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지역주의가 아닌 영남패권주의

한나라당 지역주의도 나쁘고 민주당 지역주의도 나쁘다는 이세상 가장 단순해서 편한 양비론자들을 괴롭히는 글을 소개해 봅니다. 며칠전 디피에서 민주당을 호남의 한나라당이라는 것을 듣고............ 그 진의가 순수한 비판용인 것을 이해하더라도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싶었습니다. 10년 집권을 통해 대두된 호남의 소지역주의를 비판하는 것에는 일부 동의하더라도 민주당을 한나라당과 같은 지역주의정당으로 비판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영남인들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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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 교수의『김대중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 머리말 : 김대중과 위선의 역사

# 역사는 과거를 보는 지배적 시선이다. 이 지배적 시선은 우리의 현재의 삶을 결정하고 또한 우리의 미래를 방향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전선에서 끊임없이 '기억의 전쟁'을 벌인다.

# 우리 현대 정치사의 가장 큰 비극은 '영남패권주의'다. 그러나 이 영남패권주의라는 용어는 누구나 인정하는 공식 용어가 아니다. 이 영남패권주의를 대체하는 공식 용어는 '지역감정'이다.

# 직시해야 한다. 현실을 현실로서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간의 정치를 지역패권 관계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현대 정치사는 지역투쟁의 역사로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

# 나는 이런 현상, 즉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도그마로 가상의 세상을 만들려는 콤플렉스'가 궁극적으로 위선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1장 김대중의 탄생과 한국정치의 딜레마

# 사실 어느 사회에나 부조리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것이 고쳐야 될 부조리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가 기가 막힌 것은 사회적 부조리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부조리라는 사실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놀라운 현상[호남 지역의 유권자들이 20년 가까이 90%가 넘는 투표를 했다는 현상]에 당연히 사회과학적 의문을 가져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지역 단위의 절대공동체를 만들어냈을까? 절대공동체라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은 둘째치고 왜 그것이 계급 단위가 아닌 지역 단위의 절대공동체로 나타났을까? 이 수수께끼의 기원은 1980년 5월에 있다. 반복한다. 1987년 12월 '양김분열'이 아니라, 1980년 5월 '광주학살'이다. 이 책의 키워드이기도 한 '광주학살'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지역문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나는 현대적 의미의 영남패권주의를 영남인들이 폭압적인 정치권력을 통해, 호남인들을 차별 · 배제하는 전략으로 전국적 규모의 경제적 지배관계를 확대재생산하고 이러한 지역적 지배관계에 대해 사회 · 문화적인 차원에서 은밀하게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얻어내는 극우 헤게모니라고 이해한다.

# 우리나라의 정권투쟁이 '호남/영남(반호남)'의 구도로 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호남 출신 이외의 정치인이 호남소외를 대변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차별계급, 차별민족, 차별종교, 차별성, 그리고 차별지역에서 그들의 지지를 받으며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가가 주로 태어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것은 진보이념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정권에 대항하는 호남의 진보정치인, 그래서 위험했던 김대중은 영남패권주의 역사의 당연한 산물이었다.

# 나는 지역문제가 노무현의 사고방식대로 단순히 "정치인이 만들어낸 허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전두환 씨가 잘못"했지만 "서민들 살기는 편했다"며 학살자 전두환의 "아침밥"을 걱정하는 영남의 민초들이며, "김대중이 죽일라꼬 전두환 · 노태우 씨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입니꺼"라고 정치평론까지 하는 영남의 민초들이다. 지금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이런 식의 이른바 '영남정서'를 정면에서 극복하지 않으면 지역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 우리 사회를 수십 년 동안 영남패권주의 파쇼 정권이 지배하고 있었던 매우 열악한 지역모순의 사회였다고 솔직히 인정해보라. 역사는 진전했으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 이런 식의 호남비하는 "호남 사람들이 나를 위해 찍었나요. 이회창이 보기 싫어 이회창 안 찍으려고 나를 찍은 거지"라는 노무현의 발언으로 이어진다.

