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기쁨 vs. 슬픔과 분노

 

 

감정의 분류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회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은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망의 7가지 감정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감정은 왜,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나는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좀더 많이 알게 되면 우리가 빈약한 삶이 아닌 풍부한 삶을 사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최소한 이렇듯 신비로운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최근의 흥미로운 과학적 진보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감정, 딜런 에번스, 이소, P13]

 

감정의 문제는 두려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감정 세계만큼 험난한 연구 주제도 드물기 때문이다. 흄은 감정은 이성을 노예로 만들 수 있다라는 말로 험난한 여정을 경고했다. 감정은 대부분 불합리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도 있다. 인간은 감정 때문에 삶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감정에 의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감정적 자아의 성질과 변천을 인간성humanity’이라고 부른다.

[꿈꾸는 기계의 진화, P225]

 

감정을 과학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이유는 감정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예측이 매우 어렵다는 점, 감정은 단일한 감정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복합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사랑이나 행복의 감정은 전형적으로 여러 가지 감성상태가 복합되어 발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감정, 딜런 에번스, 이소]에서는 감정을 <기본감정> <고등한 인지적 감정>으로 구분하고 있다.

기본 감정

기본 감정은 보편적이고 본유적이다.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일어나며 한 번 일어나면 수초 간 지속된다. 기본 감정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다음 목록이 기본 감정에 포함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 기쁨,  - 고통,   - 분노,  - 공포,  - 놀람,  - 혐오

[감정, P24]

 

고등한 인지적 감정

고등한 인지적 감정은 기본 감정처럼 보편적이지만 많은 문화적 변이가 있다. 그리고 형성될 때와 사라질 때 기본 감정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고등한 인지적 감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사랑,  - 죄책감,  - 수치,  - 당황함,  - 자부심,  - 질투,  - 시기

[감정, P43]

 

[감정의 롤러코스터, 클라우디아 해먼드]에서는 즐거움, 슬픔, 역겨움, 분노, 두려움, 질투, 사랑, 죄책감, 희망의 9가지 감정상태를 다루고 있다.

 

[스피노자의 뇌, 안토니오 다마지오]에서는 emotion이라는 단어를 정서로 번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감정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고 다른 책 중에서도 이러한 번역이 있었던 것 같다. (‘정서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하기도 하고 이러한 개념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뇌(P43, P58)에서는 <단순한 단계부터 복잡한 단계까지의 자동적 항상성 조절> 메커니즘으로 가장 하위 단계로 대사조절, 기본반사, 면역반응을, 중간단계로서 통증(또는 처벌) 및 쾌락(또는 보상), 다음 단계로서 다양한 충동 및 동기를, 상위 단계로서 배경정서, 일차적 정서, 사회적 정서로 구성되어 있는 협의의 정서가 있다. 다시 일차적 정서에는 두려움, 분노, 혐오, 놀람, 슬픔, 행복 등이 있으며, 사회적 정서에는 동정, 당혹감, 수치, 가책, 긍지, 질투, 부러움, 감사, 동경, 분노, 경멸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에서는 긍정적 감정 중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구분하고 않고 즐거움으로 포괄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기쁨과 즐거움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므로 여기에서는 이 둘을 구분한다. [감정, 딜런 에번스]에서는 슬픔을 감정보다는 기분을 묘사하는데 더 적합하다고 보고 행복의 반대말로 슬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P24], 여기에서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감정을 다루고 있는 더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바랍니다.)

 

[감정, 딜런 에번스]에서는 공포, [감정의 롤러코스터]에서는 두려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두려움(공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기쁨, 슬픔, 분노의 감정상태는 주도적인 하나의 의식(모듈)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처리되는 수직적 속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즐거움, 두려움(공포)는 하나의 의식(모듈)에서 다른 의식(모듈)로 전이될 때 발생하고 처리되는 수평적 속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의 감정은 두려움(공포)와 마찬가지로 진화적으로 가장 오래된 감정에 속하는데, 두려움(공포)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다른 감정상태들이 들러붙어서(???) 아주 복잡해진 복합적 감정상태를 갖는 것으로 진화 된 것으로 보인다.

 

 

 

감정은 왜 생기는가?

