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후반 15분 수아레스는 1-1로 동점인 상황에서 가나 도미니크 아다이아의 헤딩슛을 손으로 걷어냈다. 수아레스의 행동을 확인한 주심은 퇴장과 함께 가나에 페널티킥을 줬지만 아사모아 기안(25, 스타드 렌)이 실축하면서 우루과이에 40년 만의 4강 진출을 안겼다.

( <루이스 수아레스 반칙, 네티즌 설왕설래>, 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246 )

 

수아레스는 정말 치사한 행동을 했다. 하지만 승부만 따지자면, 냉정한 계산 하에 선택한 행동으로 보인다. 손으로 공을 막지 않았다면 골이 될 확률은 100%였으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게임에서 졌을 것이다. 반면 손으로 막을 경우에는 패널티킥으로 이어질 것이며 패널티킥 성공 확률은 80% 정도다.

 

관련 기사들에 네티즌들이 단 댓글들을 보면 두 가지 의견이 많았다. 한쪽 의견에 따르면 그것은 승리를 위한 최선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크게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쪽 의견에 따르면 그것은 너무 치사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올린 의견이 내 생각과 비슷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골로 인정하고 패널티킥을 추가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런 식으로 규칙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수아레스의 치사한 반칙을 보고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관련된 논란이 떠올랐다. 한국의 부자들이 미국에 비해 자선을 위해 별로 돈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마디로 부자들이 치사하다는 것이다.

 

나는 수아레스의 반칙도 치사하다고 생각하고 한국의 부자들도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비난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착하게 살라는 설교는 거의 효과가 없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원한다면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축구 경기의 경우에는 반칙을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도록 규칙을 만들어야 반칙을 덜 한다. 자선 문제의 경우에는 복지 제도 즉 강제적 자선을 강화해서 부자가 하기 싫어도 자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설교가 아니라 제도가 큰 효과를 발휘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개인에 대한 비난에 쏠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좌파 이론가들은 주류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제도에 관심이 쏠릴 경우 제도 개혁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지배 계급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에서 개인에 대한 비난에 관심이 쏠리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측면에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인간이 제도보다는 개인에 집착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오랜 기간 동안 진화했던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제도가 사실상 전혀 바뀌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번식에 별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다. 반면 한 개인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에 대해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번식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인간이 제도보다는 개인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설계되었다면 언론에서 개인 비난에 집중하는 것이 왜 잘 통하는지도 잘 설명된다. 이것은 인간이 잘 생긴 사람을 선호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잘 생긴 사람을 내세우는 방송이 인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이 제도보다는 개인에 집착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은 개혁가나 혁명가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그만큼 개혁이나 혁명이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이나 혁명이 어렵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나 다 안다. 문제는 왜 그것이 어려운지 밝혀내는 것이다. 그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빠른 길을 찾아낼 수 있다.

 

뇌물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뇌물을 주고 받은 사람들을 비난하기 바쁘다. 어떤 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뇌물을 줄일 수 있는지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만약 인간 본성이 그런 식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개인의 행동에 더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적어도 일부는 자신의 그런 습성을 의식적으로 뜯어고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노렸던 계몽의 효과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이기적 사고 왜곡을 의식화할 수 있다면 그런 식의 사고 왜곡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나는 프로이트를 무척 싫어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2010-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