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나 프로(전문가)와 아마추어가 있다. 나는 진화 심리학을 프로로서 공부하려고 하며 인정해 주는 사람은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미 프로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둑을 두고 기타를 치지만 프로가 될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는다. 아마추어는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특권(?)이 있다.

 

바둑 프로 기사는 승부에 목숨을 건다. 세계 대회 결승전에서 지면 몇 억 원을 날릴 수 있다. 전성기의 이창호 9단이 수준은 높지만 재미가 없는 바둑을 둔 이유는 이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이룬 이창호 9단이 요즘은 이전에 비해 더 재미 있는 바둑을 두는데 승부를 어느 정도 초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창호 9단 자신도 전성기 시절에 바둑을 둘 때 두는 자신도 몹시 괴로웠으며 이제는 바둑을 즐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쨌든 아마추어인 나는 승부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재미 있게 바둑을 둔다. 바둑을 둘 때 되든 안 되든 대판 싸우고 본다. 져 봤자 그냥 기분이 조금 나쁘고 인터넷 단()이 깎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타를 취미로 치는 사람의 특권은 꼭 악보대로 정확히 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 중 절대다수가 프로가 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듯이 진화 심리학을 배우는 사람 중 절대다수 역시 전문 진화 심리학자가 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물리학에 대한 책을 보는 사람들 중에 전문 물리학자가 되려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진화 심리학은 물리학이나 바둑과는 다른 면이 있어서 아마추어가 조심할 것들이 있다.

 

 

 

물리학은 역사도 오래 되었으며 탄탄한 이론들이 잘 정립되었다. 반면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는 그 반대다. 여전히 전문 진화 심리학자들도 암흑 속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다. 진화 심리학이 여전히 암흑 속에서 헤매는 이유는 단지 역사가 짧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과 관련된 현상은 물리 현상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진화 심리학자들은 물리학자들보다 훨씬 머리가 나쁜 것 같다.

 

진화 심리학 문헌을 보면 perhaps, probably, may, plausible과 같은 단어를 짜증나게 많이 보게 된다. 한국말로 하면 아마, 그럴 듯하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현 상태의 진화 심리학을 잘 반영한다. 그런데 진화 심리학 대중서나 신문·잡지에 실리는 기사에서는 그런 단어들이 부당하게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아직 잘 검증되지 않은 가설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잘 검증된 이론이나 되는 것처럼 과대 포장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글을 읽을 때 이런 점에 주의해야 한다.

 

제대로 정립되지 않는 학문 분과의 경우에는 정통(좋은 의미로 쓴 단어임)과 사이비의 경계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물리학에 비하면 진화 심리학에 이런 측면이 강하다. Robin Dunbar Louise Barrett가 편집한 『Oxford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2007)』은 대중서도 아니며 상당히 권위 있는 Handbook 시리즈로 보이는데도 내가 보기에는 한심해 보이는 논문이 여러 편 실려 있다. 전문 진화 심리학자로 인정 받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의 말이라 하더라도 쉽게 믿으면 안 된다.

 

 

 

진화 심리학계는 영어권이 꽉 잡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깊이 공부하려면 영어로 봐야 한다. 수 많은 진화 심리학 관련 서적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넓게 잡으면 100 권도 넘게 번역된 것 같다. 하지만 거의 한결같이 쉽고 대중적인 책들만 번역 출간하며 그나마 대부분 번역이 개판이다. 한국 학자들이 쓴 책은 몇 권 되지 않으며 진화 심리학을 깊이 다룬 책은 전혀 없는 듯하다. 한국어로 된 책만 읽는 사람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번역이 개판일 지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가 그 동안 했던 번역 비판 작업을 보면 내 말을 믿게 될 것이다.

 

 

 

진화 심리학에 매우 적대적인 사람들이 소리 높여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고 비난한다. 나는 이런 비판이 너무 수준이 낮고 엉터리이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거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추어에게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초보자에게는 그런 비판서가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 1> 정도 실력인 나에게 <아마 3>이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프로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 3>의 바둑은 보기에도 민망할 것이다.

 

그런 책들 중에 Hilary Rose & Steven Rose가 편집한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2000)』를 추천하고 싶다. 아쉽게도 이런 류의 책은 한 권도 번역되지 않은 듯하다. 프란츠 M. 부케티츠의 『사회생물학 논쟁』이라는 번역서가 있긴 하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진화 심리학 대중서 몇 권을 읽고 진화 심리학 팬이 되었는데 『Alas, Poor Darwin』을 읽고 진화 심리학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면 그 사람은 진화 심리학을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물리학이나 수학의 경우 문외한이 감히 전문가에게 덤비지 않는 반면 정신분석의 경우에는 문외한도 덤벼든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실제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물리학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이나 진화 심리학과 같은 문제에서는 전문가와 대등하게 토론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정신분석은 미신에 불과하기 때문에 내가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에 대한 그런 태도는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 선택 이론이 쉬우며 자신이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Thomas Huxley왜 이렇게 쉬운 것을 나는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식으로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하지만 Huxley는 다윈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연 선택 이론의 기본 아이디어는 쉽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본 아이디어도 쉽다.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면 무거워진다와 같은 말은 나도 할 줄 안다. 그렇다고 내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착각하지는 않는다.

