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말이 풋콩을 더 좋아한다는 말을 아직은

부끄럼 없이 입에 올릴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젊은 여자들은 길거리에서 더욱 생경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날이 갈수록

저들의 젊음이 신기하고 기특하다

어쩌면 저렇게 만드셨을까?

새삼 하나님께 묻고싶어진다

 

회사에서 대청소를 하는데

산더미처럼 서류를 쌓아놓고 좍좍 찢으며

여자애들이 깔깔거리며 좋아 죽는다

좍좍 찢는 통쾌함 종이의 비명

여자애들이 종이를 찢으며 자기를 찢으며 자신의 순결을 저렇게 찢고싶은 것 아닌가 

니들 지금 오르가즘 느끼느냐, 묻고 싶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는 바람에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그 옆의 쓰러져가는 기와집

교사 사택이었지 막 교대를 졸업한 여자애가 처음 발령받은 곳

나는 밤을 이용해 스며들듯 찾아가곤 했지

담 너머 학교 운동장에 백년도 넘은 팽나무가 시커멓게 서 있고

 

내가 방에서 눕거나 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으면

벽 너머 부엌에서 여자애가 달그락거려

그 소리가 들리지, 벽을 통해서

엄마가 해준 밥 말고 그렇게 맛있는 밥은 아마 처음이었지

 

그때야 이런저런 생각, 고민이 있었겠나?

그저 서로가 좋고, 서로의 육체가 감사하고, 대견하고, 기적같은 거였지

난 잠자리에서 그 여자애를

내 암컷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게 더 정겹고 감각적이고 섹시하다고, 그때는

왜 그렇게 유추했는지 모른다

여자애는 헤어지는 날까지 한번도 그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밤을 보내고 나면 애들이 학교 오기 전에

시골 시외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에 그렇게 떠나오곤 했다

어느날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몇 십리 시골길을 걸었지

좁은 시골 마을 사람들 눈에 띄기도 싫고

그날은 또 그렇게 무작정 걷고 싶었어

 

가을날이었지

야, 그날 걸은 그 길이 왜 그리도

아름다웠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천지를 가득 채운 고요함 가운데

정적을 깨트리는 까치소리 꿩 날개치는 묵직한 소리

길가 풀잎에 맺힌 이슬

누런 들판 저 멀리 점점이 박힌 볏단들

 

처마 어두운 낡은 농가를 보둠고 있는 짙은 탱자나무 울타리들과

그 가운데 보석보다 놀라운 노란빛으로 박혀있는 탱자 열매들

끝내 기억해낼 수 없는 태초의 하모니 같았어

또는 영원히 속삭이는 전설이랄까

 

풋콩을 밝히는 늙은이처럼

오늘은 내가 비루먹은 말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왜 여자애들은 하나둘씩 세월 저편으로 떠나가는지

나는 여전히 걔들을 그냥 보내고만 있는지

왜 함께 떠나버리지 못하는지



이런 날이면 왜 하나님이

인간을 백 년 살기 어렵게 해놓으셨는지

그게 정말 축복일지 모른다는 그런

기분좋은 체념을 움켜쥔 손바닥 안에서

조용히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