# 그들은 호남을 위해 눈물 흘리며 아주 천연덕스럽게 '호남을 위해 호남의 단결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뒤에서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노무현의 발언을 계속 옮겨보자.

"저는 이와 같은 것이 보기에 따라 호남을 기반으로 했던 민주당만 먼저 분열되고 한나라당은 당당하게 저렇게 서 있으면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겠지만 그러나 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역, 말하자면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자기 당의 결속을 유지해 왔던 그런 정치질서의 총체적 붕괴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

2003년을 뜨겁게 달궜던 민주당의 분당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분당을 통해 지역주의와 절연했음을 선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에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영남인들에게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한나라당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지역주의의 죄인이 되었다.

# 나는 지금 이 책을 기본적으로 지역적인 '패권/저항'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지역/지역'의 시각으로 우리의 삶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더군다나 모든 것이 지역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다만 역사적으로 우리의 현실이 계급투쟁보다는 지역투쟁이 더 압도적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당분간 시원하게 해결될 수 없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 왜 계급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성패권, 인종패권, 종교패권,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성취향패권, 기타 모든 소수자와 약자의 패권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진보로 간주하면서 계급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지역패권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퇴행적으로 보는 것일까? 왜 약자인 호남을 위해 눈물 흘리며 단결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대신 그 시간에 영남패권주의 체제의 구조개혁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일까? 왜 호남만이 똑같은 잘못에도 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영남패권이 이 정도 이데올로기도 생산해내지 못했다면 영남패권은 처음부터 패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2장 반김대중의 정치공학

# 호남에서는 앞으로도 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등 어떤 정당도 부침을 거듭할 수는 있겠지만 한나라당이 통상적인 보수 정당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당구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핵심이다. 호남의 이런 식의 응징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영남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잘못된 구실로 작용하고 있고 또한 그 해결을 어렵게 하는 정치적 딜레마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결국 영남인들이 자신들의 지역패권적 지배욕망을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와 '동일시'하며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일체의 민주적 가치를 무력화시키는 태도가 지역문제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양비론의 역사적 상징이 된 꼬마민주당 출신의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후 이렇게 말했다. "지역소외감, 지역갈등, 이런 것 다 정치인이 만들어낸 허구다. 지역 문제를 고려한 특별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 지역문제 해결책이다. 분명히 말하겠다. 대구 출신 대통령이 무소불위 권력으로 국가의 자원을 주무를 때 진짜 호남을 소외시켰나? 인정할 수 있나? 그 30년 동안 대구 경북이 살이 찐 부자가 됐으면 얼마나 부자가 됐나? 부산 경남 대통령 시절과 호남 정권 시절에 대구 경북이 소외됐다고 할 수 없다. ... 경쟁, 그 지역의 기획역량이 중요하다. 소외, 푸대접, 이것 백년 해봤자 새로운 희망은 없다. 제가 지금도 민주당인데, 호남에서 호남 푸대접론 계속 얘기하고 푸대접론 백번 얘기해도 노무현이는 돈 10원 더 줄 돈이 없다. 호남소외론이 무슨 소리를 해도 거기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없다. 영남 지역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 신민주연합당(구평화민주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김대중과 이기택을 공동대표로 하되 다만 김대중을 법적 대표로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동수의 집단지도체제, 그리고 당직은 6대4의 지분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각각 70명과 5명의 의원이 소속한 정당의 합당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간단하다. 그 양비론의 논리가 영남패권주의 헤게모니하에서 일종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김대중은 그들이 필요했고 그들은 또한 최대한 자신들의 정치적 지분을 행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과분한 지분으로 어떤 정치적 행보를 했을까?

