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노조와 민주노총, 그리고 이들의 철학과 투쟁노선을 옹호한 자칭 진보 정치세력은 철저하게 패배하였다.
특히 쌍용차 노조에 대해 (조흥은행의 쌍용차 해외 매각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정부에 대해) '공적자금 투입하라'는 발상을 제공하고, '도장공장 점거를 통해, 10~20만 명의 생존권을 인질로 잡으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줄 것이라는 비전을 제공한 진보/좌파 이론가, 전술가들의 지독한 무지, 무책임이 폭로되었다.

쌍용차 투쟁이 이렇듯 소모적이고 격렬하게 진행 된 이유는 이렇다.  쌍용차 사태라는 비극을 연출한 우리 시대의 무지, 탐욕, 증오는 이런 것이다.
 
첫째, 쌍용차 노조와 한국 완성차 공장 노조가 지난 이 십여 년 간의 투쟁을 통하여, 자신들의 기여(노동의 양과 질)에 비해 근로조건을 너무 높여 놓는 바람에 정리해고의 충격이 너무나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즉 쌍용차 노조원의 근로조건은 협력업체나 산업의 평균적 근로조건에 비해 너무 높이 올라간 반면에 사회안전망은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유연안정시스템으로 유명한 덴마크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근로조건의 평균 높이가 1미터(GDP 대비 배수)라면, 사회안전망은 0.7미터 두께(실업 수당 등)의 장대높이 뛰기 선수 보호용 매트리스를 깔아놓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시장이 매우 유연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별로 없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 미국, 일본은 평균 근로조건의 높이는 덴마크와 비슷하지만 깔아놓은 매트리스는 뜀틀 매트리스 수준 정도는 된다 고나 할까?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덴마크와 미국, 일본의 중간 정도이다. 북유럽국가들은 덴마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쌍용차의 경우 평균 근로조건의 높이가 3미터라면 사회안전망은 요가용 얇은 매트리스 정도이다. 낙차는 엄청나게 큰데 반해 사회안전망은 취약하니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히 쌍용차에서 떨어져 나온 노동자들은 평생 동안 쌍용차만큼 근로조건도 좋은 회사에는 다시는 가지 못할 것이다. 복직되면 몰라도……그래서 구조조정 반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쌍용차 협력업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조업체에서도 엄청난 고용조정이 일어나는데왜 큰 사회문제가 안될까? 또 GM 등 선진국 완성차 업체도 큰 폭의 고용조정이 일어났는데 왜 그들은 한국처럼, 투쟁 전술로서는 더 없이 좋은 (폭발물 탱크인) 도장 공장 점거 방식을 취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바보여서? 아닐 것이다. 근로조건 통계를 뜯어보면 뭐니뭐니 해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들의 근로조건 자체가 제조업 평균에 비해 그리 높지 않기에 다른 곳으로 흡수 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노동 개혁 내지 노동 투쟁의 방향은 명백하다.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 등 소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 직장의 근로조건의 높이는 (가능하면 시장 원리를 흘려) 시장 수준=선진국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조정하되, 다수의 힘없는 노동의 근로조건은 노동의 수요 자체(고용)를 늘리고, 적정한 보호 규제와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통해서 개선하는 것이다. 요컨대 임금.소득 불평등 및 불공평도를 개선하고,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즉 고용의 총량을 늘리고 이들 간의 불합리한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차별노동 (합리적인) 차별임금을 구현하는 것이다. 자본이 힘약한 노동을 무자비하게 짓밟게 해서도 안되지만, 자본이 고용을 무서워하도록, 힘쎈 노동은 자신의 힘을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한국의 자칭 진보는 이런 전략적인 시각이 없다. 이것이 쌍용차 비극의 먼 원인이다.
 
