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William D. HamiltonThe genetical evolution of social behaviour(1964)」를 발표한 이후 친족 선택(kin selection) 이론 또는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 포괄 적응도) 이론이 진화 생물학계와 진화 심리학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런 인기는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인기만큼이나 엄청난 오해를 낳기도 했다. 진화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으면서 비판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만 오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친족 선택 이론은 그 이론에 적대적인 사람들뿐 아니라 호의적인 사람들에게도 온갖 오해를 받은 것 같다.

 

그 이유는 Hamilton의 논문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 같다. 그 논문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모델만큼 난해하지는 않지만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약간 어려운 수학이 나온다. 진화 심리학계에는 그 정도 수학도 안 하려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다.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중에는 Richard Dawkins『이기적 유전자』와 같이 친족 선택을 상당히 쉽게 설명한 글조차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보인다.

 

친족 선택에 대한 오해가 넘쳐나자 여러 진화 생물학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Twelve Misunderstandings of Kin Selection(1979), Richard Dawkins

Comment on genetic similarity theory(1985), Linda Mealey

Kin selection, genic selection, and information-dependent strategies(1989), John Tooby & Leda Cosmides,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Kin_selection.pdf

Kinship: The conceptual hole in psychological studies of social cognition and close relationships(1997), Martin Daly, Catherine Salmon, and Margo Wilson.

Persistent Misunderstandings of Inclusive Fitness and Kin Selection: Their Ubiquitous Appearance in Social Psychology Textbooks(2007), Justin H. Park, http://www.epjournal.net/filestore/EP05860873.pdf

 

나도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위에 언급한 글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쓰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내 글의 장점은 단 두 가지다. 첫째, 한국어로 썼다. 둘째, 다른 글에 비해 상당히 쉽다.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위에 언급한 Hamilton의 논문을 비롯한 여러 편의 글과 위에 언급하지 않은 글을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내용을 계속 수정 보완할 생각이다.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50% 공유한다?

 

친족 선택에 대해 설명하는 글 중에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50% 공유한다는 식의 구절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아마 유전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진화 심리학에 지극히 적대적인 사람들은 이 구절만 보고 친족 선택 이론이 엉터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 98% 이상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은 과장된 수치이며 사실은 95%만 같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비교 기준과 같은 골치 아픈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어쨌든 침팬지와 인간이 유전자의 90% 이상 공유한다는 것에 시비를 거는 학자는 없어 보인다.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7/i1/DNA.asp

 

침팬지와 인간처럼 수백 만 년 전에 갈라진 서로 다른 종도 서로 90%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는데 인간 부모와 인간 자식이 서로 유전자의 달랑 50%만 공유한다니 이것은 유전학에 대해 무지막지하게 무식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은 바보가 아닌가?

 

나는 전체적으로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똑똑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바보스러운 것도 아니다. 위에서 50%를 공유한다에서 by descent라는 구절이 생략되었다. by descent가 당연히 포함될 것을 기대하는 진화 심리학자들끼리 사적인 자리에 대화를 할 때에는 그냥 50%를 공유한다고 이야기 해도 common by descent를 의미한다는 것을 서로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쓴 글에서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표현은 공연히 오해만 낳는다. 특히 친족 선택 이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번역하기도 까다로운 common by descent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친족 관계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만큼은 공유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유전자 중 몇 %를 공유하는지를 따지는 것은 혼란만 초래한다. 정확히 표현하려면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몇 %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석에서 진화 심리학자들끼리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50% 공유한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리고 조심성 없는 진화 심리학자가 글에서 그런 식으로 표현할 때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어떤 유전자 A가 부모에게 있을 때 똑 같은 유전자가 자식에게도 있을 확률이 부모-자식이라는 친족 관계 때문에 적어도 50%는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적어도라는 단어를 추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어떤 유전자좌(locus)에 오직 하나의 대립유전자(allele)만 있다면 부모-자식 관계든 아니든 그 유전자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이 똑 같다.

 

어떤 유전자좌에 AB만 있고 AB의 빈도가 50% 50%라고 하자. 그러면 임의로 두 명을 뽑아도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50%.

 

지극히 드문 대립유전자를 상상해보면 common by descent 개념을 이해하기 쉽다. 어떤 유전자좌에 두 개의 대립 유전자가 있다고 하자. A의 빈도는 0.01%이고 B의 빈도는 99.99%라고 하자. 이 때에 A를 가진 어떤 사람과 임의로 뽑은 다른 어떤 사람이 그 유전자좌의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은 0.01%밖에 안 된다. 반면 부모-자식 사이인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선발해도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50%가 된다(엄밀히 말하자면 0.01%라는 숫자까지 고려해서 계산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정도 오차는 무시하기로 하자).

 

이것이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의 대략적인 의미다. 엄밀한 수학적 정의를 알고 싶은 사람은 다른 어려운 글을 보면 될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끼리 비공식적으로 유전자의 50%를 공유한다고 이야기할 때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근친도가 50%라는 말이다. 근친도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런 식의 표현이 오해를 낳을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다.

 

 

 

 

 

엄마가 바람을 피웠다면?

 

여기서 부모-자식 관계는 유전적 관계를 말한다. 사회적 아버지와 유전적 아버지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엄마가 우체부 아저씨와 바람을 피워서 임신했다면 유전적 아버지는 우체부 아저씨가 되는 것이다.