 

진화과정에서 선천적이고 자동적인 생명관리장치인 항상성 기구는 점점 더 정교해졌다. 항상성 체계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우리는 개체 전체가 어떤 대상에 접근하거나 그것을 회피하거나, 또는 활동이 증대되거나 감소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과 같은 단순한 반응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항상성 체계 위로 올라가면서 경쟁적 반응이나 협동적 반응 등을 발견할 것이다.

[스피노자의 뇌, P42]

 

단순한 생물이 정서적 반응을 보인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단세포 생물인 짚신벌레를 상상해 보자. 생물 전체가 몸이고, 뇌도 없고 마음도 없는 이 동물은 어떤 위험 뾰족한 바늘이나 너무 높은 진동, 너무 높거나 낮은 온도 등 을 피해서 빠르게 헤엄친다. 또는 영양 성분의 화학적 농도 차에 따라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빠르게 헤엄쳐 간다. …… 내가 지금 묘사한, 뇌가 없는 이 생물에게서 일어나는 사건은 이미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서라는 절차의 정수를 담고 있다. 그 정수란 바로 우리에게 회피나 도피 또는 확신과 접근을 권고하는 사건이나 사물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능력은 학습을 통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짚신벌레의 학교에서는 별로 배우는 것이 없을 테니까. 이런 반응은 겉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복잡하며, 뇌가 없는 짚신벌레의 체내에 존재하는 관련 기국에서 유전자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뇌, P53]

 

행위, 즉 운동성에 대한 감정상태의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행동을 유발하고 행동을 위한 내부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감정상태이기 때문이다.

[꿈꾸는 기계의 진화, P227]

 

오늘날 자율신경 사건이나 감정사건과 관련된 FAP(fixed action pattern, 고정행위패턴-인용자)가 시상하부 활성화에 의해 유발된다는 것은 정설이다. 시상하부는 감정의 발생과 신체의 자율신경, 그리고 내분비 활동에 주요한 구조이다. 시상하부가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감정상태를 동반하는 FAP가 활성화되기 위해 조화된 동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신경계의 조정과 함께, 신체의 다른 변수나 체계도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협을 느낀 새가 날아야 할 때, 날개의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가슴 근육이 동시에 빠르게 활성화되기 직전에 반드시 가슴 근육으로 향한 혈류가 급속도로 증가해야 한다. …..

새의 경우 시상하부는 공포와 같은 감정상태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 새가 날기 위해 필요한 생리학적 운동 FAP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꿈꾸는 기계의 진화, P233]

 

 

모든 것은 차이로부터 시작된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로 차이를 인식(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은 외부적/내부적 환경의 차이를 식별하는 장치이다. 외부적/내부적 차이를 아는 것은 생명체가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유의미한 범위 내에서 차이가 없다면 (혹은 차이가 없다고 믿어지면) 일상적인 수준의 행위(운동성)이 발생된다. 그러나 유의미한 범위를 넘어서는, 일상적인 수준과 매우 다른 비경상적이고 부정적인 입력이 있다면 (혹은 있다고 믿어지면) 그러한 수준에 맞는 감정에너지가 발생해서 그러한 부정적인 차이(생명체의 생존과 번식에 대한 위험이 되는 환경요소)를 제거하려는 반응행동이 일어난다.

 

감정은 [스피노자의 뇌]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진화의 결과로 작동하는 생명체의 항상성 조절장치이다. 감정은 생명체가 내부적/외부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절한 반응행동을 조직화하는 것, 혹은 적절한 수준의 반응행동을 위해 사용 가능한 자신의 자원을 배분하는 것으로 긍정적 감정(기쁨, 즐거움, 사랑 등) 접근 혹은 추구(가까워지려는 속성)하는 반응행동을 가져오고 부정적 감정(슬픔, 분노, 증오, 두려움(공포) )은 회피(멀어지려는 속성)하는 반응행동를 조직화한다.

 

인체에는 체온을 유지하는 항상성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내장된 목표 온도(36.5)가 있고 이 체온에서 유의미한 정도로 이탈되는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한 인체 내 시스템이 작동하여 목표 온도를 회복(유지)한다.

 

다만 면역시스템이나 체온유지시스템과 같은 기본적인 항상성(생명유지) 조절장치와는 다르게, 감정이라는 항상성 시스템은 보다 유연한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진화하였으며, 의식의 진화와 더불어 주관적 성질을 갖게 되었다.