둘째, 쌍용차 노조를 전략적으로 지도한, 민주노총, 자칭 진보 정치세력, 진보 지식사회의 금융시장과 기업인수 합병시장에 대한 지독한 무지가 소모적인 갈등을 키웠다.  2000~2001년 대우자동차 부도 및 해외매각 과정에서 느꼈지만 민간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은행 같은 국책 은행 조차도 투자(자금지원) 가치를 철저하게 따진다. 관치 금융을 혁파하고 들어선 금융 산업의 상벌체계는 수천억 원의 돈이 부실화 되면 그 결재라인에 있는 많은 사람이 벌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위에서 전화 한 통화로 찍어 누르면 수천억 원의 돈이 정책금융으로 막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금융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결재라인이 면책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회수 전망 내지 투자 전망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상식이기도 하다.

게다가 파산 위기의 GM과 파산 위기의 쌍용차는 그 위상과 파급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수조 내지 수십 조원이 쓸데 없는 토건 사업에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이 헛돈 질은 나름대로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쌍용차 노조가 주장한 공적자금 투입 논리는 설득력이 거의 없다. ‘우리 쌍용차는 전후방 파급 효과가 제법 크니 정부가 돈 좀 대서 살려줘’라는 논리 이상이 아니다. 이런 논리가 통용되면 무수히 많은 ‘재정으로 팔자 고치기 정치사회 연대’가 출범하여 투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질 것이다.(그런데 보수 이익 집단은 민자유치 사업 등 이상한 명분으로 도로, 다리, 지하철 등을 건설하여 조용히 재정으로 팔자를 고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진다)

무엇보다도 기업인수 합병시장에서 완성차 공장의 불합리한 강성노조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쌍용차 노조는 투쟁을 가열차게 하면 할수록, 그래서 매스컴을 많이 타면 탈수록 정부의 변칙적(우회적) 지원도 어렵고, 쌍용차 노조의 체면을 살린 타협도 어려워지는 구조이다. 사실 근 이 십년간의 완성차 공장의 파업 투쟁은 겉으로는 노사가 적정선에서 타협을 한 것 같지만, 실은 노조의 승리였다. 노조는 백전백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불패의 신화가 쌍용차 노조의 후토를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쌍용차가 처한 상황은 쌍용차 노조의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패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노조에 승리감을 주는 타협을 하는 순간 잠재적 인수자는 확실히 도망가고, 쌍용차에 대한 대출 회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면서 은행의 자금 지원 가능성이 거의 소멸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2000~2001년 대우자동차 노조의 투쟁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 것이다. 2000년 11월 8일 노조의 구조조정 동의서 거부로 부도만 나지 않았더라도 고용보장을 기본 틀로 하여 노사간 타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도로 인해 대우자동차 네트워크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세계적인 뉴스가 된 이상 국가의 대외신인도 차원에서라도, 또 인수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리해고가 불가피해졌다. 비용절감 때문이 아니라 노조의 위신, 관행, 문화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당시 대우차 노조 의 김일섭 집행부가 정리해고 직전 부도만 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합의 가능한 파격적인 양보안을 제시했으나, 이종대 회장, 이영국 사장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2001년 2월 16일 1752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강행하였다.(정리해고를 전후해서 대우차 도장 공장은 노조의 점거를 막기 위해 철통 방호를 했는데, 이후 몇 년간 24시간 내내 이 철통 방호를 풀지 않았다.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그런 점에서 금융시장과 기업인수합병 시장의 논리를 안다면 쌍용차 노조는 상하이차 철수 이후 매우 합리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했다. 파업 찬반 투표를 해놓고, 투표함을 용접으로 봉하는 모션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물론 노조 집행부는 타협을 일찍 해도 죽고, 결사투쟁을 해도 죽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투쟁은 적절히 하되 쌍용차 네트워크가 입는 피해는 최소화 해야 하는 그야말로 어려운 전술을 구사해야 했다. 당연히 쌍용차 노조는 스스로 유연해 지기 힘들다. 뱀 같은 지혜를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융시장과 기업인수합병 시장의 논리를 안다면) 금속노조, 민주노총, 민노당, 진보신당 같은 존재들이 거간을 서야 했다. 쌍용차 노조가 뒤로 물러날 수 있도록 타협 책을 제시하고, 대신 욕을 먹어 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 같이 쌍용차 노조의 투쟁 도우미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쌍용차 노조를 백척간두에 서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노조 활동가들이 몰살 당할 위기로 내몰았다.

