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1992)」만 다룰 것이다. 그 이후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Tooby & Cosmides의 의견이 어떤 식의 변화를 겪었는지 추적하지는 않았다. 우선 세 구절을 상당히 길게 인용해 보겠다.

 

 

 

1 단계. 급격한 역사적 변화와 다수의 자연 발생적인 인간의교차-양육 실험들(cross-fostering experiments)”의 존재는 인간 집단 간의 조금이라도 중요한 행동의 차이가 집단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 때문이라는 인종주의적 생각을 효과적으로 반박한다. 모든 곳의 유아는 똑 같은 상태에서 태어나며 같은 발달 잠재력, 진화한 심리, 또는 생물학적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은 전통적으로는 인류의 정신적 통일성(the psychic unity of humankind)이라고 알려졌던 원리다. 뒤이어 이 세기 동안에 일어났던, 유전학과 인간 발달에 대한 지식의 증가 때문에 모든 집단의 유아가 본질적으로 같은 기본적 인간 설계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이 강하게 경험적으로 뒷받침되었다. 이제는 현대 전기 이동(electrophoretic) 기술에 의해 직접 탐지할 수 있는, 인간의 유전적 변이는 거의 대부분이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하찮은 생화학적 차이에 한정되어 있어서 우리의 복잡한 기능적 설계는 보편적이며 종-전형적(species-typical, -고유의)이다(Tooby & Cosmides, 1990a). 또한 존재하는 변이의 대부분은인종들사이에 또는 개체군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개인 사이에 그리고 개체군 내에 존재한다. 유전적 변이의 이런 알려진 분포를 고려해 볼 때, 유전적 변이는 왜 많은 행동들이 집단 내에서는 공유되는 반면 집단들 간에는 공유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 유전적 변이는 왜 인간 집단들이 생각과 행동에서 서로 극적으로 다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의미 심장하게도, 이것은 현 상태의 SSSM이 올바른 유리한 특성이며 통합된 인과 모델에 변형 없이 통합된다. 하지만 왜 이것이 참으로 드러나는지는 복잡한, 진화한, 심리학적 또는 생리학적 적응들 – SSSM 추종자들이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부인하는 어떤 것에 의존한다.)

Step 1. The existence of rapid historical change and the multitude of spontaneous human "cross-fostering experiments" effectively disposes of the racialist notion that human intergroup behavioral differences of any significance are attributable to genetic differences between groups. Infants everywhere are born the same and have the same developmental potential, evolved psychology, or biological endowment – a principle traditionally known as the psychic unity of humankind. The subsequent growth of knowledge over this century in genetics and human development has given strong empirical support to the conclusion that infants from all groups have essentially the same basic human design and potential. Human genetic variation, which is now directly detectable with modem electrophoretic techniques, is overwhelmingly sequestered into functionally superficial biochemical differences, leaving our complex functional design universal and species-typical(Tooby & Cosmides, 1990a). Also, the bulk of the variation that does exist is overwhelmingly inter-individual and within-population, and not between "races" or populations. By the nature of its known distribution, then, genetic variation cannot explain why many behaviors are shared within groups, but not between groups. That is, genetic variation does not explain why human groups dramatically differ from each other in thought and behavior. (Significantly, this is the only feature of the SSSM that is correct as it stands and that is incorporated unmodified into the Integrated Causal Model. Why it turns out to be true, however, depends on the existence of complex evolved psychological and physiological adaptations – something explicitly or implicitly denied by adherents of the SSSM.)

(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 John Tooby & Leda Cosmides, The Adap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Jerome H. Barkow, Leda Cosmides, John Tooby 편집, 1992), 25,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pfc92.pdf )

 

 

 