 

사실 온도를 느끼는 것은 다른 느낌과 마찬가지로 거의 전적으로 상대적이다. , 우리가 느끼는 것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그 변화다. 예를 들어 한 손을 차가운 물에 담그고, 다른 손을 뜨거운 물에 담가보라. 그런 다음에 두 손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면, 차가움을 느끼던 손은 뜨거움을 느끼고, 뜨거움을 느끼던 손은 차가움을 느낀다. 절대적인 양으로 치면, 두 손 모두 같은 온도를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손은 차이 또는 변화만을 인지한다.

…. 다시 말해 우리가 인지하는 것은 기준과의 차이일 뿐이다. 온도가 기준보다 차갑거나 뜨거우면, 우리는 그것을 차갑거나 뜨겁게 느낀다. 빛이 기준보다 밝으면, 우리는 거기에서 밝음을 본다. 빛이 기준보다 어두우면, 우리는 거기에서 어둠을 본다.

[우주의 구멍 282]

 

 

결론적으로 말해서 감정(에너지)<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나 사건 혹은 사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기대()><다른 내외부적 상황이나 사건의 입력 혹은 수동적/능동적 행위나 실천의 결과에 따라 발생하는(입력되는 결과()>와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이후로는 줄여서 <사전적 기대치> <결과치>라는 표현을 사용함) <사전적 기대치>와 결과치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면, 감정에너지는 발생하지 않는다. 외부적인 환경이 지극히 반복적이어서 그것의 변화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면, 외부적 요인(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감정에너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사전적 기대치보다 결과치가 높게 나타나면 기쁨(긍정적 감정에너지)을 느끼고 사전적 기대치보다 결과치가 낮으면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에너지를 갖게 된다.

 

사전적 기대치와 결과치는 매달 입금되는 월급과 같이 금전적일 수도 있고, 상사로부터 인정 받거나 칭찬을 듣는 것일 수도 있고, 컴퓨터 게임에서 내가 돌파해야 할 어느 단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출되어야 할 금전의 수준일 수도 있고 등등등

 

위에서 말하는 사전적 기대치와 결과치는 객관적으로 계량화가 가능한 값이 아니라 주관적인 값을 갖는다.

(인간의 의식이 갖는 주관성은 인간의 ()의식들이 모듈적이고 이러한 모듈간에 사용 가능한 자원의 사용을 둘러싸고 경쟁 혹은 경합이 발생하며, 이러한 경쟁 또는 경합의 양상이 모든 사람 각자 각자마다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참조 3-1)

 

사전적 기대치는 유전적/경험적(직접적, 간접적)으로 형성된다. 유전적으로 형성되는 사전적 기대치는 선천적이고, 경험적으로 형성되는 사전적 기대치는 후천적인 것으로 다양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결정된다. 사전적 기대치는 관성적이고 습관적이다. 아이들의 사전적 기대치는 쉽게 조정되지만 어른들의 사전적 기대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일원론의 관점이라면, 유전적 기대치와 유전자적 기대치가 동일하다고 보겠지만, 이원론의 관점이라면 유전적 기대치는 유전자적 기대치를 포괄한다.)

 

<사전적 기대치>는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반응 행위>의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점이다. 너무 높은 수준의 반응행위나 너무 낮은 수준의 반응행위는 생존과 번식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치명적인 실패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사전적 기대치를 갖는 것은 생명체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정확하고 적절한 예측을 하고 그에 따라 정확하고 적절한 반응행위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부적/내부적 환경은 안정적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급격하게 변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외부적/내부적 환경의 변화(차이)에 대응해서 생명체가 사용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적절한 수준으로동원해서 반응하기 위한 기제가 감정이라는 유연성을 갖는 항상성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마지막 단계에서 피드백 작용을 통해서 <사전적 기대치>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는 역할은 욕망(에너지)가 담당한다.(3-5에서)

 

 

기쁨         

 