세째, 한국 자칭 진보의 시대착오적 세계관 때문이다. 1997년 이후 근 10년 동안 한국 노동계에 정리해고는 신자유주의와 동일시 되었다. 그래서 내 한 몸, 내 회사 하나 부서지더라도 신자유주의의 파상공세로부터 노동계급을 지켜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 차원에서 정리해고 분쇄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사실 민영화 반대 투쟁도, 비정규직 철폐 투쟁도 이런 신념 내지 세계관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면 엄청나게 격렬해지고 오래 갔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보여주는 순교자의 정신으로 투쟁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쌍용차 투쟁에서는 (2001년 대우차 노조 정리해고 분쇄 투쟁시와 달리) 신자유주의 운운하는 구호와 정세인식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주주가 경영포기를 선언해 버리고, 돈 보따리를 든 주인이나 경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용차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최전선이라는 의식은 면면히 흘렀던 것처럼 보인다.

쌍용차 노조와 민주노총, 그리고 이들의 철학과 투쟁노선을 옹호한 자칭 진보 정치세력은 도대체 자신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쌍용차 노조와 민주노총은 이번 투쟁을 통해 세계 만방으로 보낸 굵은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는 완성차 공장 노조원, 더 나아가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원에 대한 정리 해고는 엄청난 비용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륭전자 분회장과 KTX 여승무원들의 2~3년간의 투쟁 과정에서도 각인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쌍용차 노조는 처참하게 패배한 것 같지만, 완성차 공장, 대기업, 공기업, 정규직 노조원들에게는 적지 않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정리해고’ 함부로 하지마라. ‘정리해고를 하려면 회사 파산을 각오하라’ 

그런데 이것을 객관(과학)의 눈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우리의 기득권을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우리의 정년을 보장하라’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모든 작업장, 기술, 기업, 산업의 불가피한 부침, 소멸,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하냐고? 그런 복잡한 문제 우리에게 묻지 마라. 하여간 우리 고용을 보장하라!’ ‘비정규직 폭증? 대기업, 공기업 생산현장의 고령화? 청년실업자 폭증을 어떻게 하냐고? 내가 어떻게 알겠냐? 청년고용 할당법을 만들어 고용을 강제하면 되지!“

쌍용차 노조의 영웅적 투쟁이 초래한 결과는 무엇일까? 당연히 강력한 노조가 있는 곳에서는 정리해고를 꺼릴 것이다. 동시에 튼튼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 공기업은 현장직 채용을 극도로 꺼릴 것이다. 꼭 필요하면 분사화, 외주하청화 시킬 것이다. 더 나아가 국내에서 공장을 짓는 것 자체를 꺼릴 것이다. 벤처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가릴 것 없이 노조와 현장직 대량 고용에 대한 공포감이 극에 달할 것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용인할 수 없다는 벤처중소기업가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돈만 확실히 된다면 지옥에라도 가는 것이 자본이긴 하지만, 끝없는 임금인상 요구에 시달리고, 유사시 고용조정을 하다가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 기대수익과 위험을 따져서 국내에서 고용을 늘리는 투자를 꺼릴 것이다. 그 결과가 1993년 전체 임금근로자 중에서 1000인 이상 사업장의 고용 비중이 12.4%에서 2006년 5.7%로 떨어지고, 제조업 고용이 1992년 498만명(총 취업자의 26.2%)에서 2008년 408만명(총 취업자의 17.3%)으로 떨어진 것이다. 대기업 현장직은 고액 연봉에 급속도로 고령화 되고(왠만한 곳은 평균 연령이 40대다), 고용 규모는 축소되고,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의 고용비중이 늘어나고, 그곳은 비정규직으로 가득차고(정규직과 별 차이도 없지만), 비경제활동 인구와 자영업자에 도합 최소 5백만명의 사실상 실업자가 숨어 있고, 대졸 실업자들의 숫자가 폭증하고, 괜찮은 일자리 하나를 놓고 대졸 청년들이 수백대 일의 경쟁을 하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사회는 불공평, 불공정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부글부글 끓는 것이다. 과연 이것을 자본과 정부 탓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개 노조 있는 사업장의 근로조건이 개선이 되면 주변 산업과 지역의 평균 근로조건이 개선된다. 그 경우는 노조의 투쟁은 민주, 진보, 개혁, 평등, 인간화 투쟁에 대단히 큰 기여를 한다. 하지만 힘있는 노조의 개별적 약진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그 반대가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의 자칭 진보 좌파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공기업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노조가 시대의 짙은 어둠을 깨치던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의 그 빛나던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국 진보 좌파는 시대가 바뀌고, 진짜 사회적 약자가 바뀐 것을 모르고 흘러간 옛노래만 불러 제낀 것이 쌍용차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적지 않게 일조하였다. 

