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배명복 논설위원의 칼럼(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307575)에 [지금 청와대에 자리를 걸고 “각하, 그건 아닙니다”라고 직간(直諫)하는 참모가 있나요.]라는 표현이 나온다.

중앙일보 지면에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얘기가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이니, 현재 보수세력이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 느끼는 당혹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실제로는 지들이 '이명박 뽑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주입하고 나서도 "왜 이명박 같은 인간을 뽑았나"며 마치 국민들의 어리석음을 개탄하는 지사풍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역겹다.

하지만 저 칼럼에서 내가 정작 놀란 것은 '각하'라는 표현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청와대 참모들이 이명박을 호칭할 때 '각하'라고 부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메이저 신문의 지면에 저런 표현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사람들도 거기에 대해서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경이로운 일처럼 느껴진다. 저런 사소한 표현이 사실은 실제 청와대 내부와 그 주변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각하... 한자로 閣下라고 쓴다. 말 그대로 이 호칭으로 불리는 상대는 높은 누각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이 호칭을 입에 올리는 당사자는 그 누각의 아래 마당에서 무릎꿇고 머리 조아리며 하교(下敎)하시는 말쌈을 공손히 두 손 맞잡고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관계라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건 봉건왕조 시대의 상하관계에서나 쓰는 표현이라고 해서 국민의정부 이후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았는데, 어느새 부활해서 청와대에서 통용되고 있나 보다. 이 '각하'는 네티즌들이 즐겨 사용하는 '가카'라는 장난기 섞인 호칭과는 의미가 다르다. 말 그대로 '살벌한' 위계질서를 드러낸다. 감히 장난이 섞일 여지가 없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 각하라는 호칭이 조선시대 인조 때부터 왕세손을 부를 때 붙여 사용했다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 잃어버린 10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조선시대로 회귀했다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닌 셈이다. 사실 5.16 이전에는 만만한 똥별들에게도 모조리 '각하'라는 호칭을 붙였으니 그다지 낯선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표현이 그냥 있었던 것과 없어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과거의 '각하' 표현보다 현재의 '각하' 표현이 훨씬 더 퇴행적이고 반동적이고 한마디로 말해 훨씬 더 싸가지가 없는 표현이라는 얘기이다.

서양에서는 1천년도 훨씬 이전에 이미 라운드 테이블에서 군왕과 신하가 함께 토론했다는 전설이 남아있는데, 정말 이 나라는 어째 이 모양인지...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가 말했던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특수성'이던가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대충 내가 이해하는대로 풀어보자면 아시아에서는 일찍부터 대규모 관개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됐고(하천 등 자연적인 조건 때문에), 이것은 엄청나게 방대한 노동력의 동원과 조직, 그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지휘해 대형 토목사업을 완성시키는 정치조직이 발달했다는 얘기다. 이것은 서양과 달리 일찍부터 중앙집중적인 정치 권력과 권위주의적인 정치 철학과 문화, 중앙권력 지향적인 출세 문화를 낳았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마르크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중국의 고전을 보면 요 임금이나 순 임금이 권력을 쥐게 된 핵심 요인으로 당시 황하의 정비사업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순 임금의 경우 이 황하 정비사업을 지휘하면서 7년 동안 몇 번씩이나(숫자는 틀릴 수 있다) 자기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집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만큼 바빴다는 얘기다. 그만큼 대형 사업이었고,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당시 중국 전체 민중이나 순 임금 개인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주는 사업이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물길을 다스리는 사업은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대형 사업일 수밖에 없었고, 그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다른 중요한 것들이 숱하게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될 것 같다. 수나라 양제의 경우도 대운하 사업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경험이 있고.

문제는 과거와 현재, 중국과 한국의 차이이다. 과거에는 하천 다스리는 것이 국가의 명운을 가를만큼 중요한 과제였고, 특히 중국 황하가 더욱 그랬다. 따라서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머지 가치들을 희생하는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를 불가피하게 긍정해야 할 당위성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하천도 별로 없었고, 또 지금 와서 하천 다스리는 것이 국가적 최우선 과제가 된다는 합리적인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명박은 4대강 사업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업이라며 목을 건다.

과거 대형 하천 다스리는 사업이 아시아의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를 낳은 요인이었던 것처럼, 4대강 사업에 목을 매는 이명박 시대 들어 죽은 지 오래됐던 '각하' 호칭이 살아난 것이 그냥 우연의 일치 같지가 않다.

그나마 몇천년 전 중국의 황하는 국가적 중대성을 갖는 사업이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4대강 사업은 그냥 넌센스요 코미디요 황당 개지랄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 조까튼 사업이다. 마치 과거의 '각하' 호칭보다 되살아난  '각하' 호칭이 훨씬 더 더럽고 야비하고 지저분하고 싸가지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