# 양비론의 또 다른 기수 유시민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97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썼다. ... 유시민은 김대중이 반드시 출마 포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정치공학적으로 분석한 뒤 그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가 국민회의에 대해 '대리전'을 권유하는 것은 '누가 될지도 모르는 신한국당 후보'보다 김대중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꼭 김대중을 찍어야 할 필요성이나 의무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승부를 미리 알 수 없는 싸움'이 되는 것은 이번 대선이 각계각층 국민의 이해와 생각을 반영하는 '정책선거'가 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 " ...

"'전라도 혐오증' 또는 패권적 · 반사적 '지역주의'는 '반김대중 정서'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

"'대리전'에 필요한 인물은 '김대중보다 나은 인물'이 아니다. 그는 다만 한 손으로는 김대중의 고정표를 남김없이 받아 챙기면서, 다른 한 손으로 '김대중이 싫어서 딴 데 가서 노는 야권표'를 끌어오기만 하면 된다." ...

# 다음은 3당 합당이 있고 난 후인 1990년 11월의 정기국회 대표 연설 중 일부다. "박정희 씨의 최대의 죄악, 영원히 역사에 용서받지 못할 죄악,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죄악은 이 지방색의 조성입니다. 그런데 전두환 · 노태우 양 정권은 이것을 계승하고,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노태우 정권하에서는 이것이 더욱 강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 "

우리나라의 정권투쟁이 '호남/영남(반호남)'의 구도로 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호남 출신 이외의 정치인이 호남소외를 대변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차별계급, 차별민족, 차별종교, 차별성, 그리고 차별지역에서 그들의 지지를 받으며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가가 주로 태어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것은 진보이념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 나는 지금까지 은밀하게 해결된 패권적 지배관계의 역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위선의 역사는 무엇보다 폭로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이다.

# 유일한 해결책은 (역사의 진화가 그래왔듯이) 어떤 지역이라도 더 이상 '선한 마음 때문이 아니라 정치현실적으로' 패권을 추구할래야 할 수 없는 극한 상태에 도달하여 이것을 지양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뿐이다. 극한상태까지 도달하지 않고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갈 수밖에 없다. ... 그래서 나는 DJP 연합을 반대하며 비아냥 섞인 한탄조의 구호를 내뱉었던 손호철 자신의 발언을 비아냥은 빼고 진지한 목소리로 그대로 되돌려주려 한다. "썩자, 썩자. 그리고 계속 능욕당하자. 그때만이 새로운 정치는 꽃필 것이다."

# 박정희는 1961년 쿠데타로 집권했다. ... 지역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전략은 그의 정신상태가 불건전해서 생긴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쿠데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채택된 것이다. 이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 쿠데타 직후인 1963년의 박정희에 대한 투표성향은 영호남을 거의 구분할 수 없다. ... 그러나 4년 후인 1967년 투표성향은 대선 후보가 호남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영호남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71년에 가서는 더 큰 지역적 투표성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즉 1971년의 영호남 투표성향이 호남 출신 김대중 후보의 등장으로 갑자기 요동친 것이 아니라 그간 박정희가 자행한 영호남 차별정책 때문에 대선 투표와 대선 후보선출 과정에서 지역적 의지가 '점차' 강도 높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박정희의 유신 정권이 아무리 폭력적이고 영남패권주의적 본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1980년 5월 전두환의 야만적인 광주학살이 없었다면 지역문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으리라고 확신한다.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통해 정권을 찬탈하고 영남인들이 그 수괴를 지역적인 이유로 일체감을 느끼며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지역문제는 이제 지역차별이냐 아니냐 하는 박정희식 차원을 떠나 같은 민족으로 같은 의식을 공유하며 공존이 가능하느냐 하는 근원적 의문을 가지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즉 전두환에 대한 공통의 역사적 공감대가 없이는 지역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 유시민은 자신이 운동권 시절 경험했던 쑥쓰러웠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내가 '광주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이던 1978년, 야학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찻집 티켓을 판 죄로 생전 처음 학교 앞 '하얀 집(관악경찰서 서울대 분실)'에 잡혀갔을 때였는데, 대공과 형사의 첫 질문이 "너 광주일고 출신이지"였기 때문이다. 순전히 거짓말로 둘러대고서도 사흘만에 훈방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대구 출신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광주 사람들은 이른바 'TK의 자부심과 의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물론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동네 사람들보다 특별히 의리가 있다거나 제대로 된 정치적 자부심을 지녔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이 주관적으로 경상도가 '조국 근대화 사업'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을 가졌고 자기네가 특별히 의리 있는 집단인 것처럼 믿고 싶고 또 믿고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80년 5월에 계엄사 합수부에 잡혀갔을 때도, 나는 그 'TK의 의리'라는 것 덕분에 약간의 '혜택'을 보았다. "경상도 놈이 그런다"고 처음에는 덤으로 주먹질을 하기도 했지만, 부산 출신 국장은 내 진실의 허점을 설렁설렁 넘겨주었고 나중에는 사무실 청소를 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호의(?)'를 베풀어주기도 했다."

