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인 것이 전혀 없다는 입장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죄책감과 같은 감정도 강화(reinforcement)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사회 규범을 어길 때 처벌을 받는 경험이 쌓여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만약 어떤 사람이 사회 규범을 어겨도 전혀 처벌을 받지 않고 자란다면 죄책감이란 감정도 발달하지 않을 것이다.

 

 

 

 

 

도덕 감정만 선천적이라는 입장

 

인간이 규범을 어기면 죄책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지만 규범의 내용은 완전히 문화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 어떤 규범을 주입했느냐에 따라 내면화된 규범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만약 하루에 한 번씩은 살인을 해야 한다고 어린 시절부터 가르치면 그 사람은 커서 오늘은 살인을 하지 못했군이라고 중얼거리며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가지 기본적인 도덕 규범도 선천적이라는 입장

 

죄책감과 같은 감정뿐 아니라 몇 가지 규범도 선천적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 그 몇 가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어떤 학자는 기독교의 십계명과 비슷한 목록을 만들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바람 피우지 말라, 폭행하지 말라, 윗사람을 공경하라.

 

어떤 학자는 좀 더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목록을 만들 것이다: 서열의 규범, 내집단-외집단의 규범, 위해(危害)의 규범, 소유권의 규범.

 

 

 

 

 

도덕 규범의 세세한 부분까지 선천적이라는 입장

 

이것이 내가 지지하는 입장이다. 나는 수십, 수백 가지의 도덕 규범들이 선천적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각 규범의 심각성의 정도까지 선천적으로 정해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나의 입장은 선천론의 극단에 가깝다. 나는 도덕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나보다 더 극단적인 선천론을 주장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를 지지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은 뇌 속에 단 몇 개의 선천적 모듈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 개의 선천적 모듈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수십, 수백 가지의 선천적 규범들이 있다는 생각과 비슷한 면이 있다.

 

각 규범의 심각성의 정도까지 선천적으로 정해졌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예컨대 살인하지 말라강간하지 말라보다 더 심각한 규범으로 생각하도록 인간이 설계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선천적 규범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대충 제시해보겠다: 살인하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 바람 피우지 말라, 윗사람을 공경하라, 폭행하지 말라,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도와라, 남의 생식기를 함부로 쳐다보지 말라, 남의 몸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 남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 근친상간 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공평하게 분배하라, 어린이와 성교하지 말라, 친구를 도와라, 자식을 돌봐라, 거짓말하지 말라,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

 

 

 

 

 

도덕성과 관련한 모든 것이 선천적이라는 입장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런 입장을 소개하는 이유는 나의 입장과 이런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도덕성과 관련한 세세한 것이 선천적이라는 명제와 도덕성과 관련한 모든 것이 선천적이라는 명제는 분명히 다르다.

 

모든 것이 선천적이라는 입장이 틀렸다는 점은 명백하다. 예컨대 동성애, 노예제, 동물 학대 등에 대한 도덕 규범이 시대가 지나면서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만약 모든 것이 선천적이라면 이렇게 문화권에 따라 규범이 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선천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우선 내가 도덕성과 관련한 세세한 것들이 선천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입증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이미 확실히 입증했다면 그 주제로 논문을 써서 진화 윤리학계의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 행동, 사회와 관련된 것들을 확실히 입증하는 것이 쉬운 경우는 별로 없다.

 

어쨌든 내가 도덕성과 관련한 세세한 것들이 선천적이라고 믿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들이 강력한 증거는 못될지라도 나의 입장이 옳을지도 모름을 어느 정도는 암시하는 것 같다. 이제 그 이유들을 몇 가지 제시해 보겠다.

 

 

 

 

 

선천성의 논거: 인류의 보편성

 

위에서 언급했듯이 동성애, 신분제, 동물의 권리 등에 대한 도덕적 입장이 문화권마다 상당히 다르다. 이란에서는 동성과 성교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까지 당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동성간 결혼이 가능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운전을 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그런 법이 만들어진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에스파냐에서는 재미로 소를 죽이는 투우가 인기를 끌지만 많은 나라에서 그런 것들을 금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제가 당연시되었지만 지금은 끔찍한 죄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각 문화권의 규범들이 어떻게 다른지 찾으려고 한다면 끝없이 긴 목록을 만들 수 있다. 그 목록만 보면 규범들이 무한히 달라 보인다. 하지만 보편성을 찾으려고 한다면 또 다른 그림이 보인다. 내가 위에서 선천적 규범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들의 목록에서 제시한 것들은 인류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강간하지 말라가 인류 보편적이라는 나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 사람은 노예제 국가에서는 노예 주인이 노예를 강간하는 것을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하지 말라는 현대의 민주 국가에서나 유효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도 누군가 왕의 딸이나 아내를 강간했을 때에는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나라에 강간하지 말라라는 규범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노예의 권리가 완전히 무시되었을 뿐이다.

