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냐들, 이제 혼마 이야기를 해볼께. 생년월일 생략. 고향 생략. 언냐들에게 이런건 중요하지 않잖아? 아무튼 혼마는 태어날 때부터 비범한 기운을 보여주더니 아니나다를까 쌀 선물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남다른 이재를 발휘하여...쪽박찼어.

그리하여 절치부심, 와신상담하여 화려하게 재기하려다 더 빠르고 더 크게 쪽박찼지. 결국 몸도 마음도 지친 혼마는, 아니 어쩌면 빚쟁이들을 피해 아는 절에 몸을 의탁했어.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혼마는 뜻하지 않게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되. 몹시도 바람이 불던 어느날 밤이었어. 절간 마루에 앉아 가족 걱정, 빚 걱정에 한강 다이빙 클럽이나 가입할까 고민하던 혼마 앞에 스님이 나타나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지.

"뭐가 보이느냐?"

보이긴 한밤중에 뭐가 보이겠어? 그래도 애써 주위를 살펴보니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이 보이더군.

"깃발이 보입니다."
"깃발이 어떻더냐?"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 때 스님이 결정적 멘트를 날렸지.

"니 마음이 흔들리는게 아니고?"

나같으면 저런 황당무계, 생뚱맞은 질문에 "스님, 일체 유심조 됐거든요?"하며 초를 칠 것이고 이더카 형아 같으면 "객관적으로 휘날리는 깃발을 부정하는 관념론자"라 반박했겠지만...그래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혼마는 뭐가 달라도 달랐지.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르르 흐르는 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이렇게 소리쳤지.

"이제 나 하산하거덩~"

그리하여 다시 야바위 시장으로 복귀한 혼마. 그는 매일 방에 쳐박혀 뭔가 끄적이기 시작했어. 혹시 야설? 난 당연히 그랬으리라 확신하지만 안타깝게도 증거는 남아있지 않아 ㅋㅋ 오늘날 전해진건 그가 기록한 선물의 시세야. 그는 매일 시작과 종가, 최고가와 최저가를 기록하며 가격의 추이를 관찰하고 연구했지. 처음엔 숫자로 기록했지만 추세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매일 매일의 시세를 바로 표시하기 시작했지.

오늘날 언냐들이 주식하면 떠오르는 바차트가 바로 혼마의 고안물이야.

자...'깃발이 아니라 내 마음이 흔들린 것'이란 저 결정적 멘트에서 그가 깨달은 건 무엇이었을까? 난 시장과 거래, 가격에 담겨있는 심리였다고 생각해. 이 부분은 오늘날 행동경제학이란 이름으로 많이 연구되고 있는데 말이지.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줄께.

어느날 언냐가 우연히 명품샵에 들렀다가 딱 마음에 드는 지갑을 발견했어. 가격도 매우 합리적이었지. 언냐는 자신이 쓸 요량으로 그 지갑을 샀어.

그런데 다음날, 언냐가 또 우연히 그 명품샵에 들렀다가 아래와 같은 상황을 직면했어.

1) 반값 세일 목록에 오른 똑같은 지갑
2) 똑같은 지갑을 찾은 손님에게 '안타깝게도 조기 품절되었고 본사의 브랜드 관리 원칙상 더 이상 발매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직원.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1)을 맞은 언냐는 '닝기미'하며 머리에 열이 뻗칠 거야. 반면 2)를 목격한 언냐는 갑자기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안목 높은 똑똑한 소비자라는 자부심에 가슴이 뛰겠지.

그런데 말이지. 1)을 맞든 2)를 맞든 언니에게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 여전히 그 지갑은 언냐 호주머니에 있고 언냐는 그 지갑을 쓰게 될거야. 그런데도 지갑의 가격 추이에 따라 언냐의 심리가 흔들리지.

결정적 멘트 이전의 혼마가 가격 추이에 따라 미쳐 돌아가는 탐욕의 노예였다면 이후의 혼마는 가격 자체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몫을 찾는 근대적 투자자로 탈바꿈한 거지. 내가 이전 시리즈에 쓴 것처럼 과실의 달콤함보다 과정에 충실하고 만족을 느끼는 자가 된거야. 그의 성공은 막대한 부가 아니라 투자의 한 전범을 스스로 찾아낸데 있지.

