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도덕 규범의 보편성에 대한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만 거칠게 살펴보겠다.

 

첫째, 문화 구성주의(cultural constructionism)에 따르면 색은 문화적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문화권에 따라 색을 보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

 

둘째, 현대의 인지 심리학과 진화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색 처리 메커니즘이 있다. 따라서 인류는 서로 매우 비슷하게 색을 본다. 인간은 3차원으로 색을 보도록 설계되었다. 세 개의 숫자로 인간이 보는 색을 표현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에 익숙한 사람들은 RGB(Red, Green, Blue)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색을 조합하여 인간이 보는 색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모니터에서는 그런 식으로 색을 조합한다. (색상, 명도, 채도)의 세 차원으로 색을 표현할 수도 있다. 적록 색맹인 사람과 같은 경우에는 색을 2차원으로 보며 완전 색맹인 사람은 색을 1차원으로 본다. 색맹은 유전자 이상 등 때문이지 남들이 색을 공부할 때 졸았거나 색을 1차원이나 2차원으로 보도록 가르치는 문화권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셋째, 색 실재론(color realism)에 따르면 색은 물체 자체의 본질적인 측면이다. 빨간색이나 파란색과 같은 색깔들은 우주 보편적이다.

 

둘째 입장이 옳다는 점이 현대에는 명백해졌다. 인간은 색을 3차원으로 보도록 설계되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색을 1차원이나 2차원으로 보는 문화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색을 4차원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색은 인류 보편적이다. 하지만 우주 보편적이지는 않다. 지구 상의 다른 동물 중에는 색을 1차원, 2차원 또는 4차원 이상으로 보는 동물이 있을 것 같다. 인간만큼 똑똑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외계인이 꼭 색을 3차원으로 보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설사 3차원으로 색을 본다고 해도 인간과 똑 같은 방식으로 빨간색, 파란색 등을 보리라는 보장은 없다. 인간의 색 처리 메커니즘은 인간의 진화 역사를 반영한다. 빨간색은 물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구성해내는 것이다.

 

 

 

나는 도덕 규범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문화권에 따라 규범이 무한히 다를 수 있다는 문화 구성주의는 틀렸다. 인간은 비슷한 방식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도덕 규범은 인류 보편적이다.

 

적어도 절대다수의 인간이 그렇다. 어쩌면 정신병질자(psychopath)의 경우에는 도덕 판단을 보통 사람들과 상당히 다르게 내리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정신병질자의 경우에는 색맹처럼 유전적 이상 등 때문에 도덕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덕 규범에 인류 보편적인 측면들이 있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절대다수의 인간들이 똑 같은 도덕 판단을 내린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맛 처리 메커니즘에 선천적이고 보편적인 측면들이 있다고 해도 어떤 문화권에서 별미인 것을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역겨워서 못 먹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덕 실재론(moral realism)에 따르면 도덕적 기준은 인간의 뇌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도덕 규범은 우주 보편적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생각은 색이 우주 보편적이라는 생각만큼이나 틀렸다. 인간의 색 처리 메커니즘이 인간의 진화 역사를 반영하듯이 인간의 도덕 판단 메커니즘도 인간의 진화 역사를 반영한다. 2차원 이하 또는 4차원 이상으로 색을 보는 외계인이 있을 수 있듯이 인간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도덕 판단을 내리는 외계인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수학적 진리와 물리학적 진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충분히 똑똑하고 충분히 엄밀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진화한 서로 다른 종의 동물들이 모여서 수학 토론과 물리학 토론을 벌인다면 결국 동의에 이를 수 있다. 수학적 진리와 물리학적 진리는 우주 보편적이다. 수학이 많이 발달했다면 외계인도 에우클레이데스(Εκλείδης, Euclid, 유클리드) 평면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의 뉴턴 물리학과 비슷한 것을 믿고 있다면 아인슈타인이 결국 외계인 물리학자들을 설득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외계인이 지구의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뛰어넘는 어떤 이론까지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외계인이 지구 물리학자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이론을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도덕에는 그런 우주적 진리가 없다. 한 종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 사이에서 진리로 통하는 규범들이 있을 뿐이다. 외계인과 지구인이 도덕 철학에 대해 토론을 아무리 많이 벌여도 어떤 규범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도덕 심리학과 같이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외계인과 지구인이 동의에 이를 수 있다. 과학에서는 논리와 실증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지구인 도덕 심리학 즉 지구인이 왜 어떤 것이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는지를 밝히는 과학의 경우 지구인과 외계인이 동의에 이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외계인 도덕 심리학의 경우에도 지구인 심리학자들과 외계인 심리학자들이 동의에 이를 수 있다. 누가 어떤 도덕적 문제에 대해 왜 그런 식으로 판단을 내리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

 

 

 

외계인의 진화에도 친족 선택의 논리와 상호적 이타성(reciprocal altruism)의 논리 등이 작동할 것이기 때문에 지구인의 규범과 외계인의 규범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인의 선천적 도덕 판단 메커니즘과 외계인의 선천적 도덕 판단 메커니즘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인간이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도록 설계된 이유는 강간 당하는 여자의 친족, 친구, 남편이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강간이 유력한 전략일 때가 별로 없기 때문인 듯하다. 만약 전체 성교 시도의 절반 정도가 강간인 오랑우탄이 인간만큼 똑똑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면 강간에 대한 도덕 판단이 인간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만약 암컷이 훨씬 힘이 세며 수컷이 더 성교를 하고 싶어하는 종이 인간만큼 똑똑해진다면 아예 강간에 대한 규범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종에서는 강간이 일어날 일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성교를 더 원하는 쪽에서 힘이 약하다면 강간이 불가능하다. 힘이 센 쪽에서 성교를 덜 원한다면 강간을 할 이유가 없다.

 

인간에게 평등 개념이 상당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인간이 일부일처제에 가까운 짝짓기 체제에서 진화했기 때문인 듯하다. 만약 바다코끼리가 인간만큼 똑똑해진다면 극단적인 서열의 규범이 지배할 것이다.

 

인간에게 근친상간 타부가 있는 이유는 인간의 경우에는 절대다수의 포유류처럼 근친교배가 부적응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일상적으로 근친교배를 하는 종이 인간만큼 똑똑해진다면 근친상간을 당연시할 것이다.

 

만약 개미와 같은 종이 인간만큼 똑똑해진다면 집단 내 규범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규범이 없어도 집단 내에서는 서로 극단적인 이타성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영장류의 한 종인 인류의 조상이 아주 똑똑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Stephen Jay Gould가 지적했듯이 만약 수천만 년 전에 소행성이 지구와 박치기 하지 않았다면 공룡의 대부분이 갑자기 멸종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당시의 우리 직계 조상이 1억 년 이내에 현재의 인간처럼 똑똑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진화에는 온갖 우연(물리학적 관점에서는 우연이 아니지만 진화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우연으로 볼 수 있는 것들)들이 작동하며 인간은 그런 우연이 만연했던 진화 역사의 산물이다. 인간의 선천적 도덕 판단 메커니즘들에는 그런 우연들의 효과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것이 우주 보편적이라고 보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2010-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