 

다른 부족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죽이는 부족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부족에서도 정당한 이유 없이 같은 부족민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었을 것이다. 그런 부족에 살인하지 말라라는 규범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부족 사람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인하지 말라무조건 살인하지 말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중 받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를 뜻한다고 자세히 이야기하거나 아예 그렇게 길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선천론을 편다면 인류 보편적인 것들이 아주 쉽게 설명된다. 반면 문화 결정론으로 인류 보편적인 것들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냥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문화 결정론적 관점에서 설명을 시도하는 것을 몇 가지 본 적은 있지만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하나도 못 봤다. 인류 보편적이라고 해서 선천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류 보편성이 선천성을 어느 정도 암시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선천성의 논거: 도덕적 판단은 매우 복잡하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자극의 빈곤(poverty of the stimulus)의 논거로 선천적 언어 학습 메커니즘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했다. 언어 학습이 이루어질 때 어린이는 어른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입력 받는다. 하지만 그런 입력 값들만으로는 어린이가 하는 언어 능력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린이는 배운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안다.

 

20세기 전반까지 학자들은 대체로 인간이 하는 지적인 과업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이것은 인간의 시각 메커니즘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인간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인공 지능을 조만간 만들 수 있다는 수십 년 전의 허황된 기대에서 잘 드러난다. 시각에 대한 연구가 진전될수록 인간의 시각 메커니즘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언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단한 일을 시각 또는 언어에 전문화된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없이 단지 학습만으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도덕적 판단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이 별로 어렵지 않은 과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옳은 일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지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Isaac Asimov의 로봇공학의 세 법칙(Three Laws of Robotics)을 살펴보자.

 

1. 로봇은 인간을 해쳐서도 안 되며 위험에 빠진 인간을 보고 모른 체 해서도 안 된다(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2. 로봇은 첫 번째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A robot must obey orders given to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the First Law).

3. 로봇은 첫 번째 규칙과 두 번째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자신의 보호해야 한다(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or Second Law).

 

이런 식의 단순한 도덕 판단 알고리즘을 심어 놓은 로봇은 인간에 비해 도덕적 판단을 아주 엉뚱하게 하거나 판단을 아예 내리지 못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총기 난사를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위험에 빠졌다. 로봇은 그 사람을 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도록 내버려 둬야 할 것인가?

 

자신의 주인이 누군가를 강간하려고 한다. 이 때 주인이 로봇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로봇은 강간을 하려는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가? 이 때 강간은 인간을 해치는 것인가?

 

강도와 집주인이 모두 칼을 들고 혈전을 벌이고 있다. 이때 로봇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구의 말에 복종해야 하나? 칼에 찔릴 위험에 빠진 사람 중 누구를 구해야 하나?

 

인간이 실제로 하는 도덕적 판단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뇌 속에서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엄청나게 복잡한 정보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그 복잡한 정보 처리 방식 중에서 우리가 학습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선천성의 논거: 자신이 그런 판단을 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도덕적 직관은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것 자체가 어느 정도 선천성을 암시한다.

 

도덕적 어리둥절함(moral dumbfounding)이라는 현상이 있다. 예컨대 근친상간은 나쁩니까?라고 물어보면 절대다수가 곧바로 나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왜 나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제각각이며 어떤 사람은 아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콘돔을 써서 임신할 가능성도 없고, 남에게 알리지도 않고, 서로 합의 하에 이루어지고, 둘 모두 성인이라는 조건을 들이댔을 때에도 절대다수는 근친 상간이 나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를 그럴 듯하게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인간이 시각 처리를 서로 아주 비슷하게 하면서도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우리가 2차원 망막에 맺힌 정보에서 어떻게 3차원 공간을 추론해내고 색감을 만들어내는지를 잘 의식하고 있다면 시각학자들은 다 실업자가 될 것이다.

 

Trolley problem을 비롯한 수 많은 도덕적 딜레마를 제시했을 때 절대다수가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하는데도 대답은 한결같다. 게다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잘 제시하지 못하는 면에서도 한결같다. 이런 현상은 선천성을 암시한다.

 

 

 

 

 

적응론을 향해

 

어떤 표현형이 선천적이라면 적응(adaptation)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피의 빨간색이나 뼈의 흰색과 같은 필연적 부산물(by-product)도 선천적이기 때문에 선천적인 모든 것이 적응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나는 도덕 감정과 규범의 세세한 부분까지 선천적이며 적응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인하지 말라라는 규범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된 이유는 그런 규범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된 사람이 과거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201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