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도 없다.'
 
경영의 기본 명제이다. 수치화/계량화하기 어려운 인간 활동의 다양한 정성적(定性的) 측면을 경영학이 끊임없이 정량화(定量化)하려고 시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친노신당 움직임이 관심을 끌고 있다. 여러가지 명분과 근거를 댈 수 있겠지만 결국 친노신당이 의지하는 가장 결정적인 정치적 자산은 '노무현'이다. 이런 점에서 친노신당의 결정적인(실은 유일한) 정치적 자산인 '노무현'에 대해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노무현에게서 이어받을 정치적 자산은 없다. 있지도 않은 정치적 자산을 담보로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현찰’을 확보하려는 친노신당의 시도는 비참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으로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지역구도 해소 노력,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 대화, 권위주의적 정치/행정 문화의 해소, 대외무역 등 일정한 경제적 성과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유산이 친노신당의 정치적 자산으로서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자.


노무현의 경제 정책은 대규모 무역흑자에서 볼 수 있듯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여러 가지 경제 현안에 대해서 적어도 현재의 이명박보다 잘 대처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경제 살리기'라는 이슈가 노무현의 경제 성적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도 사실이다. 양극화와 중산층의 붕괴, 서민층의 몰락이라는 경제 현안에 대해 노무현은 어떤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느니 "(아파트처럼) 100배 남는 장사도 있다"느니 하는 말로 정책 성과를 스스로 깎아먹는 언행을 거듭한 것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유산도 통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 형태와 표준을 갖춰야 한다. 노무현의 경제적 성과는 이런 형태를 갖춘다는 점에서 우선 실패했다. 이것은 다른 누구보다 노무현 자신의 책임이다. 경제적 성과 자체로서 인정받겠다는 소신에 기반한 행동이었겠지만 대통령은 경제적 성과조차도 정치적으로 평가받는 정치인이지, 실적만으로 평가받는 경제 관료나 기업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였다.


비록 재임 기간 중에는 욕을 먹었지만 노무현의 경제적 성과가 먼 훗날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노무현의 경제 성과는 철저히 현재의 관점에서, 현재 이슈에 대응하고 관리하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비전 2030'을 노무현의 미래정책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결과물(Output)'만 있고, 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자원과 실행 계획을 '투입(Input)'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는, 일종의 희망사항 리스트에 더 가깝다. 노무현이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미래정책을 고민한 흔적은 있지만 실제 결과물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최소한 노무현의 경제정책이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의 경제정책과는 구별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간단하게 말해 노무현 스스로 2007년이던가, 연초에 전국민이 보는 TV방송에서 역설한 바 있다. “도대체 정당에 따라 경제정책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습니까? 그건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이거 자신과 자신의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다. '본질적으로 한나라당과 차이점이 없다'는 선언이다(사실 그러한 동질성 선언은 정치 분야에서 먼저 이루어진 바 있다). 물론 이것이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의 경제정책과 노무현의 그것이, 실행능력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의 해소를 노무현의 업적, 정치적 유산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노무현에 대해 식지 않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는 노빠들의 충성심의 중심에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하지만 노무현의 가장 결정적인 정치적 실패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노무현을 죽인 결정적인 무기가 바로 검찰이란 사실을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노무현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검사와의 대화라는 이벤트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노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나라의 각 부분에까지 두루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무현이 정권을 놓는 순간, 그러한 노력의 결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가 기울인 권위주의 정치문화 타파의 노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무현을 욕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그의 노력이 순수한 것이었다는 점은 대부분 인정할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실책에 대해 직접 죽음으로 책임을 진 사람에게 더 이상 논리적인 추궁을 한다는 것도 허무한 일이다. 노무현의 허무에 비판의 허무를 더해봐야 허무 아닌 다른 것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래도 분명한 건, 노무현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해소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점이다. 극렬 노빠들이 “노짱의 위대함은 먼훗날 드러날 것이며, 세속의 타락한 정치권력의 기준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노무현의 실패를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노빠들의 주장은 노무현의 업적이 현실 정치인이 아닌, 이념가 또는 철학자(보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공상가')의 그것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북대화 노력도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노무현 개인의 입장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일 수도 있다. 노무현 스스로 ‘한나라당에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한 대북송금 특검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무관하게 개혁세력 스스로 남북대화의 합법적 근거를 부인하는 모양새로 남았다. 수구세력이 이후 남북대화의 내용을 계속 왜곡하며 공세를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노무현이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빌미를 안겨준 것이 계기가 됐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남북대화가 상당 기간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면서 남북 당국 사이에 불신의 씨앗이 뿌려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남북정상회담의 연기와 함께 북미 간의 긴장 고조, 북한의 벼랑 끝 전술 등으로 불가피하게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를 만드는 단초 역할을 했다.