사전적 기대치보다 더 높은 결과치가 주어지면 기쁨을 느낀다. 전혀 기대한 바가 없었는데 기업의 오너가 전 직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보너스로 100%를 주면 당연히 기쁨을 느끼게 된다. (100%면 완전 대박이다. 다문 얼마라도 더 받으면 싫어할 사람 없다.) 그런데 매달 계속해서 100%를 더 주면 기쁨은 점점 작아지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더 이상 기쁨의 감정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기업의 급여수준과의 비교는 논외로 한다.)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인 투입량(동원 가능한 생존자원의 투입량)이 일상적인 상태에서 사후적인 결과치가 사전적 기대치보다 높게 나타나는, 즉 기대했던 것(주관적으로 평가되는) 보다 결과가 좋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만족감의 대표적인 감정상태가 기쁨이다. 기쁨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기대했던 것 보다 많은 긍정적인 결과를 획득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혹은 기대했던 것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회피하는 정도가 클 때 발생한다. 사전적 기대치와 결과치의 차이만큼 기쁨이라는 감정에너지가 발생한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다른 사람과 함께 기쁨을 나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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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으로부터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결과치에 대해서 인정받게 되고 칭찬을 많이 받으면, 처음에 자신이 생각했던 주관적인 결과치의 수준이 더 큰 값으로 조정된다. , 기쁨에너지의 수준이 배가된다. “정말 잘했어! 당신은 능력 있는 사람이야. 정말 대단한 일을 했어!”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하고는 가까이 있으면 안 된다.)

 

 

슬픔     

 

일상적인 상태에서 결과치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실망감을 느끼게 되며, 이에 따라 발생하는 대표적인 감정상태가 슬픔이다.

 

중학생인 홍길동은 시험성적으로 10등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으며, 시험을 치루었는데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10등 정도가 올랐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드디어 시험성적이 발표되고 그 결과를 확인해보니 10등이 아니라 20등이 올라가 있었다. 홍길동은 기뻐서 방방 뛴다(행동으로 표현하든 하지 않든지 간에). 반대의 경우, 10등이 오르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10등이 떨어져 있었다. 홍길동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슬픔은 육체의 물리적 손상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금전적 손상 등의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예를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와 같이 과거에 반복적으로 관계 속에서 형성된 물질과 에너지의 교류에 대한 기대 자체가 앞으로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상실감으로 인하여 슬픔이라는 감정이 발생하기도 한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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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위로로 인하여 내가 생각했던 비관적인 (주관적) 결과치의 수준의 비관적인 정도가 적아진다. 슬픔의 에너지가 반감된다. “다음에는 잘 될 꺼야, 이것도 어떤 면에서 보면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봐!” (‘그거 쌤통이다라고 말하는 사람(혹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많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봐야 한다.)

 

 

분노     

 

사전적 기대치보다 더 많은 물질이나 에너지의 유입(생존에 필요한 직접적/간접적 자원의 유입 혹은 그러한 자원의 유입을 기대하도록 하는)은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데 이는 생존의 조건이 보다 더 양호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사전적 기대치보다 적은 물질이나 에너지의 유입으로 유발되는 부정적인 감정은 생명체의 생존 조건(이것도 주관적이다)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체에게 생존의 조건에서 부정적인 상태가 지속되거나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은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임계치(생과 사의 경계, 물리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수준, 혹은 이보다 더 중요한 주관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수준)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것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방어적인 기제, 즉 저항과 반발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이 세분화되어 나타난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더 많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29)

 

생존에 불리한 상황에 대한 회피 감정에 대표적인 것이 분노이다. 분노의 감정은 대상이 있는 것(그 대상이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으로 특정 대상의 행위(방해)로 인하여 생존에 필요한 물질 또는 에너지의 유입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실제로 그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이러한 믿음은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에 그 특정 대상을 향하여 분노의 감정이 발생한다. 즉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특정한 대상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상유지(생존)을 위해서는 그 특정한 대상의 방해를 제거(공격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분노는 공격성을 동반한다.

 

분노만큼 우리 신체를 오랫동안 활기 있게 유지시키는 감정은 달리 없다. 이는 과거에 특히 유용했을 것이다. 소규모 부족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주변 부족들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면 신속하게 분노를 터뜨릴 수 있는 능력이 생존에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분노의 유용성이 훨씬 적어졌다. 이제 분노는 자기 방어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흥분해서 폭력을 낳는 경우가 더 많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258]

 

 

