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누가 계속 똑같은 말만 반복하면 지겨워지고 관심이 안가게 마련입니다.

90년대 초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사회비판적이거나 사회적인 가사를 쓰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교실이데아, 컴백홈, 발해를 꿈꾸며 등...그 후에 H.O.T.같은 아이돌 그룹도 간간히 학교폭력을 비판하거나 획일화된 교육을 비판하는 가사를 발표했죠..처음에는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비슷비슷한 가수들이 계속해서 사회비판하고 사회적인 가사를 발표하니까 흥미가 떨어졌죠...그 가사의 내용의 당부를 떠나서 그냥 흥미가 떨어진겁니다.


7.28 재보선이 실시되면서 다시 정치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한나라-민주 양당은 늘 하던대로 서로 치고받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당은 야당의 전매특허인 '정권심판'을 내세우며 지방선거 이후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보겠다고 아둥바둥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 이외의 다른 야당들과 일부 진보언론은 야권연대를 주문하면서, '민주당이 잘해서 지방선거 이긴거 아니다, 야권연대 또 해라', '야권연대를 위해 민주당이 양보해라', '지지율로 후보단일화 하는 것은 패권적인 행태다', '민주당은 바뀌어야 한다' 등등 민주당을 향한 애정어린(?) 비판을 또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선거 끝나고 2달도 안되서 지방선거 전에 민주당을 향해 했던 비판을 그대로 또 하는 것입니다. '지지율'로 단일화 하지 않고 다른 이런 저런 것을 감안해서 가장 적합한 후보로 단일화하자는 민주당 이외의 야당의 주장마저도 '합리적'이라고 일단 가정한다고 해도, 매번 선거 때마다 별로 서로간에 달라보이지 않는 야당들이 어떤 야당을 패권적이고 구태적이고 구리다고 비판하면서 양보하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관심, 미디어의 관심이 점점 떨어져가는것 같습니다.


박노자, 홍세화 등의 글이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종석, 강준만도 마찬가지죠. 한 몇년동안 진보개혁적인 대중들과 대학을 중심으로 선풍적으로 읽혔던 글을 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합니다. 왜냐? 10여년 전부터 하던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이 저들의 뜻대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하던 말을 반복하는 거라는 반론이 가능하고 나름 타당하지만, 어쨌든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 질립니다.(물론 강준만은 관심폭을 더 넓혀서 정말 무분별(?)할 정도로 다양한 주제, 하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자의든 타의든 예전만 못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죠)


""이 땅의 민주당에겐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해외파병은 그렇게 열심히 반대하면서도 유독 노동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우리가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 핵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에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곡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아직도 친노동(pro-labour) 정책 제시는 고사하고 엠비정부가 내미는 친기업(pro-business) 정책을 추인하느라 바쁘다. 양극화와 복지를 넘보는 건 오히려 보수다. 이쯤 되면 무관심을 넘어 무지의 수준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30581.html)

""유시민 선대위원장은 민주당을 겨냥했다. 그는 "민주당은 언제까지 제 1야당의 지위에 안주하면서 변해야한다는 요구를 외면할 것이냐"며 "주민이 원하지 않는 후보를 내놓고 이명박 정권 심판을 위해 찍어달라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제 야당도 경쟁을 해야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16543)


몇년째 반복되는 레파토리입니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분리해서, 마치 노전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불가항력'으로 노동 유연성을 받아들였지만, 민주당은 '친기업 반노동'을 추구하는 식으로 칼럼을 쓴 것을 보면, 모르고 저렇게 쓰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저렇게 쓰는 것인지 직접 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노무현, 민주당 모두 10년간의 노동, 복지정책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에게는 진정성을 느꼈고, 구질구질하게 남아있는 민주당에게는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한겨레의 저런 논조는 당황스럽습니다. 저런걸 보고 왜곡이라고 하는거죠.))

