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하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김희갑이라는 배우가 있었다. 코미디언이라는 빠다 냄새나는 호칭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고 그냥 희극배우 정도로 부르는 게 더 제격으로 느껴지는 그런 배우다. 별명이 '합죽이'였다. 얼굴을 보면 그 별명이 왜 생겼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합죽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고인이 된 지 꽤 오래 됐다.

출연했던 작품이나 캐릭터, 배우로서의 전문성 등에서 사실 특출난 것은 없다(내가 평가할만한 부분은 아니지만). 하지만 내 기억으로 후배 배우나 가수 등 다른 분야의 대중 연예인이 가장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였던 원로 배우가 바로 김희갑 아니었나 싶다.

과거에도 연예계에서 까마득한 후배가 하늘같은 선배를 지칭할 때는 아마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들끼리의 대화에서의 이야기고, TV나 언론매체에 등장해서 동종 업계의 선배를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언급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90년대 초반까지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김희갑은 좀 특이한 경우였다. 아주 과거부터 즉 70년대부터 '선생님'으로 불렸던 것이다. 연예인들이 일반인들 앞에서 김희갑을 언급할 때에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던 것이다. 어린 소견으로도 그게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왜 김희갑은 '선생님'이라는, 연예인들에게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연예인들이 명쾌하게 밝힌 것을 본 적은 없다. 다만, 그 배경을 유추할 수는 있었다. 선배로서의 김희갑을 언급할 때 특히 김희갑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후배들이 자주 언급하는 사건이 있었다. 자유당 말기 그러니까 1950년대 말 국내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정치 깡패 임화수의 김희갑 폭행 사건이 그것이다.

자유당 말기까지도 연예인의 지위는 정말 '딴따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유랑극단이나 서커스 무대에 등장하는 연예인들과 소위 '스타'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일개 깡패인 임화수가 영화계의 황제가 되어 유명 스타들의 운명을 손가락 하나로 좌지우지했던 시기였다.

정확한 경위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폭행 사건의 전말은 간단했다. 임화수가 영화배우들 불러다가 군기를 잡을 때 김희갑이 딱 한 마디 '말대꾸'를 했다가 임화수에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나가고 병원에 입원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까지 크게 보도됐고, 임화수는 그 후유증으로 좀 고생을 했다. 딱,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 뒤 수십년 동안 두고두고 연예계 후배들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안겨주는 '영감의 원천'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희갑을 알고, 그 사건에 대해서 아는 연예계 후배들이 김희갑에 대해서 언급할 때마다,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 발언에서 드러나는 표현과 감정 등을 통해서 그렇게 짐작했다. 그 사건은 연예계 후배들에게 "연예인은 딴따라가 아닌, 자부심을 가진 예술가"라는 사실을 다름아닌 자신들의 선배 가운데 한 사람의 용기있는 행동에 의해 확인된 사건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김희갑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이 자기들끼리가 아닌 일반인들과의 대화에서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약간 어처구니 없는 캐릭터이긴 했지만, 나는 '김희갑 선생님'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대중연예인들이 과거에 갈증을 느꼈던, 사회적 인정욕구라는 점에서도 그런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은 연예계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좀더 흔해진 것 같다. 이순재 선생님도 그렇고, 김수현도 선생님으로 불린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대중 연예인들의 이른바 소셜포지션이 높아지면서 원로 연예인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미 얘기했지만, 특정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만한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은 그에 상응한 존경과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권장할만한 일이다. 사회적으로 그것을 좀더 지원하는 시스템도 갖출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중연예인들의 지위가 저렇게 높아진 것,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상응하는 사회적 존경이 대중 연예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부여된 그 경과 정도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일차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적 다양성이 제고되면서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대우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과거 같으면 별로 대단한 직업 취급을 못 받았던 운동선수의 위상이 높아져 '스포츠 스타'로 대접을 받는 것도 그렇고, 전에는 그냥 '주방장'이면 딱이었을 요리사 직업이 '쉐프' 어쩌구 하는 호칭으로 면모를 일신한 것도 이러한 현상의 일환이다. 그 가운데서도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급격하게 커진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쉽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대중 연예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유를 단순히 경제적인 것으로만 설명하기에는 2%까지는 아니어도 1.99% 정도 부족함을 느낀다.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적인 위상이나 인지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 직업군이 무작정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닌 말로 이건희가 아무리 돈이 많아져도 '선생님'으로 불리는 경우는 거의 못본 것 같다(고인이 된 이병철은 가끔 선생님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 호칭은 중앙일보 지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철수는 벤처기업가로서 대단한 존경을 받지만 '선생님'이란 호칭은 매우 생소하다.

