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진화 심리학 책이 적어도 두 권은 있다.

 

Homicide(1988), Margo Wilson and Martin Daly

이웃집 살인마: 진화 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의 살인 본성(The Murderer Next Door: Why the Mind Is Designed to Kill, 2005), David M. Buss

 

『이웃집 살인마』는 읽어 보았고, Homicide』는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그 내용을 대충 알고 있다.

 

제목 중 ‘murderer’살인마라고 번역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Buss가 연쇄살인범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질투 등 때문에 살인을 하는 것을 다루었기 때문에 그냥 살인자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부제가 Why the Mind Is Designed to Kill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Buss는 모든 인간이 살인 조절 메커니즘과 살인 방어 메커니즘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Randy Thornhill이 모든 남자가 강간 조절 메커니즘을 타고나고 모든 여자가 강간 방어 메커니즘을 타고난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Buss는 살인의 적응 가설을 지지한다.

 

반면 Wilson & Daly는 살인이 부산물(by-product)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인간이 친자식보다 의붓자식을 덜 사랑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의붓자식을 학대하거나 살해할 가능성이 훨씬 클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수사자는 새로 무리를 차지한 다음에 남의 유전적 자식을 살해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반면 인간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강간의 경우 적응 가설이 훨씬 가망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 추측에 따르면 남자는 강간 조절 메커니즘을 타고나고, 여자는 강간 방어 메커니즘을 타고나고, 남녀 모두 강간은 심하게 나쁘다라는 식의 도덕적 판단을 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타고난다.

 

과연 살인 메커니즘도 진화했을까? Buss의 책은 살인의 적응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모아 놓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주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살인은 부산물일 뿐이라는 Wilson & Daly의 의견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살인이 적응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입증한 사람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살해를 위한 메커니즘이 온갖 종에서 진화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컨대 사자가 사냥을 할 때에는 목을 꽉 물고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

 

동종살해를 위한 메커니즘이 온갖 종에서 진화했다는 것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사자를 비롯한 온갖 종이 유아 살해를 한다. 또한 일반 침팬지(common chimpanzee) 수컷들은 다른 무리의 수컷을 의도적으로 죽인다.

 

 

 

과연 인간의 경우에는 어떨까? 인간은 수사자처럼 의붓자식을 죽이도록 설계되었을까? 인간은 수컷 일반 침팬지처럼 다른 부족 사람들을 죽이도록 설계되었을까? 유아 살해나 타부족민 살해와 같이 특수한 맥락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살인 메커니즘이 진화했을까?

 

살인의 적응 가설은 강간의 적응 가설만큼이나 입증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의붓자식을 죽이는 경우가 친자식을 죽이는 경우보다 훨씬 많지만 그것을 의붓자식 살해 메커니즘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단지 의붓자식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대체로 외집단 사람들을 훨씬 더 거리낌없이 죽이지만 그것을 타부족민 살해 메커니즘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타부족민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살인의 적응 가설은 강간의 적응 가설만큼이나 반증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우리는 아직 인간의 선천적 메커니즘들 중 극히 일부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인 조절 메커니즘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인 일반 침팬지의 경우에는 동종살해 메커니즘이 있어 보인다.

 

 

 

남자의 강간 조절 메커니즘에 대한 적응 가설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여자의 강간 방어 메커니즘에 대한 적응 가설을 지지할 수는 있다. 내가 보기에는 강간 방어 메커니즘에 대한 증거가 강간 조절 메커니즘에 대한 증거보다 더 강력하다.

 

어쩌면 살인 조절 메커니즘이 따로 진화하지는 않았지만 살인 방어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을 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선천적 살해 메커니즘이 진화했을까? 여기서 살해는 동물을 죽이는 것을 뜻하고 살인과 동종살해는 같은 종의 동물을 죽이는 것을 뜻한다. 사자가 사냥을 할 때 사냥감이 죽을 때까지 목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확실히 죽이지 않고 먹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인간의 경우에도 살해 메커니즘이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냥을 할 때나 맹수나 뱀에게 습격을 받았을 때 죽었는지 여부를 확실히 해 두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런 가설에 대해 연구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살해의 적응 가설은 유력한 가설이다. 아마 죽음 개념도 선천적일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살해 메커니즘만 있고 살인 메커니즘은 없다면 일반적인 살해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살인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