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뜬금없이 생각난 건데,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좀 따져 보면 왜 이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제목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페르시아의 고전어에 관한 것인데요.. 사실 중세에 이슬람화되어서 그렇지, 아랍 발흥기 초기까지만 해도 페르시아 문화권은 아랍-이슬람 문화권과 매우 색채가 다른 서아시아의 주요 문화권 중 하나였습니다. 당장 종교면만 봐도, 7-8세기까지만 해도 서아시아의 4대 종교 중 하나로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와 함께 조로아스터교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거기다가 구 사산조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마니교나 불교 등의 종교도 어느 정도 세를 얻으면서 복잡한 문화적 배경이 형성되어 있었고요) 아랍 점령 초기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서 가장 문화적, 과학/기술적으로 발달한 지역은 단연 페르시아였고, 이후 수 세기에 걸친 페르시아어-아랍어 번역 작업을 통해 아랍-이슬람 문화가 페르시아 문화를 흡수하면서 발전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현대에 와서 페르시아 고대어(아베스타어 및 고대 페르시아어)는 고전어로서의 권위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후 신학, 철학, 과학의 중심어로서의 지위가 아랍어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페르시아어로 표현된 사상도 만만치 않았고, 특히 문학 방면에서 페르시아어는 나중의 16세기 사파비조 성립 이전까지 티무르조 말기에 최후의 전성기를 구가한 황금 시대를 맞게 됩니다. 요컨대, 결코 아랍-이슬람 문화에 페르시아-이슬람 문화가 종교적 측면을 제외하면 그렇게 꿀릴 것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정말로 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적으로 별로 발달하지 못한 문화권이 그보다 훨씬 유서 깊고 발달한 전통을 간직한 타 문화권을 지배 하에 두었을 경우, 많은 경우 정치적으로는 전자가 후자를 압도하더라도 문화적으로는 후자가 전자를 이끌어 나가는 형국이 관찰되죠. 당장 투르크-이슬람 왕조들(및 투르크계 페르시아 왕조들)이 그러했고, 게르만족이 라틴-그리스 문명권에 대해, 여러 주위 민족들이 중국 문명권에 대해 그러했지요. 이때 후자의 문화적 권위를 보존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그 고전어인데 말이죠.

물론 지배기가 너무 길어 타 문명권에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 경우도 있지만(이집트 같은 경우) 이 경우는 중세 전반기의 아랍과 몽골의 지배를 제외하면 페르시아계 독립 왕조도 많았고, 근대까지 이어지는 투르크계 왕조들은 문화적으로 페르시아-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여서 페르시아화되었으니 완전 동화의 사례로는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더구나 페르시아어는 근세까지만 해도 중앙아시아와 북인도(*)의 교양과 외교의 언어이자(18-19세기에 유럽에서 프랑스어가 그랬던 것과 비슷한) 공용어였죠. 이렇게 세가 컸던(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큰) 언어의 고대어가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요?

당장 떠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 이슬람 유입 후 고대 페르시아어로의 창작이 별 호응을 얻지 못하여 이후에 고전어 전통의 성립이 단절되었다는 것인데요, 일단 이건 제 추정에 불과하며, 그랬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왜 그랬는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전례 언어인 아베스타어는 그렇다 쳐도, 아랍계 문자와 독립된 문자 전통도 있었던 고대 페르시아어(**)가 권위를 잃은 것은 정말로 기이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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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의 무굴 제국은 지배층에 구성상 투르크-몽골계가 많이 포함되긴 해도 이 지배층의 뿌리는 페르시아-이슬람 문화가 널리 퍼져 있던 중앙아시아였기 때문에, 대체로 상용어로서 페르시아어를 사용했습니다. 물론 이후에 서서히 힌디-우르두어 등 지역 언어로의 교체가 일어나지만, 전반적으로 이 지역에서 영어의 보급 이전까지 교양 언어로서의 지위는 유지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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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혼란스럽게 쓴 감이 있는데(조금 수정했습니다), 여기서 '고대 페르시아어'라는 용어로 저는 '고 페르시아어(Old Persian)'와 '중기 페르시아어(Middle Persian)'를 통틀어 칭하고 있습니다. 중기 페르시아어는 이슬람 이전 페르시아 왕조, 즉 사산 왕조의 공용어였고(아이라 M. 라피두스, 『이슬람의 세계사』 페르시아 부분 참조) 이슬람의 사산조 정복으로 모종의 단절이 일어나서 이후 페르시아어 문헌 전통은 아랍어와 혼성된 새로운 페르시아어인 '신 페르시아어(New Persian)'에 기초해 있습니다. 현재 페르시아 문학 전통에서 통상 '고전 페르시아어'라 불리는 것은 신 페르시아어의 전반기 형태죠. 하지만 저는 보다 독자적인 페르시아색이 강한 고대 페르시아어의 고전어 전통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