네째, 쌍용차 경영자의 무능과 오버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사태가 이토록 악화된 것은 법정관리인(이유일, 박영태)과 정부가 노조에 대해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또 어느 정도는 이번 기회에 노조를 완전히 박살내자는 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자동차 회사에서 ‘감히’ 정리해고를 하면서 도장 공장을 노조에 점거 당한  전술적 무능함도 빼놓을 수 없다. 

이유일, 박영태는 노조에 대해 고통을 분담하고, 참고 기다리면 몇 년 내 대우차 정리해고자들처럼 복직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어야 했다. 이런 비전에 설득을 당해서 정리해고를 순순히 수용할 노조는 세상에 없겠지만, 그래도 비전이 선명하고 그럴듯하면 갈등 비용은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쌍용 경영자들은 골치 아픈 노조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정리하자는 식으로 나온 것처럼 보인다. 한국 전쟁 기간에 일어났던, 평소 이를 갈던 존재들에 대한 학살의 심리가 발동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知足不辱 知止不殆(지족불욕 지지불태)라고,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쌍용차 노조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 기아, 대우차 노조도 이것과 거리가 너무나 멀다. 그런데 쌍용차 관리인과 보수 기득권 집단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국인의 성정자체가 知足不辱 知止不殆와 가장 거리가 먼 민족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싹쓸이 심리, 화전민 심리가 강하게 발동하면 격렬한 내전, 분단, 전쟁, 대량 학살, 혁명은 필연이다. 

나는 쌍용차의 비극을 낳은 심리에서 노무현 탄핵 사건과 비극적 자결 사태를 본다. 탄핵과 자결 사태는 知足不辱 知止不殆와 담쌓은 보수 기득권 집단의 전적인 책임이지만, 쌍용차 사태는 둘 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쌍용차 노조의 처참한 패배로 귀결이 되면서 이번 기회에 쌍용차 노조를 민노총에서 탈퇴시키고, 더 나아가 노동자협의회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이는 명백한 대량 학살의 심리이다. 학살은 극단적인 저항을 부르고, 끝내는 혁명과 전쟁을 거쳐 공멸을 초래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만큼이나 명백한 것은 언젠가 현대기아 자동차도 GM이나, 기아차, 대우차, 쌍용차 같은 상황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제발 그 때는 이런 비극 없이 위기를 돌파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전쟁 보다 어려운 것은 전후 복구이다. 역사상 큰 전쟁에도 승리하고 전후 복구에도 승리한 지도자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쌍용차와 관련해서는 승리자가 아무도 없다. 가장 큰 패배자와 좀 작은 패배자만 있을 뿐이다.  법정관리인도, 산업은행도, 정부도 다 패배자 일 뿐이다.