그래서 말이지. 혼마의 투자법을 보면 요즘 시장에도 정확히 적용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돼. 내가 좋아하는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계란 모형을 진작에 제시했고 다우(다우 지수의 그 다우)처럼 주기를 파악했고 적삼병이니 흑삼병이니를 통해 차트에 담겨있는 심리를 예리하게 지적했고...기타 등등.

사실 내가 흥미로운건 여기서부터야. 역사학자가 아니라 확신할 수 없지만 난 허생전을 쓴 박지원과 혼마의 차이가 바로 조선과 일본의 내재적 발전과 개항에 대한 태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해. 19세기에 등장한 박지원의 허생전은, 시장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지. 거기에 '책 많이 읽은 선비가 장사도 잘한다'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어. 반면 혼마는? 우선 그는 17세기 사람이었어. 박지원보다 무려 2세기나 빠르지. 거기에 허생전이 매점매석이라는 초기적, 원시적 형태에 머물러있다면 혼마는 시장의 관찰과 연구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근대적 모델을 보여주지. 그 뿐만이 아니야. 현물을 거래한 허생과 달리 혼마는 현물을 포함하여 선물도 거래했어. 선물이 훨씬 야바위스럽긴 하지만 미래의 가치를 지금 거래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필수요소인 신용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고 바로 그 점에서 더 복잡하고 진화된 시장이지.

난 조선에도 쌀 선물 시장이 있었으리라 짐작하지만 과연 17세기 일본만큼 크고 정교하게 발전했을지는 모르겠어. 그러므로 어쩌면 이 둘의 차이가 바로 내재적 발전 정도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아무튼...큰 부를 이룬 혼마는 이후 많은 자선과 기부, 그리고 농업 증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아서 농민들로터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해. 심지어 농민반란이 일어났을 때조차 주변 농민들이 '혼마만은 지키자'며 보호했다지? 일본 최대 규모의 방풍림 조성 사업을 하기도 했고.

자...시장 잡설 시리즈를 슬슬 마쳐야 될 때가 온 것 같아. 원래는 시장의 양아치들도 쓰고 싶었고 그 반대로 시장의 거인들도 다룰까 했지만 시간도, 능력도, 호응까지...ㅠ ㅠ

그런 점에서 이 잡설을 시작할때 제기했던 주제를 다시 언급하려고 해. 시장에 반감을 가진 좌파 엉아들에게 보내는 충고랄까?

누누이 강조했지만 시장이 온갖 탐욕으로 얼룩진 야바위판이라는 건 맞아. 가령 이 앞글에서 선물 계약을 놓고 벌어진 해프닝을 봐도 이 점은 명확해.

농사짓는 바람 엉아는 잘되든 못되든, 그리고 한여름 뼈빠지게 지어봐야 100만냥 받고 끝이지. 반면 10만냥 선물 계약서 하나로 지나가다 007은 무려 310만냥에 보너스까지 챙겼어. 이건 누구라도 부당하게 보여. 그치? 중간 도매상의 횡포니, 선물업자들의 부당 이익이니 얼마든지 성토할 거리가 넘쳐나지.

그렇지만 이런 측면을 보면 어떨까? 지나가다007은 310만냥 번 반면 지나가다매수단은 정확히 310만냥을 잃었지. (선물 및 옵션이 제로섬게임인 건 지금도 똑같아) 그렇다면 지나가다 007 또한 다음해 운이 나쁘다면 310만냥 플러스 알파까지 토해놓을 수도 있겠지. (역시 대부분의 개미들이 원금 및 수익금 거기에 알파까지 토해놓는 것도 지금과 똑같아) 반면 농사짓는 바람 엉아는 매년 100만냥은 기본으로 확보했지.

선물 시장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어떤 것이 농사꾼 바람 엉아에게 유리할까? 난 오브코스,압소를리 있는게 유리하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선물 시장이 열리면서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게된 바람 엉아는 이제 자신의 경제 활동에 계획이란 개념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야.