줄다리기 끝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고 해서 해피엔딩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과정을 통해 남북관계는 파행의 위기로 치달았고 김대중 정권의 성과에 더해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 대화를 반석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친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남북관계에서 저지른 치명적인 착오가 없다 해도, 사실 남북 대화는 엄격하게 말해 김대중에게 그 지적재산권이 있는 정책이다. 노무현으로서는 이 부분에서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올린다 해도 결국은 김대중의 흉내내기에 그치기 쉽다. 노무현이 집권 초기에 남북관계 개선에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구도 해소는 노무현을 상징하는 키워드이지만, 결과적으로 말해 노무현이 가장 처절하게 실패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상세한 언급은 피한다. 다만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것은, 노무현은 호남차별 범죄 행위를 극복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 모든 기회를 날려버렸고 결과적으로 지역차별 범죄를 더욱 악화시켰다. 나아가 스스로 그러한 범죄 행위를 정당화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결국 친노신당 추진파들이 의존하는 노무현의 정치적 자산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이 남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부채'이다. 부채도 자산이라며 우긴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경우 노무현의 뒤를 이어받을 정치세력들은 노무현의 온갖 정치적 실패와 파행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속죄하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친노신당 추진’이 그런 노력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으로 본다.


정치적 부채 외에도 노무현이 남긴 것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다. 차라리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것에 가깝다.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의 해소를 위해 노무현이 희생하고 참은 것, 노력한 것이 이러한 성격의 유산에 포함된다.


이것은 ‘측정’할 수 있는 유형의 자산은 아니지만, 민중의 기억 속에서 면면히 흐르다가 어느 순간에 정치적 동력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측정할 수 없기에 누군가 이어받거나 계승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실패한 영웅에 대해 민중들이 애도하는 그 집단 무의식 속에 살아있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아기장수 설화가 이러한 정서/문화적 자산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친노신당이 의지하는 정치적 자산, 노무현의 유산은 이렇게 실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무작정 허황된 꿈만을 꾸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정치적 자산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다. 결국 구체적인 실체,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바로 ‘유시민’이다.


이들은 노무현의 ‘전설’과 유시민의 상징성을 결합하여 새로운 정치적 자산으로 만들고자 한다. 간판은 ‘노무현’이지만, 파는 정치 상품은 ‘유시민’인 셈이다. 그래서 사실상 친노신당은 노무현당이 아니라 유시민당이다. 하지만 과연 유시민이 이들의 간절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이들의 기대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유시민의 ‘한계’ 때문이다. 유시민에 대해서 숱하게 지적되고 거론된 역량과 자질의 한계를 여기서 다시 거론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더 본질적인 문제를 짚고 싶다. 과연, 유시민은 정치를 재개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유시민 스스로가 별로 정치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물론 마지못해, 노빠들의 등쌀에 못 이겨 정치판에 끌려나올 수는 있다. 그럴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유시민의 솔직한 심정은 결국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서 미안하지만, 유시민이 정치에 나오기 싫은 것은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쫀’ 것이다. 유시민은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고, 그가 얼마나 탁월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탁월한 정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싸우려 했던 상대에게 얼마나 비참하게 패배했는지를 낱낱이 지켜봤다. 그것은 유시민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뼈저린 체험일 수밖에 없다. 유시민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능력이 노무현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그런 능력으로 노무현도 끝내 이기지 못한 상대와 붙는다고 생각해보라.


유시민은 앞으로 지식소매상에 머무르고 싶을 것이다. 유시민을 아낀다면 그 길을 가도록 놔둬야 한다. 그 일만 한다면 유시민은 나름대로 행복하고 보람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정치에 나선다면 본인에게나,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게나 모두 비참한 결과만 낳을 뿐이다. 이건 권투와 비슷하다. 파이터는 한번 비참하게 진 상대에게 다시 대들어 제대로 싸우기 어렵다. 이건 ‘용기’와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친노신당 시도는 거기 모인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친노 집단 나아가 우리나라 386 세력의 정치적 운명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심하게 말해, 친노신당 시도는 친노(이른바 노빠들)를 중심으로 한 386들이 앞으로도 의미있는 정치 세력으로 살아남느냐, 역사적인 유물로 형해화되느냐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정치적 자산인 '노무현'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 작업이 더욱 필요하다. 냉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해찬이 친노신당 참여에 대해 냉정하게 선을 긋는 것을 봐라. 이해찬은 친노 그룹 가운데서는 가장 정치적인 경험과 경륜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친노들, 정신 차려라. 착각 마라.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을 과대평가하고 간이 부은 것 같다. 부잣집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노무현과 친노 정치세력이 몰락해도 그럭저럭 민주당과 협상 잘하면 괜찮은 몸값으로 여기저기 자리 찾아갈 수 있다. 그게 친노들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소프트랜딩이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노무현 자살이라는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이 사건은 노무현에 대한 추모 분위기라는 ‘어음’을 친노들에게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 어음을 현찰이라고 착각하면 망하는 거다. 삼년 동안 근근히 버틸 재산으로 하루아침에 빚잔치하는 꼴이 된다는 얘기다. 그 빚잔치가 바로 ‘친노신당’이다.


솔직히 말해 그냥 놔두고 친노 무리들이 쫄딱 망하는 꼴을 보고 싶기도 하지만 덩달아 민주당이나 전통 진보 개혁진영이 피해 보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얘기를 한다. 생전의 공과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고인에 대해서 누가 되는 얘기도 피하고 싶다. 그래서 사십구재까지는 기다렸다. 하지만 친노들이 주제 모르고 계속 까부는 것은 참 봐주기 뭐하다. 친노들과는 완전히 갈라서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 나라 진보 진영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http://teralux.egloos.com/1489161 <-원문 출처.  구오스님의 양해하에 퍼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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