 

입양과 같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면 엄마와 자식 사이의 근친도는 50%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아빠가 바람을 피웠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아빠가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엄마가 낳은 자식은 엄마의 유전적 자식이다. 반면 엄마가 바람을 피운다면 아빠의 사회적 자식 즉 아빠의 아내의 자식은 유전적으로는 남의 자식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바람을 피우는 문화권에는 아빠-자식 사이의 근친도가 50%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

 

그렇다면 엄마-자식 사이의 근친도가 50%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감수분열은 보통 상당히 공평하게 이루어진다. DNA는 한 쌍으로 되어있는데 정자나 난자를 만들 때 양쪽에 있는 유전자가 어떤 정자 또는 난자에 들어갈 확률은 50%인 것이다. 근친도 개념은 감수분열의 이런 공평성에 의존한다.

 

문제는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유전체내 갈등 때문에 어떤 싸가지 없는 유전자가 정자나 난자에 50% 이상의 확률도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meiotic drive라고 한다. 나는 이 용어를 어떤 식으로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감수 분열 구동, 감수분열 추동, 감수분열 분리비틀림, 감수분열 분리비 왜곡 등으로 번역한다.

 

유전체내 갈등 때문에 포괄 적합도 이론은 근사치일 수밖에 없다.

 

 

 

 

 

일란성 쌍둥이는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이타적이지 않은가?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각 세포들은 서로에게 거의 절대적인 이타성을 보인다. 심장에 있는 세포와 뇌에 있는 세포는 서로 지극히 조화롭게 협동한다. 이것은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의 유전자가 사실상 서로 완전히 같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한 이타성은 아니다. 가끔 암 세포처럼 몸을 망치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세포도 있다. 그 이유는 각 세포의 유전자가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포 분열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같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는 돌연변이라는 요인을 무시한다면 서로 유전자가 똑 같다. 그런데도 일란성 쌍둥이끼리도 싸우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를 보고 친족 선택 이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친족 선택 이론은 선택압(selection pressure)에 대한 이론이지 자연 선택의 결과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어떤 선택압이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그에 완전히 부합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이유만 살펴보자.

 

첫째, 선택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그런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는 돌연변이가 생겨야 한다. 만약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선택압은 소용이 없다.

 

둘째, 기존의 생리적 구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는 진화가 일어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셋째, 선택압이 존재하더라도 만약 그 강도가 약하다면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인간의 경우 쌍둥이가 태어나는 빈도가 극히 작다. 그리고 쌍둥이 중 일부만 일란성 쌍둥이다. 따라서 일란성 쌍둥이와 관련된 선택압이 지극히 작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란성 쌍둥이에게 거의 절대적 이타성을 보이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진화하지 않은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만약 항상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이 항상 일란성 쌍둥이인 어떤 종이 있다면 쌍둥이끼리 서로 지극히 이타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압이 아주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에서도 일란성 쌍둥이끼리 많이 다툰다면 뭔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해도 된다.

 

 

 

 

 

유전적으로 남남인데도 부모-자식이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가?

 

사회적 아버지가 반드시 유전적 아버지라는 법은 없다. 요즘에는 유전학이 발달해서 유전자만 보고 친자인지 여부를 확실히 가릴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남자들은 그런 검사를 해서 자신의 사회적 자식이 유전적 자식이 아님을 알아낸다. 하지만 그런다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는다.

 

양부모의 자식 사랑도 대단하다. 친부모의 자식 사랑과 양부모의 자식 사랑을 직접 비교한 연구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학대에 대한 연구를 보면 양부모가 의붓부모보다 훨씬 덜 학대하며 심지어 친부모보다도 덜 학대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양부모 선발 과정에서 상당히 엄격한 심사를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 남의 자식을 사서 노예처럼 부려먹는 인도 같은 나라에서 연구해 보면 결과가 매우 다를 것 같다. 어쨌든 그런 것들을 고려해 보더라도 유전적으로 남남인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어서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현상은 친족 선택 이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위에서 친족 선택 이론은 진화의 결과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선택압에 대한 이론이라고 했다. 위에서 선택압에 완전히 부합하는 방향으로 반드시 진화가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에서는 좀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어떤 생물이 자신의 친족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인간 남자의 경우 자신의 아내가 낳은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바람을 피우는 것을 숨기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따라서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불확실한 점이 있다. 성교가 항상 임신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전학을 이용한 친자확인 검사가 생기기 전에 진화했다. 따라서 남자는 불확실한 정보에 의존해서 유전적 친자일 확률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남자가 유전적으로 남남인 자신의 사회적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정보의 불확실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좀 더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뻐꾸기의 자식을 키우는 다른 종의 새는 자신의 둥지에 있는 아기 새가 자신의 자식인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 것이다.

 

친족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어떤 불완전한 메커니즘이다. 새의 경우에는 내가 만든 둥지에 있는 아기 새를 지극정성으로 돌봐라라는 식의 메커니즘이 진화했을 것이다. 인간 남자의 경우에는 나의 아내의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돌봐라라는 식의 메커니즘이 진화했을 것이다. 인간이 진화하던 시절에는 친자확인 검사가 없었으므로 친자확인 결과 나의 유전적 자식이 아님이 확실이 드러났을 때에는 과감히 자식을 져버려라라는 식의 메커니즘이 진화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이 아님을 처음부터 확실히 알고 있는 양부모는 왜 자식을 그다지도 사랑하는 것일까? 만약 인간 여자가 자식을 낳을 때에 한 번의 각인을 통해서 자식 사랑의 정도를 완전히 결정하도록 진화했다면 그런 식의 자식 사랑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식으로 진화한 것 같지 않다. 여자는 자신의 자식과 상호작용하면서 점점 사랑을 키워가는 것 같다. 여자가 왜 그런 식으로 진화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그런 식으로 여자의 자식 사랑 메커니즘이 진화한 이상 양부모의 경우에도 지극한 사랑은 가능하다. 특히 갓난 아기일 때 입양한 경우에는 사랑의 정도가 친부모와 거의 똑 같을지도 모른다.

 

 

 

 

 

201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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