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4486

"개념부터 명확히 하자. 보수는 일반적으로 기존질서·도덕성·자유시장 등을 강조한다. 그 학생처럼 부패·비리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보수라고 볼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들의 부정의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이 없는 것. 이걸 단순히 정치적으로 보수화됐다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생각이 없거나 무관심하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도 예전에 학교에 있던 사람들은 부당함 대해 문제시할 줄 알았다. 이젠 완전히 실종됐다. 사회가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출세하고 돈 버는 게 최고선이고 나머지 가치들은 무시되는 거다. 젊은이들마저 그러면 정말 미래가 없다. 진보 보수의 문제를 넘어선 것 같다." 



자본주의 무한 경쟁 체제의 승자 독과식 논리에 순응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과연 젋은 세대의 '보수화'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 여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 요즘 식자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20대 보수화론의 평균적인 수준보다 더 나아간 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의 필자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은,  평준화 정책이 가져다 주는 폐해보다는 무능하고 부패한 개인적인 도덕성의 폐해가 더 적다는 판단 하에, 공정택 후보 지지 선언을 한 어느 서울대생입니다. 시점은 작년 교육감 선거때로 되돌아가구요. 제가 보기엔 이 서울대생은 '공인의 부패에 대한 사적인 분노의 댓가'와 '자신에게 불리한 교육 정책의 집행이 가져다 주는 정책적인 댓가'를 냉정하게 비교형량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의 필자가 비판하고 있는 '생각이 없거나 무관심한' 부류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자신의 사적인 이익과 정의의 이익을 비교 가능,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현 사회 경제 시스템에 매우 합리적인 적응을 수행하고 있는 인간형에 가깝습니다.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가 심화, 확장, 그리고 일상화되면서 정의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점점 멀어져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젊은 세대의 가장 큰 정신적인 특징은 열정에 낯설다는 것입니다. 열정이 가장 개인화된 형태인 이성간의 사랑에서도 요즘의 젊은 세대는 철저하게 give and take 식의 주고 받는 사랑, 즉 계산하는 사랑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사정은 열정이 가장 집단화된 상태인 정의에 대한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정이란 내면화된 감정을 통해 발화한 보이지 않는 불과 같아서, 그 본성상 내면화되지 못하는 자신의 사적인 이익이나 외부적인 욕망을 연료로 하고서는 결코 타오르지 못합니다. 자신만의 내적인 음지를 가지지 못한 채 따가운 경쟁 속에서 성장해 오고, 또 앞으로 평생을 그러한 양지 속의 경쟁 속에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짋어진 세대들이 만들어 내는 미래는, 성찰 없는 자본주의일 것입니다. 그들 세대가 개인이 아닌, 자신이 속한 세대 전체가 만들어 낸 사회의 음지가 얼마나 크고, 그들 자신의 운명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깊숙하게 그런 사회적인 음지에 연루되어 있는지를-다시 말해 스스로가 어떻게 자신의 미래의 발등을 찍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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