 

자연 선택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체군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을 이해해야 한다. 거기에는 물리학에 쓰이는 수학만큼 난해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공식들이 나온다. 게다가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까지 제대로 이해해야 자연 선택을 온전하게 알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분자 유전학을 배워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고전적 적합도(classical fitness)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고전적 적합도보다는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 개념이 더 정확하게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그것마저도 유전체내 갈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사치에 불과하다. 아마 위에 있는 몇 문장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연 선택 이론에 대해 거의 모르는 것이다. 유전자의 관점(genes eye)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진화 심리학 가설 또는 이론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진화 생물학 개념은 대단히 지저분하다. 물리학이나 수학의 경우 개념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문턱을 넘으면 많은 것이 명료해진다. 문턱이 엄청 높을 뿐이다. 반면 진화 생물학의 개념은 처음에는 쉬워 보이지만 깊이 공부할수록 개념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진화 생물학의 개념이 지저분한 근본적인 이유는 생명 현상이 물리 현상에 비해 지저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개념이 지저분하다고 개념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개념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학자마다 개념을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 파악해야 하며 개념의 애매한 부분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개념의 애매성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간의 개체군 간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인종 즉 인류의 아종이 없다고 우긴다. 아종 개념보다 훨씬 더 명료한 종 개념 조차도 상당히 애매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은 그렇게 바보 같은 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에서 필요한 능력은 과학적 상상력과 엄밀한 검증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진화 심리학처럼 아직 유아기이며 학자들끼리도 서로 별로 동의하는 것이 없어서 말이 학자들마다 다를 때에는 검증의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진화 심리학 명제를 볼 때에는 항상 얼마나 강력한 증거가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물리학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이론이 충분히 검증되었기 때문에 교과서를 어느 정도 믿어도 별 문제가 없지만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는 많이 다르다.

 

검증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결국 개념과 이론의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안 그래도 진화 심리학의 개념과 이론이 애매한데 대중서에서는 그것조차도 단순화해서 제시한다. 따라서 대중서에서 제시하는 증거가 그럴 듯해 보인다고 해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개념과 이론의 늪이 어떤지 경험해보면 그런 증거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그럴 듯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화 심리학은 정신분석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입장에서 볼 때 매혹적이다. 대중이 즐길 것이 많다. 물론 깊이 공부하면 또 다른 재미가 생긴다. 이것은 대중이 별로 재미 없어 하는 전성기의 이창호 9단의 바둑을 프로가 재미 있게 구경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나는 대중이 진화 심리학을 다룬 책을 보고 즐기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또한 나름대로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가설을 만드는 재미도 있다. 대중이 물리학 가설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진화 심리학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취미는 취미로 끝나야 한다.

 

특히 자신이 어설프게 익힌 진화 심리학 지식을 실생활에 응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여기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잘 검증되지도 않은 이론을 적용해서 정책을 만든다면 재앙이 될 수 있다.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정신분석, 기능론적 사회학, 마르크스주의, 가부장제 이론 등이 많은 경우 진화 심리학보다도 덜 검증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의 엉터리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할 때에는 가만히 있고 진화 심리학의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하면 그 난리를 치는 것이다.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대드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진화 심리학자가 진화 심리학을 주제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화 심리학자가 일방적으로 대중을 가르치는 방식의 소통도 있지만 논쟁을 통한 소통도 있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논쟁을 통해 가르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논쟁은 서로에게 대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아마추어는 프로에게 대들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프로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는 물리학과 달리 이런 착각이 많은 것 같다. 진화 심리학도 다른 분야처럼 기초를 튼튼히 해야 깊이 배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영어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어렵고 딱딱한 글을 보아야 한다. 누군가 아마추어이기를 포기(?)하고 프로 또는 세미프로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환영이다. 하지만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마추어로 남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소개하겠다. 초보자를 위한 좋은 책들을 다 나열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책들만 소개했다.

 

진화 생물학 특히 자연 선택 이론이 궁금한 사람은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과 『이기적 유전자』, 조지 윌리엄스의 『진화의 미스터리: 조지 윌리엄스가 들려주는 자연 선택의 힘』를 먼저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윈의 책부터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다윈의 책은 어느 정도 깊이 공부한 다음에 봐야 재미 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 인간의 성과 진화에 숨겨진 비밀』은 성의 진화를 테마로 한 책으로 진화 생물학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은 백지론의 문제를 잘 정리했다.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는 성과 사랑을 다룬 책이다. 대중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이며 상당히 쉽다. 진화 심리학의 아이디어와 검증 방식을 아주 쉬운 수준에서 접할 수 있다.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는 진화 심리학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번역된 개론서 중에는 가장 나은 것 같다.

 

스비튼 핑커의 『언어본능: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은 촘스키의 언어학과 진화 심리학을 결합한 책이다.

 

Steven Gaulin & Donald McBurney의 『Evolutionary Psychology(2003, 2)』은 진화 심리학 교과서다. 진화 심리학을 전반적으로 그리고 쉽게 다루고 있다.

 

Hilary Rose & Steven Rose가 편집한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2000)』는 진화 심리학에 대한 온갖 엉터리 비판을 잘 모아놓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초보자를 위한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다.

 

Steven Gangestad Jeffry Simpson이 편집한 『The Evolution of Mind: Fundamental Questions and Controversies(2007)』에서는 진화 심리학계 내부의 논쟁을 어렵지 않게 정리하고 있다.

 

Ullica Segerstrale의 『Defenders of the Truth: The Sociobiology Debate(2001)』에서는 진화 심리학(또는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풍부한 뒷얘기와 함께 상세하게 들려준다.

 

아무리 아마추어라 하더라도 다음 두 편의 논문에는 꼭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ublist.htm 에서 볼 수 있다.

Conceptual foundations of evolutionary psychology(2005), The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David Buss 편집)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1992), The adap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

 

 

 

2010-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