광주 출생에 광주일고 출신인 나는 물론 'TK의 자부심과 의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 'TK의 자부심과 의리'가 바로 영남패권주의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 정치권력 차원의 영남패권주의는 물론 중요하다. ...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에서 수십 년의 개발독재 기간 동안 형성된, 말하자면 '원시적 축적기간' 동안 형성된 영남자본(독점재벌)의 지배구조는 보다 본질적인 것이다. ... 그러므로 김대중에 의해 단 한 번의 정권교체로 이제는 영남패권주의 질서가 척결되었다고 주장(혹은 이제는 영남패권주의 질서가 무너졌으므로 그만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 민주노동당이 한 번 집권하면 자본주의 질서가 일거에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주장이다. ... 영남패권은 정치권력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1961년부터 1997년까지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 36년의 폭력적 지배기간과 거의 동일한 기간이다. 일제의 권력이 물러나고도 우리는 그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영남패권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더군다나 영남패권은 정치권력 차원에서도 완전히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절대로 안이하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 나의 소박한 희망은 그들 "악마적인 호남차별" 세력과의 평화공존이다. 그들이 그 공존의 질서 속에서 힘을 잃어 자신들의 악마적 본성을 억제할 수밖에 없게 되거나 아니면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거나 그것은 그들이 알아서 선택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마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방식을 지양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제3장 김대중 정권 5년의 공과

# 우려할 만한 사실은 통일문제에 대한 접근조차도 지역적 격차가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이 상황을 타파하지 못한다면 통일 이후에도 영남패권주의적 지역문제는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문제다.

# 김대중은 왜 자신의 개인적 경험보다는 광주 희생자의 정치적 대변자임을 강조하지 않는 것일까? 왜 광주의 집단적 경험을 개인적 경험으로 대체하고 단절시키려 하는 것일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대중은 운신의 폭을 넓히기를 원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자신과 광주를 개인적 경험을 앞세워 단절시킴으로써 광주가 원치 않는 정치적 타협을 모색할 수 있는 '대의제적 공간'을 확보하려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그는 영남패권주의 세력과 타협하기를 원했다. ... 그는 모든 정치적 적대세력과 끊임없이 타협을 추구해왔다. 그의 정치이력을 한 마디로 특징짓는다면 그는 알려진 바와는 정반대로 '타협의 정치인'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끈질기게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적대세력과 타협하기를 원했다. ... 그는 사실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강경파였으나 언제라도 적대세력과 타협할 의사가 있었다는 의미에서 온건파였다. 자신의 표현을 직접 빌려 말한다면 그는 정치인으로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적절히 조화"시킨다는 분명한 입장이 있었다.

