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인구가 1200만이다. 수도권에 사는 경상도 출신 지역민의 수는 대체로 5~600만 가량일것이다. 둘이 합하면 1800만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가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 지리라"고 아주 냉정한 말씀을 하는데, 예수는 물론 영적 성장의 측면에서 신자들의 열심을 촉구하기 위해 일종의 협박(?)을 한 것이지만, 종교와 상관 없는 사회적 영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말씀이다. 이건 카오스 이론과도 관련이 있는데, 초기에는 아주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수 없이 벌어지는 경향이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에서 발견되곤 한다.

1960년대부터 편향 발전의 혜택을 마음껏 누린 영남은, 그야말로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해지는"원리에 따라 그 덩치를 엄청나게 늘려왔다. 경상도에 기반을 둔 중앙 권력이 경상도에 투자를 하고, 그 투자를 받은 경상도는 인적 자원을 확충해서 중앙 권력을 장악할 기반을 마련하고, 그렇게 장악된 권력은 다시금 경상도를 살찌우는, 팽창의 선순환이 급속도로 이루어진것이, 경상도가 누려온 영광의 40년이다. 경제적 기반은 말할것도 없다.

예수의 말씀에서는 부유함의 크기에 한도가 없는데, 현실 정치에서는, 특히 한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지역 정치라는 무대에서는, 팽창에 한계가 존재한다. 2000만에 달하는 인구는 한계점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너무 거대하다. 호남을 때려서 다른 지역의 불만을 달래기에는 2000만이 추구코자 하는 파이의 크기가 너무 크다.

영남 엘리트와 영남 기층 민중을 애써 분리해 다수의 영남 유권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멍청한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경상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텔레비전에서 영남 사투리가 유난히 자주 들리는 나라에서 기층 민중의 이익과 엘리트의 이익이 분리된다고 생각하는것은 멍청함 혹은 의도적 무관심에 불과하다. 지역 패권이 작동하는 레벨은 헛똑똑이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시적이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최고 사령부의 운명과 말단 사병의 운명이 같이 가는게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 왜 지역 패권과 지역 서민의 이해관계가 같이 갈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헛똑똑이들의 엘리트/서민 분리론과는 다른 방식의 내부 분열이 2000만 영남 인구의 시대에는 열리게 된다. 국호를 영남 공화국으로 바꾸고 영남인에 대한 인종적 특혜를 헌법에 명시하지 않는 이상, 그래서 타지역을 노골적으로 착취하는 내부 제국주의를 명시적으로 선포하지 않는 이상, 영남 패권은 자체 분열할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는 패권이 유지 될수 없다. 지역 패권의 크기는 전 인구의 1/5 가량을 넘어서는 곤란하다.

과거의 내부 분열이 pk/tk와 같았다면, 2000만 시대의 내부 분열은 수도권/영남이라는 형태로 갈리게 될것이다. 이명박의 아들, 이건희의 아들은 결국 강남에 살게 된다. 아버지들이 죽고 난 후 자녀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역 패권을 관리할것인가의 문제다. 대원외고 인맥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부르주아 커넥션은 그 원천인 경상도 커넥션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확실한 것은 수도권의 영남 패권과 영남에 잔존한 영남 패권의 관계가 이전처럼 노골적으로 끈끈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에 자가 주택을 소유한 경상도 출신 중산층은 경북 시골에 사는 촌로 보다는 옆집에 사는 호남 출신 이웃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이 경우에는 지역주의가 정말 허위의식에 불과한게 맞다. 두 이웃은 지역주의라는 허위의식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똑같이 한나라당에 표를 준다. 지역주의는 정치권의 꽹가리가 아니라 부동산이 깬다. 정치가 20년이 걸려도 못한 일을 아파트 가격이 해낸 것은 오히려 정치학의 원칙에 아주 부합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세종시 문제에서 어디에 발을 담가야 하느냐는 생각보다 꽤 심각한 문제가 된다. 지역균형 발전론이 지고의 선이라는 선입견을 버리면 문제의 본질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우선 충청도의 어느 지점부터 세종시에 대한 찬반이 갈리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세종시 원안에 대한 찬성론이 충청도 일부와 경상도에서 제기되는 것이라면 민주당이 원안 사수에 찬성할 필요가 없다. 세종시 원안 고수로 경상도 표를 얻을 생각인가?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경상도의 복안은 확실한 집토끼인 수도권 민심을 틀어쥐자는 것이다. 수도권 경상도의 이익을 확실히 대변하는 동시에 수도권 비영남의 지지도 못박아 두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리적 경상도는? 이 지점에서 패권의 내부 분리가 생긴다. 수도권에 상경해 기반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는 쪽과 그럴 가능성이 없는 쪽이 분리될 것이다. 전자는 수도권 경상도 패권에 흡수될것이고 후자는 지역에 잔존해 퇴보를 겪을 것이다. 후자를 털어낸 경상도 패권은 더 가벼워지고 강고해 지되,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 패권의 모습을 탈피 할것이다. 수도권에 사는 경상도 3세 정도가 되면 경상도 인이라고 부르기 힘들다.

이런 지역 정치의 동학은 난닝구나 노빠가 가지는 단순한 영호남 지역구도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 머릿속 관념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진보적(?)인게 현실 정치다. 결국 장기로 가면 영호남 지역구도는 퇴보될 것이다. 문제는 그 퇴보라는 것이 세대의 재생산 과정에서 지역 회귀 의식이 자연스럽게 옅어지면서 생기는 것이지, 영남 2세, 3세가 호남 2,3세 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하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세대를 거쳐가며 지역 의식이 옅어진다고 해서 2,3대에 거슬러 올라가는 출신 지역에 의해 미래의 우리 자녀들의 운명이 상당부분 결정된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 아닐수 없다. 앞으로의 2,30년 동안 난닝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