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사무치는 생각

문득 잠깨어 보니 머리맡에 가득한 달빛

땅에 서리가 내린 것 아닌가 헷갈렸다오

눈 들어 산위에 휘영청 걸린 달을 보다가

고향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 떨구었다오


<靜 夜 思>
牀 前 看 月 光
疑 是 地 上 霜
擧 頭 望 山 月
低 頭 思 故 鄕


언어의 압축과 의미의 비약을 통한 정서적 승화는 시의 중요한 존재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목도 시의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좋은 시는 제목과 본문의 내용이 서로 중복되지 않으면서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상호 보완하고 상호 완성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겁니다.

이백의 이 시도 제목과 본문의 내용이 기막히게 상호작용을 하는 사례일 것 같습니다.  원래의 제목은 말 그대로 '고요한 밤의 생각'이라는 뜻이죠. 이 제목과 시의 내용이 긴밀하게 결합하여 뗄래야 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시인이 고요한 밤에 상념에 잠긴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상념에 잠기게 되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시 본문의 내용이 되는 겁니다.

이 시 첫 줄(행)이 이러한 의문에 답하고 시 전체의 상황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牀은 평상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침대 즉, 잠자리를 말합니다. 첫 줄의 의미를 직역하면 '침대 앞에서 달빛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에서는 매우 중요한 상황 설명 즉 '방금 잠에서 깨어나 보니...'라는 전제가 생략돼 있습니다. 자다가 문득 깨어나 보니 달빛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런 의미인 겁니다.

도대체 이 시에서 단 한마디도 '잠에서 막 깨어났다'는 표현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느냐? 이런 질문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시의 과학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 해답이 바로 둘째 줄에 나옵니다. 둘째 줄은 '땅위에 서리가 내렸나 의심했다'는 의미이죠. 도대체 달빛을 보고서 '서리가 내렸다'고 의심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멀쩡한 정신에 계속 주위를 보고 있었는데 달빛을 보고서 서리가 내렸다고 의심했을까요? 물론 잠을 자지 않고서 다른 일에 집중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달빛을 깨닫는 순간 그것을 서리라고 헷갈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추정도 첫 줄의 牀(침대)라는 표현에서 가로막히고 맙니다. 침대에서 다른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기보다는 아무래도 잠을 자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테니까요. 牀라는 글자와 밤이라는 시점(달이 떠 있으니까), 의심했다는 표현 등을 결합하면 시인이 잠을 자다가 문득 깨어서 환한 달빛을 보고 서리로 의심했다는 상황 이해가 합리적인 것입니다.

첫째 줄의 '앞 전(前)'을 '침대 앞'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많은데, 제가 보기에 저 상전(牀前)은 침대 머리 부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인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머리맡에 가득찬 달빛을 보고 서리가 내린 것으로 착각하는 정황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달빛은 달빛인데 그게 환한 달빛인지 아니면 그냥 초승달처럼 희미한 달빛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부분 역시 시에서는 단 한 마디도 설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충분히 유추가 가능합니다. 바로 '서리인가 의심했다'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문득 잠에서 깨어 달빛을 보고 서리라고 의심할 정도라면 희미한 달빛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눈에 환하게 꽉 차는 빛이어야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야 시인이 '서리가 내렸나?'라고 순간적으로 헷갈리는 게 자연스럽죠.

자, 첫 줄과 둘째 줄에서는 이 시인이 처한 상황, 도입부가 완벽하게 설정됐습니다. 이 시인은 객지를 쓸쓸하게 여행중입니다. 계절은 아마 늦가을 정도일 것 같네요. 늦가을이란 말이 어디서 나오느냐구요? '서리가 내린 것'으로 의심했다지 않습니까? 잠을 자면서도 몸에 느끼는 한기, 서늘한 기운이 있었기 때문에 눈을 뜨자마자 환한 달빛을 보고 서리라고 착각하는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즉, 육체적 감각이 정신적 반응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자면서 느끼는 신체적 감각이 꿈이나 그런 정서적 반응으로 연결되는 현상이요.
 
객지를 여행중이라는 것은 또 어디서 나온 정보일까요? 물론 첫 줄과 둘째 줄의 상황을 봐도 대충 연상이 되긴 합니다만, 확실하게 못을 박는 것이 마지막 줄의 내용이죠. 고개를 푹 떨구고 고향 생각에 잠겼다는 것 아닙니까? 고향 집에서 잠을 자다가 환한 달빛 보고서 문득 고향 생각에 잠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스럽습니다. 마지막 줄의 '고향 생각'이라는 표현에서 이 시 전체의 상황, 시인이 처해 있는 공간과 시점 등이 한꺼번에 명확해지는 것도 좋은 문학 작품이 가지는 효과의 하나입니다. 절정, 완성 등의 기능 말입니다. 소설의 경우에는 이런 것을 일컬어 충격적인 결말(surprise ending)이라고 합니다만, 시에서도 그 프로세스는 비슷할 것 같습니다.