농사꾼 엉아는 그렇다치고 선물 시장 자체는 어떨까? 난 선물 거래할 생각도 없는 허접이므로 자신할 수 없지만 선물도 시장에 기여한다고 생각해. 탐욕에 찌든 참가자들이 안그래도 거품이 낀 가격을 더 올리고 내린 가격은 더 내리는 소동이 하루에도 수천번씩 벌어지지만 '곰도 황소도 돈을 벌지만 돼지는 도살당한다'는 월가의 격언처럼, 그리고 혼마가 보여준 것처럼 탐욕의 대가는 쪽박으로 돌아오기 일쑤고 반면 과정에 충실한 트레이더는 보상을 받지. 코스톨라니가 이야기한대로 시장은 거품이 끼었을 때 팔고 지나치게 떨어졌을 때 사들이는 소신 투자자가 그저 탐욕만 가득한 채 부나비처럼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한 부화뇌동파의 돈을 챙겨가는 과정이기도 해. 그리고 이 과정을 크게 보면 시장과 가격,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안정화시켜.

난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져.  시장은 '내일 자본주의가 망할 지라도 난 오늘 황금 사과를 따먹겠다'는 탐욕으로 가득하건만 그 탐욕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는게. 언냐들은 그렇지 않아? 

조금 엉뚱한 이야기지만 칼 아이칸이라고 있어. 전에 SK를 적대적으로 인수합병시키겠다고 나와서 유명해졌지. 그때 칼 아이칸을 욕한 사람들이 많았을 거야. 분명 칼 아이칸은 SK를 경영할 생각도 없으면서 인수하겠다고 나선 거짓말쟁이이자 시세 차익만을 노리는 탐욕덩어리일거야. 그치?

그런데 조금 방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가령 아래에 다음과 같은 기업 두개가 있어.

1) 경영자가 존내 열심히 일하는 회사. R&D 투자 빵빵. 회계 존내 투명.
2) 경영자가 존내 딴짓하는 회사. 비자금 빵빵. R&D보다 부동산 사들이기 바쁨. 고로 회계 존내 불투명.

자...칼 아이칸이 어떤 회사를 노릴까? 내 생각엔 무조건 2)야. 왜냐면 말야...

1)과 같은 회사의 주가엔 경영자 몫이 들어가있어. 즉, 미래 가치가 있기에 존내 올라와있을 때가 많아. 거기에 회계까지 투명하니 이른바 거대 세력인 기관이나 외인들의 투자도 들어와있지. 반면 2)는? 그 회사가 독점적 아이템을 갖고 있어 수익율은 좋다고 쳐. 그렇지만 경영자 하는 짓이 불안하니 내재가치보다도 낮게 형성돼있을 가능성이 많아.

이런 상황에서 칼 아이칸이 1)을 노리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경영자에 대한 미래가치가 사라지므로 주가가 폭락하지. 쉽게 말해 칼 아이칸이 시세 차익을 누리기가 쉽지 않아. 더구나 이미 들어와있는 외인이나 기관이 가만 놔두지도 않겠지.

반면 2)는? 칼 아이칸이 인수해서 비자금과 부동산만 제대로 처분하겠다고 하면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아. 그러므로 칼 아이칸 입장에선 당연히 2)를 선호해.

이 것도 참 아이러니하지 않아? 탐욕이 시장을 건전하게 만든다는 것.

진보 엉아들은 시장의 탐욕과 부조리에 매서운 눈길을 보내지. 누누히 말한 것처럼 나 또한 그런 점을 부정하지 않아. 그렇지만 시장은 묘하게도 그 탐욕이 시장 자체를 발전시키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 그러므로 난 자본주의 이상의 대안을 모색하는 진보 엉아라면 우선 무엇보다 시장 자체를 이해하라고 권하고 싶어. 시장을 이해해야 시장을 뛰어 넘는 대안이 나오지 않겠어? 아니 대안은 그만두고 어떤 보완을 제시하더라도 그렇지 않겠어?

그 동안 별 내용없는 잡설을 읽고 환영해준 엉아들, 다시 한번 고마와. 그러면 다음엔 더 짜릿한 떡밥을 들고 나오겠다고 약속하며...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