# 결국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대로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저항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나는 불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경제주권을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독불장군처럼 저항하는 것이 가능한 대안이었을까?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보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건대 설령 그런 선택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판단하는 김대중은 어떤 경우에도 세상의 물결을 홀로 거슬러 배척하여 승리하려고 하기보다는 언제나 그 물결과 타협하면서 합리적 대안을 가지고 극복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방식대로 말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 최저생활의 보장이란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왜 김대중은 이 기준을 중산층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냐며 폄훼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역사의 숙제이지 김대중의 숙제가 아니다.

# 나는 개인의 도덕성의 강약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도덕성을 약화시키거나 혹은 강화시키는 구조의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패문제는 일차적으로 도덕성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속성에서 발생하는 구조의 문제라고 본다.

# 월터 리프만은 부패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비관적인 여운을 남길 수밖에 없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치적 조직체가 국민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것이 정치 생활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어떤 형태의 부패라는 것은 내재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전적으로 객관적인 견해이며 진실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뇌물을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특혜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 반쯤은 개인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정당 내부의 기구 작동에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원동력이라는 것이며, 그런 정당이 이번에는 행정부의 공식적인 기관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러한 특혜의 교환이 갑자기 기적적으로 사라져버린다면 사실, 하급 정치가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여 자기들의 개인적인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었을 때 정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지게 되며 그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유지시켜 온 바로 그 수단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하여 주는 것이, 오직 이상과 순수한 분노에 의해 행동을 개시한 개혁가들은 실제로 지속적인 정당을 결코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구체적인 정치 생활로 내려와 보면 자기들이 부르짖었던 고상한 동기들이 이미 실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는 것이다." (월터 리프만,『권력과 부패』 중에서)

#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보다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원리다.

# 역사의 현장에서 레닌은 성공했고 룩세부르크는 실패했다. ... 즉 역사는 부도덕이 반드시 도덕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부도덕을 통해서도 극복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역사에 항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우리는 그 부작용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며 또한 그 극복을 위해 시련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나는 적어도 독점적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한 부패문제는 김대중 정권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떤 정권도 완전히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 점진적 해결책과 관련해서도 부패문제를 일차적으로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규정하며 도덕성 고양을 그 우선적 해결책으로 강조하는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부패의 구조를 감추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위한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장된 산물이기도 하다.

# 그는 1997년의 선거를 이기기 위해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DJP 연합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된 구상이 아니었다. 김대중은 1995년 1월이 돼서야 비로소 압도적인 지역구도의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의 '지역등권론'은 1995년 5월 26일 국민대 행정대학원 강의와 5월 27일의 여수 강연에서 등장했지만 그 단초는 1월 22일의 『일요신문』에서 이미 발견된다.

"아주 다 이야기합시다. 오늘날 TK니 PK니 하는데 만약 자기들이 정권으로부터 차별받고 멸시받았다면 가만히 있었겠어요. 사실 당하고만 있는 사람도 못난 거요. 전라도고 경상도고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차별철폐에 나서야 돼요. 세계화를 한다면서 자기 민족끼리도 차별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내 권리 내가 찾는다, 또 남의 권리지만 내가 찾아줘야겠다 하기 전에는 지역차별은 해결 안 돼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흑인보다 못해요. 자기 권리를 찾는 데서는......"



제4장 김대중과 역사의 전선

# 역사는 과거를 보는 지배적 시선이다. 즉 이 시선은 살아 있는 현재의 시선이며 지배자의 시선이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재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증거를 내보이려 한다. 만약 우리가 이 기억의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미래도 과거처럼 '같은 논리'로 지배하려는 그들의 의도는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은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될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말한다면 기억의 전쟁의 현재와 미래의 먹고사는 문제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투쟁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싸우는 역사의 전선은 우리들의 의식 속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오웰은 이렇게 잔인하게 말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 영남패권주의 역사의 마지막 보루는 박정희다. 그가 무너지면 영남패권주의 역사는 무너진다. 과거가 사라지면 미래도 없을 것이다. 1997년『조선일보』의「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중앙일보』의 「실록 박정희 시대」, 『대구매일신문』의 「실록소설 청년 박정희」, 이인화의 『인간의 길』등등이 일으킨 '박정희 신드롬'은 단순히 김영삼의 실정이 야기한 복고주의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IMF 이전, 김대중이 정권을 현실적으로 위협하던 시점에서 기획된 영남패권주의자들의 조직적인 선전 · 선동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영남패권주의의 역사와 박정희의 역사적 재평가는 거의 일치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박정희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단순히 독재자였다거나 아니면 영남패권주의자였다는 사실[혹은 친일]을 강조하는 것으로 박정희가 간단히 무너질 것으로 본다면 오산이다. 그것은 뿌리깊은 자기주장을 갖고 있다. 그 자기주장이 바로 파시즘, 정확하게는 영남파시즘 ...

