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질자(psychopath)는 지극히 부도덕한 사람이다. 하지만 심각한 정신병이나 중증 정신지체는 없어 보인다. 중증 정신지체자 중에는 무엇이 옳은지를 모르기 때문에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 정신병질자는 무엇이 옳은지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정신병질자가 어떤 범죄 혐의를 받았을 때 보통 그 혐의를 부정하려고 한다. 강간 혐의를 받은 정신병질자가 강간이 뭐가 나쁜가요?라고 말하는 경우보다는 나는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저 여자가 거짓말하는 겁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살인 혐의를 받은 정신병질자가 살인이 뭔가 나쁜가요?라고 말하는 경우보다 그 인간이 먼저 공격했습니다. 정당방위였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은 정신병질자가 뇌물 좀 받으면 어때요라고 말하는 경우보다 저는 뇌물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옳고 그름을 잘 가릴 수 있음에도 나쁜 짓만 골라 하는 일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앎과 욕망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신병질자가 아닌 사람의 경우에도 가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데 그들은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잘 알고서도 저지른다.

 

정신병질자에게 옳은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거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의견이 일치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정신병질의 정의에 가깝다. 반면 정신병질자가 도덕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어떤 학자는 정신병질자와 보통 사람이 도덕 판단에 있어서는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학자는 정신병질자의 도덕 판단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병질자의 도덕 판단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과 도덕 판단 중 상당 부분이 선천적 인간 본성이라는 주장을 결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폐증의 경우 마음 읽기(mind reading) 모듈 또는 마음 이론 모듈(Theory of Mind Module, ToMM)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능이 높은 자폐인들은 마음 읽기를 상당히 그럴 듯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남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을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 모방하는 것이다. 정신병질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즉 남들이 타고나는 도덕 판단 모듈을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 모방하는지도 모른다.

 

 

 

정신병질자의 도덕 판단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여러 가지다. 정신병질자는 도덕 규범과 관습적 규범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보통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엄마가 허락한다면 동생을 마구 때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답하고, 엄마가 허락한다면 음식을 숟가락 대신 손으로 집어먹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라고 답한다. 여기서 폭행은 도덕 규범인 반면 숟가락 사용은 관습적 규범이다.

 

도덕적 문제를 주제로 정신병질자와 대화를 해 보면 횡설수설한다는 것이 금방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정신병질자가 횡성수설하는 이유는 도덕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다. 나는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신병질자가 횡설수설하는 이유는 도덕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병질자가 해야 할 과업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신병질자는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정신병질자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과업이다. 따라서 아무리 도덕 판단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다.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를 내면 사람들이 거의 한결 같은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것은 해당 도덕 판단이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선천적 메커니즘이 작동했음을 암시한다.

http://en.wikipedia.org/wiki/Trolley_problem

 

트롤리 문제를 비롯한 온갖 도덕적 딜레마 문제를 정신병질자들에게 낸 후 어떤 답을 내놓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만약 도덕 판단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 일반인과는 매우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일반인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는 혼란에 빠진다. 그냥 직관적 답을 내놓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모방하기가 매우 힘들다. 나는 이런 것을 다룬 연구를 본 적이 없다.

 

 

 

2010-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