이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선천론적 요소든 그것과 명시적으로 관련된 것이라면 모든 접근법이 의심을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근본적으로 갈리는 심지어 반대되는 프로그램들과 주장들이 20세기 사회 과학자들의 마음 속에서는 지속적으로 융합되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적응론적 진화 생물학과 행동 유전학을 구분하지 못했다. 우리의 보편적, 유전된, -전형적 설계에 대한 적응론적 탐구가 개인 간 또는 개인들의 집합 간 차이 중 어느 부분이 유전자의 차이 때문인지를 묻는 행동 유전학이 서로 상당히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적응론적 진화 생물학에 전형적인 범종적(panspecific) 선천론과 행동 유전학의 유전자형(idiotypic) 선천론이 서로 혼동되었다(Tooby and Cosmides, 1990a). 분명히, 복잡하게 조직된 보편적 인간 본성에 대한 주장들은 바로 그 성격 때문에 인종주의적 설명에 참여할 수 없다. 실로, 그런 주장들은 인종주의적 접근법의 중심 가정들과 모순된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적응론적 접근법들과 행동 유전학이 다수의 사회 과학자들의 마음 속에서는 풀리지 않게 얽힌 상태로 남아 있다.

In this process, all approaches explicitly involving nativist elements of whatever sort became suspect. In consequence, fundamentally divergent even opposing programs and claims have become enduringly conflated in the minds of 20th-century social scientists. Most significant was the failure to distinguish adaptationist evolutionary biology from behavior genetics. Although the adaptationist inquiry into our universal, inherited, species-typical design is quite distinct from the behavior genetics question about which differences between individuals or sets of individuals are caused by differences in their genes, the panspecific nativism typical of adaptationist evolutionary biology and the idiotypic nativism of behavior genetics became confused with each other(Tooby and Cosmides, 1990a). Obviously, claims about a complexly organized, universal human nature, by their very character, cannot participate in racist explanations. Indeed, they contradict the central premises of racialist approaches. Yet, despite this fact, adaptationist approaches and behavior genetics remain inextricably intertwined in the minds of the majority of social scientists.

(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 John Tooby & Leda Cosmides, The Adap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Jerome H. Barkow, Leda Cosmides, John Tooby 편집, 1992), 35,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pfc92.pdf )

 

 

 

첫째,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튼튼한(robust, 안정되게 발달하는) 보편적 인간 본성에 대한 모델들을 바로 그 성격 때문에 집단 간 차이에 대한 인종주의적 설명에 참여할 수 없다. 이것이 인간 본성을 무엇이든 보편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정의 수법(definitional trick)일 뿐인 것은 아니다. 선택이 보통 복잡한 적응들을 보편적 또는 거의 보편적이 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음을 믿을 만한 강한 이유들이 있다. 따라서 사소한, 표면적, 비기능적 형질들에 아무리 많은 변이가 있을지라도 인간은 복잡한, -전형적, -특유의 적응들의 구조를 공유함에 틀림 없다. 오래 사는 성적 번식자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의 복잡한 적응들의 근저에 있는 유전자들이 개인마다 다양하다면 복잡한 적응들은 매 세대마다 일어나는 성적 재조합의 무작위적 과정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성적 재조합과 결합된 선택은 특히 인간과 같이 열린 개체군 구조(open population structure)이며 오래 사는 종의 경우에는 생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적등들의 통일성을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Tooby & Cosmides, 1990b). 물론 실증적으로는, 『그레이 해부학 교과서(Gray's Anatomy)』의 어느 쪽을 펼치더라도 전 세계 개별 인간들의 해부학적 세부 사항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복잡한 생리적 적응들이 두드러지게 단일형(monomorphism)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아직 (신경해부학적으로 기술된 것을 예외로 하면) 심리적 적응들을 직접 수는 없지만 그것들도 꼭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 본성은 모든 곳에서 똑 같다.

In the first place, as discussed, models of a robust, universal human nature by their very character cannot participate in racist explanations of intergroup differences. This is not just a definitional trick of defining human nature as whatever is universal. There are strong reasons to believe that selection usually tends to make complex adaptations universal or nearly universal, and so humans must share a complex, species-typical and species-specific architecture of adaptations, however much variation there might be in minor, superficial, nonfunctional traits. As long-lived sexual reproducers, complex adaptations would be destroyed by the random processes of sexual recombination every generation if the genes that underlie our complex adaptations varied from individual to individual. Selection in combination with sexual recombination tends to enforce uniformity in adaptations, whether physiological or psychological, especially in long-lived species with an open population structure, such as humans(Tooby & Cosmides, 1990b). Empirically, of course, the fact that any given page out of Gray's Anatomy describes in precise anatomical detail individual humans from around the world demonstrates the pronounced monomorphism present in complex human physiological adaptations. Although we cannot yet directly "see" psychological adaptations (except as described neuroanatomically), no less could be true of them. Human nature is everywhere the same.

