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기사가 되지 못한 프로 기사 지망생들이 좌절하고 있다. 실력이 안 되어서 프로 기사가 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이것은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뛰어든 사람이 때로는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다. 바둑만큼 판정 시비가 드문 게임도 없는데 입단 대회(프로 기사 자격증이 걸린 대회)에서 낙방해서 좌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어차피 육체 스포츠든 두뇌 스포츠든 잘하거나 이겨야 살아남는다.

 

문제는 많은 지망생들이 잘 하는데도 프로 기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입단에 성공한 사람보다 잘 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적이 안 좋은 기존 프로 기사들보다 잘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것은 한국 바둑계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 바둑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했기 때문에 입단 당시 실력을 기준으로 했을 때 수십 년 전에 입단한 기사에 비해 지금 입단하는 기사가 대체로 훨씬 더 잘 둔다. 그리고 바둑도 체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승부를 다투는 실전 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나이가 든 프로 기사들은 대체로 젊은 기사들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프로 기사 지망생들 중에서 입단에 아깝게 실패한 기사들이 현직 프로 기사들 중 성적을 잘 못 내는 기사들보다 훨씬 더 잘 둔다.

 

 

 

현재 한국에 프로 기사는 250명이 조금 안 된다. 프로 기사 자격증의 핵심 권리는 프로 대회 참가 자격증이다. 프로 기사는 프로 대회에 적어도 예선부터 참여할 수 있다. 지금은 아마추어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프로 대회도 많다. 그런 대회에서는 프로 기사가 250 명 정도 참여할 때 아마추어 기사 10명 미만에게만 기회를 준다. 아마추어 기사들끼리 벌이는 사전 예선에서 4강 또는 8강 안에 들어야 프로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프로 기사 자격증은 한국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역 프로 기사들의 철밥통을 깨야 한다. 지금은 한번 프로 기사가 되면 스스로 은퇴하지 않는 이상 영원한 프로 기사로 통하는데 실전에서 잘 이기지 못하는 프로 기사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한국의 프로 기사 수를 300명 수준에서 유지한다고 가정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를 해 보겠다. 6개월에 한 번씩 프로 기사 자격증 대회를 열자. 그리고 한 번에 30명씩 프로 기사 자격증을 주자. 대신 성적이 가장 나쁜 30명은 프로 기사 자격증을 반납한다. 프로 기사 자격증이 평생의 특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있는 사람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로 기사 자격증 대회에서 실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운 나쁘게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단순 토너먼트 방식에 두 번 또는 세 번에 걸친 패자부활전을 추가하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1년에 60명이 프로 기사 자격증을 새로 획득한다. 이런 제도가 시행된다면 일시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프로 기사 자격증을 반납하게 된 기사는 곧바로 다시 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체제를 바꾸면 굳이 프로 대회를 아마추어에게 개방할 필요도 없다. 프로 대회에서 성적을 낼 수 있는 실력이라면 언제든지 프로 기사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뛰어는 어린 꿈나무가 워낙 실력이 딸려서 좌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냉혹한 승부의 세계다. 하지만 나이 많은 프로 기사들의 철밥통 때문에 어느 정도 실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프로 기사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평성의 측면에서 큰 문제다. 현재 한국의 프로 바둑의 세계는 꿈나무한테만 냉혹하고 현역 프로 기사에게는 무한히 연장되는 특권을 주는 체제다. 어리든 나이가 많든 프로 기사 자격증은 한국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공평한 세상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철밥통을 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바둑계에서는 현역 프로 기사의 철밥통을 깨야 한다.

 

 

 

2010-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