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규범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도덕 상대주의자입니다. 그러면서 도덕은 결국 취향일 뿐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을 썼습니다.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 생각은 상당히 길게 썼습니다. 특히 다음 두 글을 참고하십시오.

 

<자신의 도덕적 입장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잘못인가?>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360

 

<과학의 가치 중립성과 진화 심리학> "셋째 논점 – 과학의 연구 결과가 가치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가?"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99

 

 

 

근본적인 수준에서 규범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제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도덕 철학자 중에는 칸트가 그런 입장입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신의 권위를 빌어서 도덕 규범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가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칸트의 도덕 철학의 핵심 문제점 중 하나가 도덕 절대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심각한 횡설수설은 그것에서 비롯합니다.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는데 있다고 우기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칸트는 상당히 난해한데 그 난해함은 심오함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횡설수설에서 비롯합니다.

 

신의 말에서 절대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과연 신이 있는지, 신이 있더라도 과연 그런 말을 했는지 따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는 설사 신이 있고 그런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지고 싶습니다. 천당에서 호강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과연 도덕적입니까? 신이 절대선이라는 가정이 성립해야 "신의 말을 따르는 것이 선이다"라는 명제가 도출될 수 있습니다. 신이 절대선이라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절대선 개념이 성립할 수 있습니까?

 

도덕에는 절대적 기준이 있다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으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도덕 규범의 절대적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한 번 대 보십시오. 실제로 절대적 기준을 찾으려고 노력해 본다면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도덕 규범의 정당화에는 항상 "그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준에 부닥칩니다. 예컨대 "강간이 왜 나쁜가?"에 대해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니까"라는 대답은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왜 고통을 주는 것이 나쁜데?"라는 반문에 또 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바둑에서 지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그렇다면 바둑에서 이기는 것도 나쁜가?"라는 반문에도 답해야 합니다.

 

결국 "정당한 이유 없이 고통을 주는 것은 나쁘다. 그것은 그냥 나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약 "고통을 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전혀 나쁘지 않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