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의 적응 가설을 소개할 때 우리 조상 남자들이 여자를 강간해서 임신시킬 때가 있었다. 강간이 번식에 도움이 된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남자가 강간을 하도록 진화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 조상 남자들이 여자를 강간하다가 보복을 당할 때가 있었다. 강간이 번식에 손해를 끼친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남자는 강간을 하지 않도록 진화했다는 식의 가설만큼이나 쓸모가 없다. 어떤 행동이 번식에 이득이 되기도 하고 손해를 끼치기도 할 때 둘 중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즉 이득 분석이나 비용(손해) 분석만 해서는 안 된다. 둘 모두를 고려한 비용-이득(cost-benefit) 분석을 해야 한다.

 

 

 

적응 가설을 제시할 때 심리적 메커니즘의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 행동의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만약 재채기처럼 틀에 박힌 행동이라면 행동의 수준에서 이야기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들은 대개 그렇게 틀에 박힌 형태를 띠지 않는다. 이럴 때에는 행동의 수준보다는 심리적 메커니즘의 수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낫다. 강간의 경우에도 행동의 수준에 초점을 맞추어서 남자가 강간을 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식으로 가설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어서 강간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전문화된 심리적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식으로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강간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전문화된 선천적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강간의 적응 가설에 대비되는 부산물 가설은 그런 선천적 심리적 메커니즘이 없다는 가설이다.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이 없는 상태에 비해 그런 메커니즘이 있는 상태일 때 남자가 강간을 더 많이 할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강간의 적응 가설에 대한 분노는 이런 속단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상황은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강력한 성충동 메커니즘이 있고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강제력을 사용할 때가 꽤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이 따로 없을 때 오히려 강간을 더 많이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에 대한 적응 가설이 상당히 가망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야기해보겠다.

 

대다수 진화 심리학자들은 근친상간 회피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실증적 증거는 제쳐두기로 하자. 여기에서는 왜 근친상간 회피 메커니즘의 적응 가설이 그럴 듯한지를 이야기해 보겠다. 만약 근친상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특수한 메커니즘이 따로 없다면 일반적인 성충동 메커니즘을 비롯한 여러 일반적인 메커니즘들이 상호작용하여 근친상간을 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결정되면 근친상간과 관련하여 최적화된 행동 즉 적응적인 행동을 산출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개인이 근친상간의 비용-이득 분석을 위한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규모 통계 조사를 통해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가 기형아가 될 확률이 이제는 학계에 어느 정도 정확하게 알려졌다. 그리고 근친상간이 왜 기형아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지 그 이유도 어느 정도 밝혀졌다. 하지만 이것은 최근에 알려진 정보다. 인간은 유해 열성 유전자(deleterious recessive gene)와 관련된 유전 이론과 근친상간으로 인한 기형아에 대한 통계가 있기 전에 진화했다.

 

원시 시대의 개인이 근친상간의 비용-이득과 관련된 정보를 거의 알 수 없었던 것과는 달리 자연 선택은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 자연 선택은 전지하다(omniscient).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시행착오의 힘 - 자연 선택, 도구 그리고 한의학전지한 자연 선택을 참조하라.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69

 

전지한 자연 선택은 자신이 아는 정보를 바탕으로 심리적 메커니즘을 적응적인 방향으로 주조할 수 있다.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근친상간 회피 메커니즘이 있다면 일반적 메커니즘들만 있을 때보다 더 적응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강간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동의 하의 성교일 때와 강간할 때의 비용-이득 구조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강간에 전문화된 메커니즘이 없다면 최적화에 가깝게 강간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자연 선택은 개체가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그런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을 설계할 수 있다.

 

 

 

위에서 나는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의 진화에 영향을 끼치는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선택압이 있다고 해서 꼭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의 발달과 유지에 필요한 비용이 그 메커니즘의 작동으로 얻는 이득에 비해 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메커니즘이 진화하기 어렵다. 어쩌면 과거에 강간이 일어날 만한 상황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강간과 관련된 선택압이 너무 작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의 발달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이 진화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이 따로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더 적응적이라고 해도 꼭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선택압은 선택압일 뿐이다. 맹점이 없는 상태가 맹점이 있는 상태보다 더 적응적임에도 불구하고 척추 동물의 맹점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강간 여부 결정 메커니즘이 따로 있는지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남자에 대해 실증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201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