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말하는 엔트로피(entropy)는 물리학 용어가 아니라 정보 이론의 용어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정보의 비트(bit) 수다. 컴퓨터에 있는 wav 음악 파일과 bmp 그림 파일의 비트 수가 있다. 그것을 압축 프로그램으로 압축하면 비트 수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이상적인 압축 프로그램으로 최대한 압축했을 때의 비트 수가 엔트로피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엔트로피 개념을 엄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보 이론 교과서를 보아야 할 것이다.

http://en.wikipedia.org/wiki/Entropy_(information_theory)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수 많은 선천적 메커니즘들이 있다. 이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인간 본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정보가 필요한가? 이런 의문과 연결하여 인간 본성의 엔트로피라는 표현을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 유전체(genome)가 몇 비트(bit)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안다. 즉 인간 유전체가 최대한으로 얼마만큼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지를 안다. 인간 유전체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base pair)으로 이루어져 있다. 염기쌍을 이루는 ‘문자’가 네 개(T, A, C, G)이므로 하나의 염기쌍은 2비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유전체는 최대 60억 비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상당히 큰 수이기는 하지만 1 기가바이트(gigabyte)도 안 된다. 요즘 나오는 개인용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용량보다도 훨씬 작다. 요즘에는 메모리 용량도 그 정도는 된다. 게다가 인간 DNA 중 대부분은 단백질 합성에 관련되지 않는 junk DNA이다. 또한 DNA를 이상적인 압축 프로그램으로 압축해야 인간 유전체의 엔트로피가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 유전체에 담긴 정보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를 반박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안하는 온갖 종류의 선천적 모듈들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를 담기에는 인간 유전체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선천적 인간 본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가 모두 인간 유전체에서 온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Cosmides & Tooby와 같은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런 가정을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나 역시 인간 본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가 유전체에서만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가 한 명이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 본성의 엔트로피 중 몇 %가 유전체에서 오고 몇 %가 환경(유전체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오는 것일까? 이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다. 어쨌든 나는 100%가 유전체에서 온다는 가정을 거부한다. 어쩌면 대부분의 정보는 유전체 바깥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유전자 결정론을 인곤 본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가 몽땅 유전체에 들어있다는 믿음으로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면 나는 유전자 결정론자가 아니다. 유전체에 들어갈 수 있는 정보가 그리 많이 않다는 점을 근거로 대량 모듈성 테제를 반박하는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유전자 결정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유전체의 용량이 너무 작기 때문에 예컨대 인간은 선천적으로 강간이 악이라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그런 도덕적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선천적 모듈이 있다는 식의 명제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시각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각 메커니즘이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점, 시각 메커니즘이 선천적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각 메커니즘의 엔트로피는 몇 비트인가? 이것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다.

 

시각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은 엄청날 것 같다. 그 중 어느 정도가 유전체에서 오고 어느 정도가 유전체 바깥에서 오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시각 메커니즘은 선천적이다. 사람들이 선천적이라고 믿는 메커니즘들은 아주 많다. 뇌에는 후각 메커니즘, 촉각 메커니즘, 성충동 메커니즘, 식욕 메커니즘, 손가락 운동 통제 메커니즘, 발가락 운동 통제 메커니즘, 체온 조절 메커니즘을 비롯한 온갖 선천적 메커니즘들이 있다. 많은 인지 심리학자들이 언어 학습 메커니즘도 선천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학습 메커니즘도 만만치 않게 복잡할 것 같다. 신체에도 역시 온갖 메커니즘들이 있다. 심장, 신장, 허파, 다리, 손을 비롯한 온갖 선천적 모듈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고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것들도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백, 수천 개의 선천적 모듈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수백, 수천 개를 추가한다. 논의의 편의상 대부분 사람들이 500개의 선천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진화 심리학자들이 여기에 500개를 추가하고자 한다고 가정하자. 500개의 선천적 메커니즘은 되는데 1000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 본성의 엔트로피가 몇 비트인지 아는 사람들은 없다. 심지어 그 숫자가 10의 몇 제곱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기하는 수 많은 선천적 심리적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을 들먹이며 진화 심리학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2010-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