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는 '난 알아요'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나는 서태지가 나온 MBC 방송을 보았다. 보자마자 좋은 노래라고 느꼈고, 히트칠 거라는 것도 알았다. 회오리춤은 보는 것만으로도 신났다. 그러나 그가 랩송을 낳을지, 가요계에서 문화대통령 소리를 들을지는 몰랐다.

사실은 서태지 이전에도 우리나라에도 랩송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도 노래가 아닌 대사가 들어 있다. 그 대사는 짧지도 않다. 또 장덕과 장현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에도 노래가 아닌 대사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랩송은 랩송을 낳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랩송을 낳은 가수는 서태지였다.

내가 랩송을 떠올릴 때는 누군가가 산 위에서 눈덩이를 굴리는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그 사람은 작은 눈덩이를 산 아래로 굴리는데, 그 눈덩이는 점점 더 커지고 이윽고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나무와 흙과 낙엽을 뭍히고 계속 굴러 내려간다. 그 사람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그 사람과는 별개로 중력에 따라 눈덩이 자체의 운명에 따라 굴러 내려간다. 어느 순간 그 눈덩이가 산밑에 도달해서 몇 조각으로 쪼개질 때까지 계속 굴러 내려갈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문화는 누군가가 만들어서 태어나고, 곧 그 사람의 손을 떠나서 자라나고 퍼지고 수명을 다하는 것 같다. 문화는 생명을 갖고 있는 다른 생명체와 유사하다.

문화만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도 그러한 것 같다. 더 나가서 문명 전체가 생명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문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는다.

문명의 어떤 부분이 얼마나 자라고 얼마나 확장되고 얼마나 병들고 얼마나 오래 살다가 죽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무도 강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