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보면 나훈아의 얘기가 소개된다.

이건희가 지 집에서 치르는 잔치에 사람을 초대하면 안 가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대중 연예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 성악가(대학교수들이 많겠지?)들도 이건희의 부르심을 받으면 거절하는 경우가 없었다는데... 노래 몇 곡 부르고 3천만원 가량 받는 게 일반적인 가격이었던 모양이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서는 거기서 받는 돈도 돈이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로열패밀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점이 더 대단한 가치로 여겨진 것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여기서 단 하나의 예외는 나훈아였다고 한다. 이건희 일가가 불러도 가는 법이 없었고 그 대답이 더욱 감동적이다. "나는 대중연예인이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의 표를 사라."

이 일화를 알게 된 후 김용철 변호사의 애창곡은 나훈아의 '영영'이 되었다고 한다(그런데 저 노래가 나훈아 노래 맞나? 나훈아 노래를 몇 곡 알지만, 저런 노래는 기억이 없어서 제대로 썼는지 자신이 없다).

나훈아가 대중 연예인으로서 상당한 기개를 가졌다는 점은 이러한 사례에서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저런 연예인 하나도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저런 연예인이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나훈아의 K양'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김선아가 그 소문을 부인하면서 "나는 정말 나훈아 선배를 존경한다"며 몇번씩 강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훈아의 저런 '기개'를 보면서 내가 마음 가장 밑바닥에서 느끼는 심정을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꼴값 하네"라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쯤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MBC가 나훈아 공연을 중계방송한 적이 있었다(생방송이었는지, 녹화방송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얀 모시 두루마기 같은 옷을 입고 허연 수염을 기르고 열창을 하던 나훈아는 공연 도중에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냈다. 기억나는대로 그 발언을 반말투 그대로 옮겨본다.

"저번에 나더러 평양 공연을 하락카드라. 그런데 공연함서 이런저런 말은 하지 말락 카드라고. 내가 왜 하고싶은 말을 말아야 하는데? 그래서 안한닥캤다. 나는마, 그런 거 필요엄따. 그딴 거 안해도 된다."

관중들의 열광적인 박수와 함께 나훈아는 노래를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나훈아의 그 발언도, 그 발언에 열광하는 관중들의 반응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딱 봐도, 세종문화회관 같은 그 대형 공연장에 모인 인간들의 성향과 분위기가 짐작이 갔거니와, 도대체 나훈아란 놈이 저따위 발언을 할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나훈아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80년대 초반, 어떤 지방 공연장에서였다. 대형 가수들이 합동으로 공연하는 그곳에서 나훈아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나훈아는 지켜보던 내게 다가와 불이 있느냐고 물었다.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여주면서 본 나훈아는 검은 양복(연회복이었을 것 같다) 차림에 생각보다 작은 키였다. 170센티 정도?

그 공연에 함께 출연했던 조영남은 리허설에서 자신의 히트곡 '물레방아 인생'을 부르다가 당시 권력형 부패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장영자 사건을 빗대 '돌고 도는 장영자의 인생'이라는 애드립을 넣어서 지켜보던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다. 방송에 나가지 않는 리허설에서 그따위 풍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 정도로라도 '발언'을 하는 조영남에 비해 나훈아는 그저 왜소한, 자신의 발언이라고는 전혀 없는 '침묵의 가수'였을 뿐이다. 입을 열어 발언하는 것은 "담뱃불 좀 빌려달라"는 정도였던, 그저 조용한 사나이였다.

나는 엄혹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나훈아가 무슨 정치 사회적인 발언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때는 정치 사회적인 이슈가 없는 태평성대였기 때문일까?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1980년대에 비해 2000년대는 국가와 민족의 안위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서 나훈아같은 대중 연예인에게도 소신 발언을 요구하는 시대가 됐던 것일까? 판단은 각자에게 맡긴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나훈아가 침묵하며 열심히 공연하며 노래나 부르던 시기에 죽고 얻어맞고 쫓겨나고 배고팠던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하다못해 방송을 타지 않는 리허설에서라도 '돌고도는 장영자의 인생'이라는 '찍' 소리라도 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훈아가 2000년대 어느날 "나는마, 그런 것 안한다."며 당당하게 과거에 공포의 상징이었을 어느 기관에게 감히 찍자를 붙지는 못했으리라는 점이다.