슬픔은 자신의 사전적인 기대치를 낮추기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결정함으로서 발생한다. 사전적 기대치를 낮출 수 있는 감정상태는 슬픔(에너지)가 유일하다. 반면에 분노는 자신의 주관적인 사전적인 기대치를 낮추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자신의 사전적 기대치가 생존을 위한 주관적 임계치 쪽으로 향하는 것, 즉 슬픔의 감정상태를 최대한 막아보려는 저항이다. 분노라는 감정상태의 정상적인 기능은 활성화된 분노라는 감정에너지가 다른 ()의식들을 지배하면서 적절한 수준의 조직적이고 일관된 반응행위(공격성)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주관적 관점(내 탓이 아닌 남의 탓)에 타당성과 확신을 부여하는 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의 분노도 더 커지고 감정에너지는 자가증폭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결과치가 사전적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슬픔이라는 감정상태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면, 주관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임계치에 너무 쉽게 다가갈 것이다. 결과치가 사전적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오로지 분노의 감정상태만 갖는다면, (보다 적절한 사전적 기대치를 통한) 보다 적절한 반응행동을 조직화하는데 실패함으로서 사용 가능한 생명체의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잘 되면 내 탓, 잘 못 되면 남의 탓

기쁨과 슬픔, 분노 - 수직적 감정상태 -는 자가증폭과 중독에 더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 감정에 휩싸이면 특히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면 사리분별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견제로 작용하는 다른 ()의식들에 배분되는 에너지를 배타적으로 독점해 버린다. 자가증폭, 사리분별력이 감퇴된다. 다른 모듈의 견제를 허용하지 못할 정도로 특정한 모듈이 대부분의 사용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장악한다. 그래서 남들이 다 보는 것도 보지 못한다. 결국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된다.

 

 

부부싸움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부부는 상대방에 대해서, 서로에 대해서 거의 모든 면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대를 갖고 있다. 집안 청소, 아이와 놀기, 기념일 챙겨주기, 직장생활의 어려움 알아주기, 상대방 식구에 잘해주기, 음식 맛있게 해주기 등등등, 서로가 부딪치는 만큼의 거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기대를 갖고 있다.

 

상대방이 해줄 수 없는 큰 것은 나의 사전적 기대치 범위 밖에 있지만 (일찍이 포기하지만),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요만한일도 못해주나!>라고 생각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나는 <‘고만한 일을 가지고 뭐 그리 화를 내나>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처음에는 요만한 일이니까, 이야기 꺼리도 안되니까,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스러워지는 그런 사소한일이기에 순간 화가 나도 참아버리지만 마음 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같이 살면서 슬프고 때로는 아프기는 하지만,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서로 서로가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지만, 그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정말로 사소한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폭발한다.

 

부부싸움은 모든 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사전적인 기대치의 차이를 좁히는 일이지만 그 차이는 아주 끈질겨서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사전적 기대치는 유전적이고 동시에 어렸을 때부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진 사고방식, 불교식으로 말하면 전생의 업보까지도 연결되어 있는 일이고 스스로의 행동양식,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주 지루하고, 아주 불쾌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화신이 되게 하는, 그야말로 감정적인 과정이고 별의별 생각이 다 일어나고, 때로는 폭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싸울 때 잘 싸워야 한다. 싸울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차이를 좁혀야 한다. 차이가 점점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감정적 상태(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는 주화입마의 상태)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둘이 서로 잘 못 싸우고 있는 것이다. 혹은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참아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조금 양보하는 만큼 상대방에게서도 조금의 양보를 얻어내야 하고 (이것조차도 매우 주관적이어서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가 최대한 공정하다고 느끼도록), 그리고 서로 양보하는 그 조금씩에 대해서 서로가 잘 이해하고 인정하는 결과가 되도록 해야 하는 싸움이다.

 

싸울 때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조금씩 좁혀갈 수 있으려면, 서로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분명하게 해나가는 것. (결과가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매우 감정적인 조절과정이므로 유연한 기술/기교가 필요하다. 서로가 시험점수 채점하듯이 객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고 특히나 자존심이 개입되는 감정상태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갖고 있는 기대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인정하고, 스스로 갖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고통스럽게 줄여가야 한다. 자신의 그리고 서로의 행동 습관, 생활 습관까지 공정하게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아주 개인적이고 아주 내밀하고 그리고 아주 민감한 문제이다. 같이 살지 않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소함이 둘 사이에서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하는 그런 과정이다. 아니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부부간의 감정의 문제이다.

 

부부싸움에 제3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아주 멍청한 짓이다. 부부문제를 풀기 어려운 2차방정식 문제로 비유한다면, 여기에 3, 예를 들어 부모나 형제나 친구들이 개입되면 갑자기 3차방정식, 4차방정식….이 되어버린다. 2차방정식 문제도 풀기가 어려운데 3차방정식 이상이 되어버리면 이거는 아예 풀기가 불가능해진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