셋째 줄과 넷째 줄은 매우 명확하게 대구(對句), 대조의 효과를 살리고 있습니다. 한번 살펴봅시다.

먼저 擧와 低가 대조됩니다. '들 거(擧)'는 공간 측면에서는 높은 위치를 말합니다. 반면 '낮을 저(低)'는 낮은 위치를 말하죠. '들 거(擧)'는 보다 의식적인 행동인 반면, '낮을 저(低)'는 의식적이라기보다 무의식적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셋째 줄에서는 고개를 들어 산에 걸린 달을 보았는데, 넷째 줄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 고향 생각에 잠겼다는 것입니다. 높았다가 낮아지죠. 고향이 그리워져서 침울해지고 슬퍼지는 시인의 정서적 반응을 두 글자(擧와 低)의 대조를 통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정서적 태도의 차이는 셋째 줄의 '바랄 망(望)'과 넷째 줄의 '생각할 사(思)'의 대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바란다는 것은 보다 의지에 가까운 태도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의지라기보다 정서적 반응에 가까운 현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셋째 줄과 넷째 줄의 각각 세번째 글자까지는 대조되고 대립하는 의미를 다루고 있지만 넷째와 다섯째 글자는 다릅니다. 이것도 대조/대비인 것은 맞지만 그 의미의 맥락에서는 일체화, 통일화입니다. 즉, 세번째 줄의 '산에 걸린 달(山月)'과 네번째 줄의 '고향'은 대조적인 표현이자, 의미, 이미지입니다만 내용상으로는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달은 달인데, 왜 산에 걸린 달일까요? 여기에 이 시의 매우 깊은 함의가 있습니다. 그냥 공중에 높이 떠 있는 달은 지형과 상황에 대한 연결이 적습니다. 그냥 허공에 떠 있는 달인 거죠. 하지만 산에 떠 있는 달은 바로 '상황과 지형, 배경과 함께 하는 달'인 겁니다. 바로 달이 걸려 있는 산이 시인에게 무언가를 연상시키고, 상념에 잠기게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것이죠. 무엇을 연상하는 것일까요? 바로 고향에 대한 연상이고, 고향 산천에서 보던 달이 이 시인의 상념을 후려갈겼던 것입니다. 그냥 허공에 떠 있는 달은 이런 연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훨씬 낮습니다.

이 지점에서 셋째, 넷째 줄 앞 부분의 대조(높음-낮음, 행동-상념)가 사실은 뒷 부분의 통일(산에 걸린 달-고향)을 위한 장치라는 것이 명백해집니다. 이런 통일, 동일시, 일체화를 위해 시인은 앞 부분의 차이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냥 결론 부분의 일체화만 얘기했다면 극적인 반전이나 승화는 없습니다. 그러면 시적 고양도 없죠.

이렇게 해서 살펴본 시인의 모습, 시인의 상황은 이런 겁니다. 고향을 멀리 떠나 객지 타향을 떠도는 시인은 이미 상당히 나이를 먹었습니다(왜 나이를 먹었다고 판단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다지 성공하지도 못했고, 어떻게 보면 외롭고 쓸쓸하게 떠도는 처지입니다. 가족도 곁에 없습니다. 당장 내일의 삶이 어떻게 될지, 고향에 언제 돌아가게 될지도 기약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시인이 어느 늦은 가을날 객지에서 잠이 들었는데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달빛이 환한 겁니다.
 
깊은 밤, 천지가 고요한데 주위에 가득찬 그 달빛이 고향의 가을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산마루는 과거에 시인이 뛰어놀던 고향 산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잊고 있었던 고향을 떠올리며 현재 자신의 삶과 과거의 삶을 한꺼번에 연결하고 통일시키는 정서적 체험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 시의 내용입니다.

이 시는 이백의 시 가운데 제가 유일하게 전문을 기억하는 작품입니다. 짧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용이 강렬해서 기억하고, 또 무척 좋아합니다. 전부 20자의 짧은 표현 안에 이렇게 깊고 풍부한 서정을 담은 작품도 참 드물 것 같습니다.

제목과 본문의 표현은 모두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니 번역의 책임은 제가 집니다. 많은 번역본을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을 담은 번역이나 해설도 드물 것이라고 감히 자신합니다.

사족 : 이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새삼스럽게 "인문학은 모두 쓰레기"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과학주의자들(과학자들이 아니고)이 떠오르는군요. 문학이 하는 기능은 과학의 그것과 다릅니다.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학의 존재 이유입니다. 인문학자들은 과학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는데, 과학주의자들은 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이 과학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명확한 증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