내 느낌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꼭 그 대상의 능력이나 영향력보다는 자신의 능력이나 영향력을 자신을 위해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붙여지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교사 직업을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것도 그들의 능력이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보다는 제자 양육에 더 쓰인다는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 아닌가? 대중 연예인이 됐건 아니면 순수 예술가가 됐건 그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에도 사실은 이런 비밀이 숨어있다.

즉, 예술가는 자신의 존재와 삶 전체를 통해서 사회의 문제를 느끼고, 그것을 사회에 알리는 일종의 바로미터, 리트머스 시험지, 자명종, 새벽에 우는 닭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 인식되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몸과 생명을 재료로 하여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대중들은 그들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데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동의한다고 본다(25시의 작가 게오르규의 '토끼와 잠수함' 에피소드는 이 문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시사를 던져준다). 김희갑이 단 한번의 말대꾸와 구타, 입원으로 인해 '선생님'이란 호칭을 얻은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기능은 사실 순수 예술가들이 주로 하는 것이고, 대중 연예인들은 그런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간접적인 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특정한 상황, 특정한 시기에 대중들은 양자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9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가 그런 경우라고 본다. 민주화의 시기, 억압적 통제가 풀려가는 시기에 사회 전체에 걸쳐 과거보다 훨씬 표현의 자유, 표현의 수위 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현상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것이 바로 대중 예술계였고, 대중 연예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의 결정적인 계기는 김대중의 집권과 대중예술 정책의 결과물인 한류였다.

민주화 특히 김대중의 집권을 계기로 사회 전체적인 표현의 자유 확대가 대중 예술 분야의 백화제방 백가쟁명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한류 붐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것은 대중 연예인들에게 직접적인 수익의 증가와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 사회적 존경심의 제고 등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지금 대중 연예계의 원로들이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렇게 대중 연예인의 사회적 위상이 자연스럽게 상승한 데 따른 직접적인 결과이다. 후배들이 해외에 진출해 월드스타니 뭐니 뜨는 상황에서 그들의 대선배인 원로들의 위상이 덩달아 올라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대중연예계에는 아직도 전근대적 선후배 위계질서가 강한 편이다. 작년엔가, 갑자기 인기를 얻은 개그맨을 음식점에서 잠깐 스친 일이 있었다. 개그맨의 이미지야 그냥 부담없이, 편하게 웃고 볼 수 있는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음식점에 들어서는 그 개그맨의 자세는 마치 군왕처럼 당당했고 목과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주위에는 후배인지 매니저들인지가 마치 신하들처럼 설설기는 모습이었다. 뭐, 지들끼리 그렇게 사는 것이야 누가 뭐라겠는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연예계 후배들이 대선배를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에는 저 전근대적인 위계질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본다.

이순재나 김수현이나 '한류'를 만든 데 직접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 정치적 억압이 무너지고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한류의 씨앗이 뿌려졌고 후배들이 그 주역으로 나서서 성과를 거두었을 뿐이다. 하지만 연예계에서 선배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고, 그것을 전근대적인 위계 질서가 지탱해주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즉, 자기들이 하지도 않은 업적과 성과, 희생에 힘입어 그러한 호칭과 존경과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것을 간단하게 줄여서 '무임승차'라고 부른다.

국민의정부 또는 참여정부 당국자들은 남북 대화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에서 나훈아의 평양공연을 주선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훈아는 평양에서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당국에서 막으니 "난 그런 것 안해도 지장 없다. 나 배부르다"고 짖어댄다. 나훈아는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의 덕을 본 것이 전혀 없다고,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게 자신의 능력만으로 일군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착각이다. 표현의 자유 확대와 그 결과물로서의 한류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대중연예인의 지위 상승이 없었다면 나훈아의 신비주의 전략이고 지랄이고 먹혀들 여지가 없다. 꼴값 떨지 말라는 표현은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순재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도대체 이순재라는 배우인지 탈렌트인지가 무슨 작품 활동을 했는지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이순재에 대한 내 첫 인상은 과거 유명한 배우 최무룡(최민수의 아버지)을 무척 닮은 배우였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이순재와 최무룡을 구분하지 못해서 좀 고생을 했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배우라는 것을 알고는 "아니 최무룡과 저렇게 닮은 배우가 또 하나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라며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아, 또 하나 이순재에 대해 아는 게 있기는 있다. 이 분이 '야동 순재'라는 불후의 명연기를 펼치셨다는데, TV 특히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로서는 아쉽게도 아직 그 불멸의 연기를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아무튼 연예계 후배들은 이런 이순재를 마치 로렌스 올리비에나 리처드 버튼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접한다. 그러니 같잖다는 표현이 안 나올 재간이 없다.