민주당의 비좌파성, 자유주의적인 성향에 대한 실망과 비판은 아주 오래된 패턴입니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노동, 복지정책에 있어서 보수성을 띨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경쟁하는 아름다운 정당구조와 그것을 통한 보수정책과 진보정책의 아름다운 경쟁을 통한 점진적인 유럽식 사회국가로의 발전을 태생적 보수정당이면서 개혁을 자처하는 자유주의적인 민주당이 막고 있다는 전제에다가, 지역주의까지 더해서 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이죠.

이런 비판이 완전히 그른 것도 아니고, 사실 타당한 면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민주당에게 더 많은 복지와 노동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보면, 유시민의 '야당경쟁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맞는 말입니다. 생산자끼리의 경쟁은 소비자에게 당장 더 많은 혜택을 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런 비판이 가지는 사회적인 영향력이 예전만 못합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뭐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전국적인 승리를 했고,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완전히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진보언론, 진보정당, 유시민 등의 예측이 완전히 어긋났기 때문에, 당장 저런 비판에 힘이 실리지 않는 면도 있지만, 아무튼 '민주당의 태생적 보수성으로 인한 사회발전의 저해', '민주당을 넘어선 새로운 대안정당'식의 비판과 주장의 당부를 떠나 그냥 질립니다.

일단 적게는 10년동안 저런 주장이 거의 토씨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고 있고, 민주당을 넘어선 대안정당을 실험하겠다던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 무엇이 다른지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사라져(도로 민주당으로) 버렸습니다.

보수적인 관료들, 부패한 재벌기업, 재벌언론 등에게 '능력도 없고 비전도 없고 개념도 없고 게다가 부패했다'고 비판하던 진보언론, 진보학계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동안 제대로 의제설정도 못했고, 오히려 더 비전없는 모습,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기껏해야 핀란드네 스웨덴이네 노르웨이같은 소리를 하거나, 모든 변화의 주체를 대중과 민중,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혹은 김대중-노무현은 태생적으로 보수정치인이기 때문에 우리(진보)는 당당하다는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아 지겹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민주당이 태생적으로 보수적(자유주의적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겠죠)이어서 이 땅에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고, 게다가 민주당은 지역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변해야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의 내용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지겹습니다.

현실 속에서의 정치는 정치인이 행동과 말로서 비전을 제시하면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는 정치시장입니다.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하고, 혹은 그런건 아니더라도 내가 저 정치인을 뽑음으로서 무언가 심리적인든 상징적이든 얻어지는게 있다면, 그 정치인과 정치세력에게 표를 줌으로서 유권자로서 정치서비스를 받는 거래를 하는 것이죠.

정치 서비스 생산자인 정치인들이 정치 서비스 소비자인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얻으려면 말과 행동으로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 자신의 이해관계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제공하려는 정치 서비스가 새롭고 신선하고 쿨하다고 잘 알려야 합니다. 실제로 별로 그렇지는 않더라도 일단 유권자들에게는 새롭고 신선하고 쿨한 무언가를 해주겠다고 비전을 제시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그게 잘 안되더라도 그렇게 하려는 노력은 적어도 해야죠.


그런데, 지금 진보언론, 민주당 이외의 야당정치세력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던 얘기를 계속 하는 거라고 항변하면 누가 알아줄까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것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10년간의 민주정치세력 때문에 국민들이 더 보수화 되어서 자신들의 이야기가 먹히지 않는다고 항변하면, 국민들이 개처럼 멍청해져서 이야기가 안먹힌다고 하면 누가 알아줍니까? 민주당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을 바탕으로 패권적인 행태를 야당 내에서 취한다고 민주당에게 쿨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면 누가 알아주나요? 민주당이 아닌 다른 야당 정치인이 나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눈에 띨 정도로 패배해놓고, 민주당은 안된다고 비판하면 그게 먹힐까요?


아 지겹습니다 정말...우리 정치가 지역구도, 보수양당 때문에 생산적인 담론을 내놓지 못한다고 비판하던 소위 진보언론, 대안개혁세력(?), 진보정당 등이 오히려 더 비생산적인 주장만 하는 요 몇년...정말 지겹습니다. 설령 그들의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다람쥐 쳇바퀴돌듯 똑같은, 비슷한 내용의 주장과 비판 정말 지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