요즘 나훈아는 거의 '전설'이 된 모양이다. 몸값이 상상을 초월하고, 그나마 불러낼 수도 없는 모양이다. 나훈아가 삼성 이건희의 호출을 무시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권위에 힘입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훈아 입장에서 그깢 몇천만원이 대수겠는가? 자신을 둘러싼 온갖 루머를 해명한답시고 기자들을 불러모아 한바탕 '야단만 친 후' 질문도 받지 않고 사라진 나훈아의 모습을 표현하는 기사에 '그는 한 마리 호랑이였다'고 쓴 것을 보고 머리가 띵~했던 기억이 난다. 호랑이? 호랑이? 호랑이라고? 그 침묵했던 호랑이?

나는 어렸을 때, 내가 처음 TV를 접했던 중학생 시절부터 극작가 김수현을 무척 싫어했다. 당시에도 김수현의 드라마는 선풍적인 인기였다. 온가족이 모두 모여서 넋놓고 TV 화면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에도 나는 김수현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그 대사와 표현, 그 상황 설정 등이 너무 싫었고 구역질이 났다. 그 알량한 상식, 그 알량한 반골기질, 그 알량한 번역투 표현들... 내가 보기에 김수현의 드라마는 멍청함과 콤플렉스의 합작품이었다. 식구들의 몰입을 끊임없이 방해하며 그 드라마와 김수현에 대해 온갖 저주를 퍼붓다가 가족들의 집단 성토를 당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은 우리 가족들이 옳았고, 나는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김수현은 방송계에서 살아있는 전설(walking legend)가 되었고, 감히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는 권위 그 자체인 모양이다. 방송계 후배들의 존경이야 새삼 말해 무삼하리오. 하지만, 김수현이 누리는 그 영광과 권위는 우리나라 대중 연예계 전반의 위상이 높아지고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게 된 변화에 거의 대부분을 힘입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양화되는 그 변화, 이른바 한류를 낳은 그 표현의 자유라는 시대의 변화,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없었다면 김수현은 그냥 인기 극작가의 한 사람, 원로 극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는 있었을지언정 현재와 같은 권위와 후광을 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건 그 분야에서 오랜 세월 성실하게 경력을 쌓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만한 전문성과 경륜, 경험을 쌓은 사람은 그만한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할 뿐만 아니라 매우 가치있는 일이고 그런 존경과 권위가 인정받고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권위에는 가급적 거품이 적어야 한다. 특히, 자신이 하지도 않은 업적이 자신의 것으로 치환되어 그 권위를 부풀리는 것은 엄격히 말해 사기에 가깝고, 그 분야 후배나 그 분야 자체의 발전 나아가 국가 사회의 공동체 전반에 해악을 끼치는 결과가 된다.

나훈아나 김수현이 현재 누리는 위엄과 권위, 전설을 보면서 나는 그 후광의 대부분이 바로 80년대와 90년대에 이름없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의 삶이 투영된 결과라는 느낌을 받는다. 한 마디로 말해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 예술을 하건 순수 예술을 하건, 예술가의 개인적 기량에 의한 영향력과 인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른바 사회적 영향력이란 것의 차원이 남아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나훈아와 김수현은 사회적 영향력이란 것을 행사하는 인물들은 아니다. 그럴만한 무슨 실천을 한 것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영향력에 버금가는, 원래는 그러한 실천에 의해서만 나올 수 있는 사적(private) 권위를 누리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 같은 사람조차 나훈아를 거의 '존경'까지 하는 분위기가 여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것도, 옳은 것도 아니다. 내가 이들에 대해 '같잖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작년엔가, 케이블TV 교통방송에 남진이 나왔다. 이곳저곳 지자체 찾아다니면서 하는 공연, 동네 아줌씨 아좌씨들 간이의자에 앉아 손뼉치는 공연의 휘날레를 장식하는 모습이었다. 장윤정과 함께 듀엣을 부르는 모습은 어쩐지 처연했다. 남진보다 장윤정이 어쩐지 손해보는듯한 느낌을 나부터가 받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70년대에 대중 가요계를 양분했던 나훈아와 남진 가운데 나훈아는 전설이 된 반면 남진은 그냥 '듣보잡' 신세가 된 것에 대해 방송계 차원의 차별이 있었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개인적 역량이나 관리 전략의 차이도 있었겠지. 하지만 일부에서는 저런 위상의 차이를 영/호남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남진의 모습이 더 안쓰러웠다. 그래도, 오랜만에 듣는 남진의 노래는 좋았다. 원래는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듣기에 괜찮았다. 무엇보다, 까마득한 후배와 함께 듀엣을 이루면서 열심히 열심히 노래부르는 모습이 좋았다. 장윤정을 이끄면서도 장윤정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노련함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남진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니가 진짜 가수다. 너에게는 권위가 없을지 몰라도 사기도 없다. 지금 네 모습은 너무 자연스럽다. 나는 너를 존경하지도 않지만 너를 같잖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니가 좋다. 이것이 진짜 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