지난 10여년간 기아, 대우, 삼성, 쌍용 같은 부실한 자동차 회사를 처리하는 은행들을 보니, 은행 관리하에 자동차 회사가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은행 관리 하에 자동차 회사가 있으면, 지난 2000년~2004년의 쌍용차처럼 천재일우의 황금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  slow death를 피할 수가 없다. 이는 자동차 업계 사람들 백명을 잡고 물어봐도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가장 확실한 담보를 잡고 있기에 쌍용차가 파산해도 잃을게 없는 은행이다. 이는 쌍용차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그러므로 하시 바삐 자본력이 튼실하고 무엇보다도 자동차 산업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깊은 주인을 만나야 한다. 이유일 공동관리인은 국내 업체 중에 쌍용차 인수에 관심이 있는 업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어불성설이다. 회사의 재무 라인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임직원들이 결사반대 할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무서운 산업이다. 1999년 당시 자산 기준 재계 서열 2위의 대우그룹이 망한 것은 명백히 대우자동차 관련 투자 때문이었다. 삼성도 1998~99년 그룹이 통째로 날아갈 뻔하였다. 수 십년간 세계 1위 기업이었던 GM도 망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보호장벽이 높은 곳에서는 대중용 차를 생산하면서도 규모가 쌍용차처럼 작은 회사가 있지만, 선진국에는 없다. 산업의 성격상 존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 스바루가 40~50만대 규모로 그런대로 수익을 내면서 버티고 있을 뿐이다.

나는 쌍용차는 매우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내가 여태 쓴 글 중에서 이 글은 가장 많은 욕이 댓글로 달린 글이다. 그럴만하다. 상식으로 보면 쌍용차는 이렇게 살아날 확률이 0.1%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0년 내 설비 증설과 인수합병 등을 통해 국내외 50만대 이상 규모의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을 본다. 더 나아가 인수 합병을 통해서 수 백만대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로 성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희박한 확률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 할 사람은 내가 알기론 이 지구상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딱 한사람 뿐이다. 그는 23조원의 추징금 때문에 무일푼이지만, 가족 돈을 종자돈-그런데 가족들이 결사 반대할 것 같다-으로 댄다면 쌍용자동차 인수를 위한 사모펀드를 만들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건강, 열정, 가족의 동의가 허용하는지, 은행과 국민 정서가 허용하는지 모르지만 쌍용차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니 황금 똥을 싸는 코끼리가 되는 길은 김우중이 사모펀드를 만들어 쌍용차를 인수하고, 그가 지휘하는 한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 경영.관리자 사단이 쌍용차에 투입하고, 그가 지구를 돌며 자동차 세일즈맨 노릇을 하는 길 외에 어떤 길이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1999년~2001년 당시 한국 금융과 정부가 좀 더 현명했다면 대우자동차를 GM에 매각하지 않고 키웠다면 지금쯤 현대.기아차 만한 거대한 자동차 회사가 하나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내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의 지적,재무적 능력으로는 해외매각 아니면 청산이라는 것이 명백했기에 나는 결국 해외매각 찬성으로 돌았다. 이 과정을 다룬 책이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라는 책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노무현에 대해서도 책 한권 분량의 비판을 했으면서도, 노빠 소리를 들을만큼 노무현의 가치를 아쉬워하는 사람이다. 김우중에 대해서도 책 한권 분량의 비판을 했으면서도 김우중의 가치-세계경영, 제조업 중시, 근면, 도전, 희생 정신 등-를 아쉬워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노무현만 버린 것이 아니라 김우중도 버렸다. 둘 다 크게 성공했고, 동시에 크게 실패했지만 여전히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노무현은 소신공양으로서 수십년에 걸쳐서 할 일을 한꺼번에 다 해버렸지만, 김우중은 남아 있는 창의, 열정을 태우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대우차가 1999년~2002년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 있었다면 지금  일자리를 찾아서 헤매는 우리 청년들은, 1930년대 일본의 진취적 청년들이 만주, 조선, 대만을 제 집 드나들듯이 했듯이,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진출해 있는 폴란드, 루마니아, 우즈벡, 카자흐스탄, 베트남 등지를 제 집 드나들듯이 하면서 새로운 사업, 취업 기회를 보았을 것이다. 국운이 달라졌을 것이다. 노무현만 아쉬운 것이 아니라 김우중도 아쉽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