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조: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4/01/007000000200401271145509.html

까발기고 꺼내 보여주면 인간의 몸은 소나 개나 돼지나 닭이나 원숭이의 몸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생겼다. 뻘건 핏줄과 물컹하고 번들거리는 내장들과 촘촘하거나 탄탄한 근육들과 허여멀건 뼈들. 신비로운 구석이라곤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그저 살아있는 물건, 정교하게 돌아갈 것처럼 보이는 기계이다. 물론 눈으로 뜯어보고 도우미의 설명을 듣거나 해설판을 읽는다고 단번에 그 정교함이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박제되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지도 않다. 죽음은 신비로워도 죽은 것은 하나도 신비롭지 않다. 오히려 추하고 불쾌하다. 그래서 우리는 시체를 땅 속에 감추거나 태우고 무덤에 꽃을 바친다. 의학연구를 위해 작정을 하고 시체를 해부하기 시작한 것도 아직 300년이 안되었다.

운동선수들의 민첩한 동작을 보면서, 어디 한군데만 아파도 생활에 엄청난 압박을 받으면서, 세월이 지나면 어김없이 주름이 지고 탁해지는 피부에서, 갓난아기 동생이 엄마 젖을 빠는 것을 보면서, 한창 젊을 때는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성욕에 진절머리가 나면서, 30대가 넘어 운동을 안하면 자동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아랫배에서, 1초도 쉬지 않고 계속 두근거리는 가슴에서 우리는 이미 인체의 신비를, 살아있는 몸의 신비를 느낀다. 나머지 신비는 생물 교과서와 다큐멘터리 동영상과 사진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채로는 확인될 수 없는 신비, 촘촘히 근육과 뼈를 가르고 쪼개고 섬세하고 정교한 약품처리를 해야 확인될 수 있는 ‘죽은 신비’는 의대생만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 의대생조차도 대개는 시체의 얼굴을 가린다.

냉정한 의학자의 시선도, 무서움과 불쾌감을 느끼는 평범한 제 3자의 시선도, 가슴을 저미는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친지나 친구의 시선도 아닌 맹목적인 호기심의 시선, 결국은 허구인, 감탄스러울 만치 생생하게 찍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그 시선이 시체를 향하면 그 시체는 더 이상 시체가 아니다. 시체가 더 이상 시체가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한 때 살아있었던 사람의 시체도 아니다. 그것은 물건, 아니 생생한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은 단순히 생생한 이미지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시선이 이미 그것을 생생한 이미지로 볼 준비를끝마쳤다. 이미 그 준비를 끝마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것’이 그토록 생생한 이미지로 완성될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이미 죽음을, 즉 삶의 신비를 리얼하게 느끼고 있지 않은 게 아니라면 시체가 생생하게 박제될 이유는 없다. 한때 나치가 살아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구석에서 했던 바로 그 짓이 이제는 자유롭고 민주적이라는 체제에서 과학과 계몽의 이름으로, 그러나 실은 돈벌이를 위해,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거리낌 없이 행해진다. 여기서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간의 차이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곧 죽을 것이고 죽은 사람들은 언젠가 살아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 지켜야할 예의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지켜야할 예의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죽은 사람들로부터 죽었다는 사실을 남김없이 박탈하는 조작을 가하고 그 결과물을 ‘우리 모두’를 잠재적 소비자로 하는 상품으로 생산하는 체제와 한 몸뚱아리가 되면서 우리는 자기의식으로부터 우리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삭제한다.

물론 광고와는 달리 이 ‘사업’에 시체 기증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발휘된 흔적은 없다. 우연찮게도 독일산인 업자는 이 사업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서구에서는 좀처럼 원자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에게 선뜻 손을 내민 이들은 한때 사회주의를 자처했거나 지금도 변함없이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러시아와 차이나의 권력자들이었고 그들의 손에 쥐어있는 것은 동의서를 지참하지 않은 사형수들과 홈리스들의 시체들이었다. 최선의 자본주의와 그 자본주의가 차마 자체 충당할 수 없는 원자재를 권력자들이 앞장서 제공하는, 이제 막 최악의 자본주의의 길로 접어든 과거의 사회주의의 이 기괴하고 절망적인 야합에서 나는 인간의 순수한 물질화, 더 이상의 파국을 앞에 남겨두지 않은 파국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