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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블룸은 공평함(fairness)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 a rudimentary sense of fairnessa tendency to favor equal divisions of resources

(Just Babies: The Origins of Good and Evil, Paul Bloom, 5)

 

블룸에 따르면 공평함이란 자원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다. 나는 도덕 철학에서 공평함을 이런 식으로 정의하는 것에 반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블룸은 인간의 타고난 도덕 감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자연 선택이 인간의 도덕 감각(moral sense)을 어떻게 “설계”했는지를 따지고 있다. 블룸은 도덕 철학(도덕의 교권)이 아니라 도덕 심리학 또는 진화 윤리학(과학의 교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진화 윤리학의 맥락에서 볼 때 공평함이란 “서열에 따른 착취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서열이 같을 때에는 자원을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공평하다(물론 자원 획득에 들인 노력이 같다고 가정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서열이 다를 때에는 서열이 높은 쪽에서 어느 정도 착취하는 것이 공평하다. 그 수준을 넘어서는 착취도 불공평한 것이지만(“너무 하는 것 아냐”) 그 수준보다 작은 착취도 불공평한 것이다(“건방진 놈”).

 

 

 

우리 조상들이 진화했던 사냥-채집 사회는 일반 침팬지(common chimpanzee) 사회보다는 평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서열이 없었던 절대 평등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살던 인간이 자원을 똑같이 나누는 것을 공평함이라고 느끼도록 하는 심리 기제를 진화시켰을 것 같지 않다. 공평함 판단 기제의 진화에 서열의 규범이 녹아들었을 것 같다.

 

 

 

자연 선택은 칸트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유전자 복제 또는 개체의 번식이 최대화되도록 하는 형질이 선택된다.

 

자신이 힘이 더 세서 서열이 높은데 그 높은 서열을 이용해서 남들을 착취하지 않고 착하게만 산다면 손해다. 따라서 서열이 높은 개체는 서열이 낮은 개체가 자신과 맞먹으려고 할 때 “건방진 놈”이라며 도덕적 분노를 터뜨리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서열이 낮은 개체의 입장에서 볼 때 착취를 조금도 당하지 않으려고 서열이 높은 개체에게 대드는 것은 바보 같은 전략이다. 어느 정도는 착취를 감수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하지만 착취를 너무 많이 당한다면 대드는 것이 적응적이다.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블룸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