나는 어떤 정의 관념을 내세워 하루아침에 박정희 이데올로기를 멸절시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줌의 도덕보다 절실했던 배고픔을 해결해줬다'는 보이지 않는 역사적 동의를 철회시키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한 동의는 식민지 조선의 개발이 일본 제국주의의 은혜라고 믿으며 제국의 자본가에게 고마워하는 식민지 노동자처럼 박정희의 영남패권주의에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잇는 호남인들의 밑바닥 정서에도 존재한다. 불유쾌하지만, 우리에게는 박정희에 대한 완전히 묵살할 수 없는 공감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

이와 관련하여 강준만은 한 가지 흥미로운 상상을 우리에게 전한다.

"만약 히틀러가 1938년에서 멈추었더라면 그는 인류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히틀러는 비스마르크 이래 독일 최고의 지도자로 추앙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가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어리석은 가정'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현실로 일어났다고 본다. 박정희는 말하자면 1938년에 멈춘 히틀러다. 그래서 우리는 박정희와 싸우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 추미애 : (신당 추진은) 호남의 뺨을 때려 영남표를 얻겠다는 정의롭지 못한 일

# 노무현은 자신이 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저도 대통령으로서 여러 가지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제가 내걸었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가 지역구도의 해소였다. 어떻게 보면 제가 정치를 한 가장 중요한 목표가 우리 정치에 있어서의 지역구도 해소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어떻게 보면 제가 그런 목표를 내걸었기 때문에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국민들의 선택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결국 지역주의에 가담하지 않고 지역주의에 맞서왔던 정치인에 대한 신뢰나 지지의 표현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그것말고 제가 특별히 다른 후보들보다 더 잘난 데가 없지 않나. 저는 그렇게 지금까지 믿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지역구도만 해소할 수 있다면 충분히 대통령이 된 역사적 사명은 다한 것이라고 사명처럼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근 1년 이상을 민주당 파괴와 열린우리당 건설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고 매진했다. 이런 구상 속에서 그가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대북송금 특검 프로젝트였다. ...

노무현은 대북송금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지지자들의 요구를 뿌리친 뒤 이를 '한나라당에 대한 선물'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왜 한나라당에 선물을 해야 할까? 완곡한 표현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인 영남인들에 대한 선물이었다. 노무현은 앞으로 자신의 영남의 대한 선의를 인정받기 위해 선물을 한 것이다. 그것이 기가 막힌 것은 김대중이 통탄하는 대북송금이 영남인들에게는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김대중이 통탄할수록 그것은 영남인들에 대한 뜻 깊은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노무현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

영남은 2003년 4 · 15 총선에서 노무현의 영남을 향한 충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1년 이상 혼신의 힘을 바쳐 '김대중의 민주당'과의 절연을 선언하며 화해를 구걸했지만 영남은 그 투항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지역구도를 마무리하려는 노무현의 정략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 패배의 상처는 깊다. ... 국내의 지역구도는 더욱 악화되었다. ... 그는 전국정당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었지만 단 4석의 영남 의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 결과를 얻기 위해 그렇게 요란하게 호남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정치적 배신을 했는가를 생각한다면 어이없는 일이다. ...

