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는 일반 침팬지(common chimpanzee)에 대해서만 다룰 것이다. 보노보(bonobo chimpanzee)는 일반 침팬지에 비해 집단 간 충돌이 훨씬 덜하다. 일반 침팬지 수컷들이 영역 순찰을 돌다가 다른 무리의 수컷을 의도적으로 죽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여러 학자들이 전쟁(war)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전쟁이나 개미의 전쟁과는 양상이 매우 다르지만 나도 관례에 따라 전쟁이라고 부르겠다.

 

 

 

수컷 침팬지가 전쟁으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다른 무리의 수컷들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

 

둘째, 다른 무리의 수컷들을 죽임으로써 그 무리의 암컷들을 차지할 수 있다.

 

셋째, 다른 무리의 수컷들을 죽임으로써 다른 무리의 세력을 작게 만들 수 있다. 이로써 자신들이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제목에 이타적 전쟁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따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쉬울 것 같다. 다른 무리의 수컷들을 죽이고 영역과 암컷들을 차지하는 것이 이타적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타적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무임승차와 연결시켜 생각하면 내가 왜 이타적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어떤 부족의 모든 성인 남자들이 사냥에 참여하여 애썼다고 가정해 보자. 그 후 사냥한 것을 똑 같이 나누어 먹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는 무임승차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다른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여기에서는 어떤 부족의 거의 모든 성인 남자들이 사냥에 참여하여 애썼다. 하지만 어떤 한 남자만 건강에 이상이 없는데도 슬쩍 빠졌다. 그 후 사냥한 것을 똑 같이 나누어 먹었다고 하자. 이 때 그 한 남자는 무임승차를 한 것이며, 다른 남자들이 그 남자를 위해 이타적 사냥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전쟁에 나서는 어떤 무리의 침팬지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어떤 무리의 거의 모든 어른 수컷들이 전쟁에 참여해서 열심히 싸운다. 반면 어떤 한 어른 수컷 침팬지는 슬쩍 빠진다. 하지만 그 어른 수컷 침팬지도 전쟁의 성과를 누릴 수 있다. 그 침팬지도 더 넓어진 영역에서 과일을 따 먹고, 새로 생긴 암컷들과 성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그 침팬지는 무임승차를 한 것이며 다른 침팬지들이 그 침팬지를 위해 이타적 전쟁에 참여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공공재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논리가 작동한다. 침팬지 사회에서 영역과 암컷들은 공공재다. 따라서 전쟁 같은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않고 그 혜택을 누리기만 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집단 선택론을 끌어들이는 이타적 전쟁론에 따르면 침팬지들은 실제로 이런 면에서 이타적이다. 집단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여 전쟁에 참여하는 침팬지들이 많이 있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더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침팬지가 자기 희생 정신을 발휘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 이타적 전쟁론의 골자다.

 

집단 선택론을 끌어들이면 가설을 만들기도 참 쉽고 이해하기도 참 쉽다. 단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집단 선택론이 대부분의 경우 가망성이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공공재의 비극 때문에 전쟁에 쏙 빠지면서도 혜택만 누리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개체군 내에서 퍼져나갈 수 있다.

 

 

 

개체 선택론자들은 이기적 전쟁론을 지지할 것이다. 개별 침팬지들이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침팬지에 비해 더 이득을 본다는 것이 그 골자다.

 

침팬지의 전쟁 참여라는 현상을 설명할 때 개체 선택론자는 커다란 어려움에 부닥친다.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위험하며 체력 소모도 심하다. 그리고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개체도 누릴 수 있다. 얼핏 보면 전쟁 참여로 개별 침팬지는 손해만 보는 것 같다. 가설을 만들 때부터 어려움에 부닥치는 것이다. 집단 선택론의 경우에는 집단을 위해라는 말만 집어넣으면 그럴 듯한 가설이 되는 반면 개체 선택론자는 상상력을 훨씬 더 많이 발휘해야 그럴 듯한 가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가야 한다.

 

도대체 전쟁에 참여하는 수컷 침팬지는 무임승차하려는 수컷 침팬지에 비해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이득은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치르는 대가를 초과할 것인가? 실제로 많은 수컷 침팬지들이 기꺼이 전쟁에 참여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집단 선택론은 가망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수컷 침팬지는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손해보다는 이득을 더 많이 본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과거에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이득을 더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들과 입을 수 있는 손해들의 목록을 나열해 보자. 우선 손해의 목록이다.

 

첫째,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둘째, 죽을 수 있다.

 

셋째,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이득의 목록이다.

 

첫째, 자신의 이타성을 과시할 수 있다. 자신이 무임승차나 하는 치사한 침팬지가 아님을 남들에게 알림으로써 우정 시장에서 더 잘 팔릴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할 수 있다. 다른 집단의 침팬지를 때려잡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집단 내 서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위에서 제시한 이득의 목록이 손해의 목록을 압도할 만큼 인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집단 선택론에 굴복할 생각은 없다. 수컷 침팬지의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득의 목록과 손해의 목록을 제대로 만들고 결국 정량 분석을 위한 모델을 만들어서 뭔가 그럴 듯한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과업으로 보인다.

 

 

 

201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