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은 도덕성 개념과 이타성 개념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고 있다.

 

This is a small example for a small individual, but we see this kindness writ large when people donate time, money, or even blood to help others, sometimes strangers. This behavior too is seen as moral; it inspires emotions like pride and gratitude, we describe it as good and ethical.

The scope of morality, then, is broad, encompassing both the harsh, judgmental elements and the softer, altruistic elements, including, as Adam Smith put it, “generosity, humanity, kindness, compassion, mutual friendship and esteem, all the social and benevolent affections.”

(Just Babies: The Origins of Good and Evil, Paul Bloom, 13)

 

Actually, one aspect of morality, kindness to kin, has long been a no-brainer from an evolutionary point of view.

(Just Babies: The Origins of Good and Evil, Paul Bloom, 16)

 

자선이나 헌혈 같이 남을 돕는 행동도 도덕성에 속하고, 친족에 대한 이타성도 도덕성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도덕성을 정의하면 “도덕성은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이다”라는 명제를 쉽게 입증할 수 있다. 친족 이타성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이며, 친족 이타성도 도덕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도덕성을 “규범, 도덕적 판단, 양심, 죄책감, 도덕적 분노, 처벌 등”으로 제한해서 정의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규범이 존재하며, 그 규범을 어겼는지 판단하는 것이 도덕적 판단이다. 양심은 대체로 규범을 지키도록 만든다. 만약 자신이 규범을 어겼을 때에는 죄책감을 느낀다. 죄책감은 고백, 보상, 처벌 감수 등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고백하거나, 보상하거나, 처벌을 당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남이 규범을 어겼을 때에는 도덕적 분노를 느낀다. 도덕적 분노는 처벌을 하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진다. 규범을 어긴 사람을 처벌하면 통쾌해진다.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면 친족 이타성 자체는 도덕성이 아니다.

 

이타성 개념과 도덕성 개념을 상당히 그럴 듯하게 구분해서 정의할 수 있는데도 둘을 혼동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

 

 

 

어쨌든 개념은 정의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누구의 정의가 옳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되도록 엄밀하게 정의해서 되도록 일관되게 쓰면 된다.

 

혼동의 여지가 있을 때에는 내가 선호하는 도덕성 개념을 “좁은 의미의 도덕성”이라고 부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