우리가 세계 정치사에서 흔히 보는 단순한 분당은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든 소수이든 조용히 기존의 당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이 당 해체를 강요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그들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우선 남아 있는 사람들과 지지자들의 정치적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다. 대통령의 권한을 등에 업은 이런 폭력적 행위가 역사적으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특별히 내가 문제삼는 것은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이 민주당을 해체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였다. 그들은 민주당을 파괴하기 위해, 즉 김대중과 그의 정당인 민주당과 절연했음을 영남패권주의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민주당을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양비론적 '지역주의 부패정당'으로 규정했다. 이 천박한 역사의식은 단순히 민주당의 정치인들을 지역주의 기생세력, 즉 '철밥통'으로 규정하고 끝나는 마녀사냥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민주당을 그렇게 규정하는 순간 민주당을 지지했던 호남인들의 그간의 모든 역사적 행위들을 잘못된 지역주의 행태라고 규정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 그는 역사를 모욕하고 그 역사 속에서 자부심을 갖고 외롭게 투쟁한 호남인들을 모욕하면서 이제는 열린우리당을 통해 단절적으로 새출발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이제 와서는' 철폐의 대상이 아니라 고사의 대상이어야 한다.

# 왜 대권을 노리는 정치적 리더들은 대부분 영남 출신일까?

# 박근혜의 등장은 영남인들에게 회심의 대안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탄핵 이후 총선을 앞두고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일주일도 못되어 순식간에 일으켜 세웠다. 이 불가사의한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그녀는 영남패권에 대한 향수다.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미래의 영남패권을 위한 대안이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박정희를 공격하는 것으로 만만하게 격퇴될 정치 현상이 아니다.

# "계급투쟁은 '생각하지 않기'에 의해서만 전진할 수 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는데 "지역투쟁은 '생각하지 않기'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을까? ...

'지역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금기의 근원은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다. 이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는 가장 먼저 영남패권주의라는 용어를 지역감정으로 대체시킨다. 이 대체가 끝나자마자 즉각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물질적 · 정신적 패권이라는 실질적 지배 관계는 사라지고 원인을 규명하기 힘든 상호감정 대립이 등장하는 것이다. ...

용어는 이 경우 틀림없이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우리가 영남패권주의라는 용어 대신 노무현식 지역감정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영남의 지역감정=호남의 지역감정'이라는 양비론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지역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돌팔이의 치유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고 만다. 이 침묵을 통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영남패권주의라는 실체다.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침묵을 통해 자신을 실현한다.

# 사실상 우리 모두가 의식하고 있고, 지배받고 있는 어떤 관계에 대해 우리 모두 의식해서도, 말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 다시 그것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속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좋겠는가? 고민할 것 없다. 그것이 바로 위선이다.

# 영남패권의 주체와 객체를 적시하는 순간 민주노동당은 지역적 적대감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남패권주의 체제하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계급환원주의라는 명분 뒤로 후퇴한다. 이렇게 그들도 영남패권주의 체제 속의 '침묵의 카르텔'에 편입된다.

# 나는 ... 존재하지 않는 당위적 구도에 대한 의미부여를 위해 존재하는 현실적 구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포기하는 거꾸로 선 논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 '침묵의 카르텔'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침묵을 실현한다. 말하지 않으면서 속으로만 계산하기, 완고한 계급환원주의, 당위주장을 위해 현실을 못 본 체하기 등등이 그것이다. 나는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것도 물론 환영한다. 그러나 그들의 단순한 문제인식으로는 지역문제의 근원적 진전을 이루기 힘들 것이다. 세상에는 계급으로 환원되지 않는 수없이 많은 모순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계급으로 환원되지 않는 압도적인 지역모순의 역사가 있다. 계급투쟁만이 문제되는 사회라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맞춰 사고해야 한다. 자신들의 당위에 맞춰 거꾸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틀림없는 관념론의 함정이다.

