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래와 같은 글은 제 주제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평소 생각하던 것을 글로 풀게 되었습니다.

헛소리지만 대충 참조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 얘기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언론사 기자 출신을 비롯하여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소설가나 작가에 이르기까지 글 쓰는 법에 대해서 나름대로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글 쓰는 원칙이나 노하우를 정리해놓은 책도 많고, 그 내용도 풍부하고 설득력이 있더군요. 주의 깊게 읽으면 글 쓰는 요령이나 노하우에 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노하우나 글 쓰는 요령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것이 ‘나쁜 글을 쓰지 않는 방법’일 뿐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과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글 쓰는 노하우는 글을 쓸 때 기술적인 실수를 줄여주지만 그렇게 실수가 적은 글이라고 해서 좋은 글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별 내용이 없이 단순히 실수가 적은 글, 약점이 적은 글은 사람들의 비판은 덜 받겠지만, 정작 그 글이 존재해야 할 이유 즉 힘들여서 그 글을 쓰고 또 다른 사람들도 시간을 할애해서 그 글을 읽어야 할 이유를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무리 요리 솜씨가 뛰어난 주방장이 첨단 주방기구를 이용한다 해도 재료가 신선하지 않으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재료가 신선해도 그것만으로 일류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선한 재료는 요리법의 가공을 거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됩니다. 따라서 좋은 재료와 우수한 요리법 가운데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당연히 좋은 재료가 앞 순위를 차지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다듬는 요령을 익히기에 앞서 좋은 재료를 얻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글쓰기에서 좋은 재료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막연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지만 그래도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사 기자들 사이에서 이 원칙은 ‘기사는 발로 써야 한다’는 말로 일반화됩니다.

 

기사를 발로 쓴다? 흔히 엉망진창인 글을 타박할 때 “발로 써도 그보다는 낫겠다”는 말을 하지 않나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발’은 글 쓰는 기법이 아니라, 가장 좋은 정보를 찾아서 여기저기 거침없이 쫓아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관련 자료를 찾아 연구하는 그 노력을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후배들의 기사를 고쳐준 경험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이때 고치기 쉬운 기사와 고치기 어려운 기사는 뚜렷하게 구분이 됩니다.

 

문장이 좀 어설프고 다듬어지지 않았어도 ‘내용’이 있는 기사는 전체 방향을 잡기도 쉽고, 그렇게 기사의 전개 방향이 잡히면 기술적으로 글의 구성이나 문장을 다듬는 작업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문장이 엉터리라면 좀더 힘은 들지만 그래도 그것은 육체적 노력과 시간의 문제일 뿐이니 그렇게 심각한 골칫거리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문장이 번드르르 해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면 글을 고치는 것이 거의 ‘고문’ 수준이 됩니다. 취재한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면 글의 논리적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하나의 글 안에서 기자가 제시한 정보나 사실들도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기자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모르고,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지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흔히 ‘답이 없다’고 일컫는 경우입니다.

 

취재가 충실하면 글의 문장이나 형식은 둘째 문제가 됩니다. 기자가 무엇인가 말하기에 앞서 그 취재 내용 자체가 스스로 발언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부득이지문(不得已之文)을 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 좋은 글은 부득이지문(不得已之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득이(不得已)하다는 말은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한다’는 말로 통용됩니다. 그렇다면 부득이지문(不得已之文)이란 쓰기 싫은데도, 억지로 마지못해서 쓰는 글을 말할까요? 쓰기 싫은데 업무 때문에, 돈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쓰는 글들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실은 정반대입니다.

 

부득이지문(不得已之文)이란 글을 쓰는 사람이 알고 있는 진실이나 정보, 주장 등이 도저히 혼자만 알고 감춰둘 수 없을 만큼 간절해서, 그렇게 압도적인 무게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필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절로 밖으로 형태를 갖추어 쏟아져 나오는 글을 가리킵니다. 이런 글은 이미 형식이나 문장을 뛰어넘습니다. 아니, 진실이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형체를 갖추어 밖으로 표출됩니다.

 

‘재능이 끝나는 지점에서 형식이 시작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능’도 실제로는 외면의 형식이나 스타일을 뛰어넘는 알맹이 즉, 예술가나 작가, 학자, 언론인들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 등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읽은 우리나라 사람의 글 특히 해방 이후에 쓰여진 글 가운데 가장 힘이 있고 강력한 글로 태일 열사가 쓴 일기를 꼽습니다. 흔히 ‘전태열 평전’이라고도 부르는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열사가 노트에 쓴 일기를 토대로 고 조영래 변호사가 글을 덧붙이고 다듬어서 만든 책입니다.

 

조영래 변호사도 글을 잘 쓰시는 분이지만, 저는 그 분이 덧붙이고 가공한 내용보다 원래 전태일 열사가 노트에다 써 놓았던 그 짧은 문장들에 훨씬 더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문장들은 정말 압도적인 힘과 호소력으로 저의 정신을 강타했습니다.

 

그것은 문장의 유창함이나 아름다움, 논리와 형식의 완결성 등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전태일이란 청년이 20여 년 동안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 시간, 이웃을 뜨겁게 보듬고 자기 목숨조차 불살라 외치고자 했던 그 진실에서 폭포처럼 분출하는 힘이었습니다. 그 진실 앞에서 알량한 문장 기교 따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는 그러한 문장을 쓴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에게는 ‘문장이 중요한 게 아니고, 열심히 취재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늘 강조했습니다. 잘못된 문장은 기술적으로 쉽게 고칠 수 있지만, 부실한 취재로 만들어진 엉터리 정보는 독자들을 속이는 쓰레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쓰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기사를 쓰는 이유는 독자들의 행동을 기자의 의도대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기자의 의도라고 하면 오해를 사기 쉽지만, 실제로는 진실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최선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입니다.

 

기자들은 지식과 정보를 모아서 연구하고 가공하며, 그 결과물을 가지고 독자들을 설득해 행동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 주장에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진실은 그냥 얻어지지 않습니다. 성실한 연구, 치열한 고민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장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너무 거창한 얘기, 원론적인 주장이라고 느껴지십니까? 그럴지도 모릅니다. 실제 일선 업무에서는 엉터리 문장, 거친 표현을 다듬을 수 있는 몇 개의 스킬이 막연한 원칙보다 훨씬 더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를 그려야 고양이라도 나온다’고 합니다. ‘나무를 향해 쏜 화살보다 태양을 향해 쏜 화살이 훨씬 멀리 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운동을 배울 때도 기본 폼은 항상 실제보다 더 커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원칙이란 것은 어느 정도 과장이 불가피하고, 가급적 철저하게 강조해야 그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기자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런 자세 위에서 독자의 문제를 자기 일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실한 연구와 과학적인 접근으로 대한민국의 다양한 생태계를 선순환 구조로 바꾸는 기자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