 지역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티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해외의 지원 정책이 농업 부문의 저임금 노동을 선호한 결과로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예로, 미국은 아이티 시장에 쌀을 헐값으로 팔고 있다. 30년 전 아이티는 자국 쌀 소비량의 90%를 자급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비율이 10% 미만이다.


셋째로, 팡미 라발라스의 선거 참여와 아리스티드의 귀환이 허용되어야 한다.


오로지 아이티인들이 아이티인들의 일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될 때에야 실질적인 재건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