이순재는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지난번 지방선거에서도 오세훈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했다고 한다. 하나만 묻자. 과연 이순재가 지지하는 한나라당이 과거 10년간 정권을 잡았다면 지금 이순재가 '선생님'으로 불리고, 저렇게 명배우라는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절대 불가능했다고 판단한다(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지금 이명박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5분 정도만 기억을 되살려보라). 표현의 자유도 없었을 것이고, 한류도 없었을 것이고, 이순재는 그냥 속절없이 늙어가는 일개 딴따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순재 같은 것들을 일컬어 육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선생님' 표현이 나왔으니 이 얘기 안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선생님'이라는 표현 하나 가지고 가장 시비가 많이 붙었던 인물을 꼽자면 단연 김대중을 들 수밖에 없다. 교사들도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연예인들도 선생님이라고 불리는데, 아니 김희갑도 '선생님'이었는데 왜 그리도 '김대중 선생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반발했을까? 얼마나 '김대중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아니꼬웠는지 '슨상님'이라는 비아냥과 저주와 경멸이 가득찬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솔직히 '선생님'이란 호칭의 자격 요건, 자신의 재능을 자기 자신의 영달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 썼다는 점에서는 김대중만한 인물도 드물지 않을까? 적어도 그만한 희생을 치렀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현재 연예인들이 이런 사회적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대중예술의 표현의 제약을 없애고 한류의 토대를 쌓은 정책을 편 사람이 바로 김대중이다. 누군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유명 연예인의 한 사람도 "한류는 사실 김대중 대통령의 공로"라는 의미로 발언한 것을 전해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한류를 만들어준 공로자인 김대중에게는 '선생님' 호칭을 그렇게 아끼면서 별로 자격도 없이 혜택만 누린 '늙은' 대중 연예인들이 '선생님' 호칭을 누린다는 것은 불공평한 것 아닌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에는 '지혜'와 '용기'에 대한 평가도 포함돼 있다. 이런 점에서도 우리나라 대중 연예인들은 대부분 선생님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지들이 누리는 영광이 누구의 공로인지 판단할 지혜도 없고, 자신들이 누구에게 혜택을 받았는지 과감하게 사회적 편견을 거부하면서 공개적으로 표명할 용기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연예계 원로란 것들이 같잖고 가증스럽다. 나에게는 차라리 '슨상님'이 훨씬 명예스럽고 자랑스러운 호칭이다.

나훈아 얘기를 좀더 하고 마칠까 한다. 아니 실은 나훈아 때문에 나온 얘기이고, 실제로는 연예계 얘기다. 김성환이라는 연예인이 떠오른다. 무명으로 전전하던 이 친구가 국민의정부 시절에 방송에서 사회자로 뜨니까 말들이 많았다. 아마 정권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는 그런 얘기들이었던 것 같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방송계나 연예계의 의사 결정에도 정권 차원의 영향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반증으로 이해한다. 실제로 김성환은 참여정부 들어 위상이 쪼그라들더니 지금은 케이블TV를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지금 방송계를 장악하는 영남 파워는 그냥 정정당당하고 자연스러운 경쟁의 결과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 해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실력이 뛰어나서, 그만큼 노력해서 그런 결과를 얻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실력, 노력할 수 있는 배경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어지는 환경과 지원이 실은 그 배경 역할을 한다고 본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대중 예술계에서는 호남 출신이 강세였다. 호남 출신들이 예술적 기질이 강하다는 속설도 거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현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요즘 연예계에서 호남 출신은 거의 '멸종' 수준이다. 대신 영남 출신들이 연예계 전반을 꽉 쥐고 있고 갈수록 그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현상을 보면서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배스라는 물고기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아마 나의 피해의식 탓일 것이다. 맞다. 하지만 전에도 얘기한 것처럼 나는 피해의식이 있다. 피해를 자꾸 입다 보니 피해의식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내 피해의식이 보기 싫으면 세상을 바꾸면 된다. 아니면 나는 죽을 때까지 짖어댈 수밖에 없다. 하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나같은 인간들을 깡그리 죽여서 조용하게 만드는 것이 더 빠르고, 더 경제적이고... 어쩌면 더 공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