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아시아적 개발독재에 대한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다음이지 않을까 싶네요. 무엇보다,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들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구요.

Dahrendorf, however,
fails to note the opposite temptation: The belief that, if the majority of a population resists structural changes in the economy, an enlightened elite should take power, even by non-democratic means, to lay the foundations for a truly stable democracy. Along these lines, Newsweek columnist Fareed Zakaria points out how democracy can only “catch on” in economically developed countries. He says that if developing countries are “prematurely democratized,” then economic catastrophe and political despotism will soon follow. It’s no wonder, then, that today’s most economically successful developing countries (Taiwan, South Korea, Chile) have embraced full democracy only after a period of authoritarian rule.

앞 문장과 연결시키서 설명하면, 경제적 성장을 위해선 민주주의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즉 "눈물의 계곡"을 지나야 한다는, 사회적 복지를 축소시켜야 한다는 어떤 "유혹"에 빠진 다렌도르프를 비판한 후에, 민주주의와 경제적 부와 관련해서, 앞에서 설명한 "유혹"과는 "반대되는 유혹"을 기술하는데 다렌도르프는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되는 유혹"이란 다렌도르프와 같은 보수 반동 자유주의자들의 근본을 이루는 이념입니다. 즉, "눈물의 계곡"이라는 미려한 비유가 담고 있는 것은 바로, "계몽된 엘리트"에 의한 "개발 독재"를 허용할 뿐만 아니라, 적극 권장하는 것이죠. "동일한 맥락에서" (Along these lines) 결국 자카리아와 같은 보수 꼴통의 위와 같은 주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then)," "오늘날 대만, 남한, 칠레와 같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개발도상 국가들이 독재적인 통치의 시기 이후에야 완전한 민주주의를 획득했다"고 말하는 자카리아와 같은 주장들은, 심지어 다렌도르프의 주장들이 내포하고 있을 "이러한 주장들은 전혀 놀라울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죠" (It is no wonder, then, that ...). 그리고 위 인용한 문단 이후에 이루어지는 두 세 문단들은 저와 같은 개발독재 옹호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보이는 것이죠 (Isn’t this line of reasoning the best argument for the Chinese way to capitalism ?)

그리고 이어서 지젝은, "근대화"라는 중국 정부의 논리가 어떻게 맑스주의와 연결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오주의가 경제, 사회 등등의 혁신에 대한 현 중국 정부의 요구와 연결되는지 설명하네요.

지젝이 노동자와 농민의 붕기에 대해서, 중국 정부의 반민주적, 억압적 통치기구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 To put it in old Maoist terms, the main enemy may appear to be the “bourgeois” threat. But, in the eyes of the ruling elite, the main enemies are instead the “principal contradiction” between unfettered capitalist development that the Communist Party rulers profit from and the threat of revolt by the workers and peasants. 이 문장에서 instead는 앞 문장 전체, 즉 "혁명에 대한 "브루주아의 위협"이라는 마오주의식의 모순 "대신에" 현재 중국의 주요 모순은 어떠하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 대한 이러저러한 진단은 사실 한 서구 지식인의 눈으로 본 "하나의" 진단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자본주의의 잔혹사로 시작했던 글이 그 자본주의가 약속했던 그 약속이 "우리, 즉 서구인들"에게 이뤄질까라는 질문으로 글을 끝내는 것이겠죠. 제겐, 그 장미빛 약속이 중국에서 이뤄지지 않을 것처럼, 우리, 즉 서구인들에게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젝이 말하는 듯싶네요. 만일 그 독재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말이죠...

저는 사실 지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하나의 진리로, 주체에 대한 과학으로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라캉에 대해 지젝이 저에게 줄 수 있는 통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젝을 읽는 것을 주저하죠. 지젝을 읽을 때가 있다면 그를 비판하기 위해서 읽거나, 참고할 꺼리가 있을 때에만 읽는 정도이긴 합니다. 그래도, 논쟁에 끼어들 요량으로 한 번 읽어봤는데, 재미 있게 읽었네요.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에 대해 글을 올리는 것이 저어되는데, 내일 까지 어떤 댓글도 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 저의 댓글이 없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