(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 John Tooby & Leda Cosmides, The Adap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Jerome H. Barkow, Leda Cosmides, John Tooby 편집, 1992), 38,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pfc92.pdf )

 

 

 

Tooby & Cosmides근본적으로 갈리는 – 심지어 반대되는 – 프로그램들과 주장들이 혼동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진화 심리학과 행동 유전학이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이름으로 한 묶음으로 비판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 집단 간의 조금이라도 중요한 행동의 차이가 집단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 때문이라는 인종주의적 생각이라는 구절에서 나는 J. Philippe Rushton의 『Race, Evolution, And Behavior: A Life History Perspective』를 떠올렸다. 실제로 Tooby & CosmidesRushton을 염두에 두었는지 여부는 확실히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곳의 유아는 똑 같은 상태에서 태어나며 같은 발달 잠재력, 진화한 심리, 또는 생물학적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주장하는 Tooby & Cosmides와는 달리 Rushton은 백인이 흑인에 비해 선천적으로 지능이 높은 것을 비롯하여 온갖 정신적 측면에서 선천적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Rushton이 행동 유전학을 남용하여 인종주의를 정당화한다는 비난을 가장 격렬하게 받는 것 같다.

 

 

 

나는 진화 심리학과 행동 유전학의 연구 초점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다고 서로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두 과학 분과가 반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과학 분과 사이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Tooby & Cosmides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 이상해 보인다. 오직 둘 중 하나가 사이비과학일 때에만 두 분과가 반대될 수 있을 것이다. Tooby & Cosmides가 행동 유전학이 사이비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진화 심리학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백지론을 강하게 공격하는 Tooby & Cosmides가 인종적 차이 문제에 있어서는 백지론자들과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Tooby & Cosmides는 정신적인 면에서 보이는 인종 간 선천적 차이에 대한 주장을 덮어놓고 인종주의적이라고 낙인 찍는 것 같다.

 

그들의 말대로 인간은 유성 생식을 하기 때문에 복잡한 적응이 인종마다 서로 근본적으로 다를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혼혈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가 같더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를 수 있다. 예컨대 기본적인 신체 구조가 인류 보편적이라 하더라도 인종들은 선천적으로 키가 서로 상당히 다를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쿵산족이나 호텐토트족과 스웨덴인 사이의 평균 키 차이는 40cm 정도나 되며 이것이 순전히 영양 상태의 차이 때문은 아닌 듯하다. 흑인의 음경이 백인보다 상당히 크다. 흑인이 대체로 백인보다 가난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은 선천적 차이로 보인다. 신체적인 면에서 이런 상당한 선천적 차이가 있다면 정신적 측면 즉 지능이나 성격에서 상당한 선천적 차이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구조의 기본적 차이와 구조의 크기 차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두 인간의 신체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가 없지만 키, 몸무게, 키 대비 다리 길이의 비율 등에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구조의 기본적 차이와 구조의 성능 차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두 인간의 신체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가 없지만 달리기 능력, 시력 등에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정상적인 두 인간의 뇌 구조에는 기본적인 차이가 없지만 뇌의 성능에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인종 간에도 비슷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인종 간 평균 키에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선천적인 것 같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인종 간 IQ 차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선천적일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Tooby & Cosmides는 개체군 간 차이보다는 개체군 내 차이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백지론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여기서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것은 개체군 사이에 선천적 키 차이나 선천적 IQ 차이가 없다는 근거로 쓰일 수 없다.

 

 

 

나는 진화 심리학자들 중에 Tooby & Cosmides를 가장 좋아한다. 그들의 글은 약간은 어렵지만(초보자들은 매우 어렵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의 글 중에서 가장 명료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백지론자들의 온갖 비난에 굴하지 않고 백지론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인종적 차이 문제에서는 왜 이런 허술한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2010-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