# 우선 내가 가장 강조하는 지역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은 지역문제의 실체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나는 어떤 병도 잘못된 진단으로 나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더군다나 환자의 병을 감추고 쉬쉬하는 것만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지역문제의 실체를 인정하라는 나의 주장은 어쩌면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주문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역문제의 실체를 인정하라는 주장은 곧 영남패권주의의 역사적 실체를 인정하라는 말이고, 그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하라는 말이며, 반성의 토대 위에서 기득권이 부당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며, 또한 인정된 부당한 기득권의 역사적 환원을 고려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원칙대로 주장한다.

다음으로 주장하고 싶은 사안이 있다. 그것은 영남패권주의는 단순한 감정 혹은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 구조의 문제다. ...

이 문제에 대하여 오랫동안 고심해온 강준만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 한 마디로 그는 이 세상이 정글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모든 것은 아니므로 호남차별은 '옳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 즉 '양심과 도덕'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과 문화'다"라고 결론내린다. ... 사실 사회를 구성하는 한 인간이 바뀌면 결국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은 거의 모든 사회과학적 이데올로기의 명제다. ... 그러나 그 개인적이고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인간이 자신을 실현하는 것은 사회적 제도와 구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

나는 우리나라의 영남패권주의도 상당히 공고하게 구조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순히 경험적인 인과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조를 구조적으로 해체시키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인간의 선한 마음의 가능성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 종교가 아닌 사회과학적 대안이란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으로 봤을 때 선한 마음의 가능성보다는 악한 마음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통해 효과적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도 선한 마음의 발현에 온 힘을 기울여 제도를 소홀히 하는 것보다 제도로써 악한 마음에 대처하며 선한 마음이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구조를 반드시 이해해야만 한다.

우선 우리나라의 영남패권주의는 정치적으로 정당제도를 통해 구조화되어 있다. ... 히틀러의 나치당이 이름을 바꾸어 정치체제 내에서 계속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권을 노리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계급환원주의자들과 영남패권주의에 눈 감는 식자층에서는 이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한나라당을 하나의 정상적인 보수정당으로 계산하면서 정치를 논하고 있다. ... 그러나 그 위선적인 셈법은 결코 현실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 이 구조의 문제를 타파하는 것은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하나는 한나라당이 소멸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남에서 한나라당이 정상적인 보수정당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고 후자는 당위적으로 옳은 방법이 아니다. 이것이 역사를 통해 구조화된 영남패권주의 정치체제의 딜레마다.

다음으로 경제적인 구조화다. 영남패권주의는 재벌경제를 통해 구조화되어 잇다. 이것은 어쩌면 정권의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구조화다. ... 다음은 사회적인 구조화다. 사회적인 구조화는 시민사회에서의 영남패권주의의 구조화가 본질적이다. ... 끝으로 문화적 지배구조를 빼놓을 수 없다. ... 문화가 구조적이라는 것은 문화의 생산 메커니즘이 구조적이라는 말이다.

# 구조는 구조에 대한 투쟁으로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 나는 가장 먼저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을 철저하게 일치시키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주장한다. 이는 반드시 영남패권주의만을 겨냥하는 주장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영남패권주의는 되든 안 되든 민주주의를 통해서 극복할 수밖에 없다. 계급모순을 반영하는 정당이든 지역모순을 반영하는 정당이든 모든 정당은 득표율에 비례하는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경제 ·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입법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나는 또한 지역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지역차별이 문제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지역할당제를 법제화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차별문제는 궁극적으로 할당제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도 흑인차별을 시정하는 데 큰 몫을 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여성채용 목표제 등 관련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 마지막으로는 법적으로 다툴 수 없는 영역이다. 이 부분에서의 문화적 차별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다만 이러한 문화적 차별은 정치 · 경제 · 사회적 위세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다른 영역에서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법적으로 다툴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충분히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고도 남은 문제가 있다면 강준만이 강조하는 '인간의 양식'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나는 인간의 양심을 가장 먼저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중에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