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인종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문화인류학 교과서에 나오는 구절을 살펴보자.

 

생물학적 인종 개념은 인류의 육체적 변이를 연구하는 데 쓸모가 있나?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정의된 인종은 아종을 가리키는데 현대 호모 사피엔스에는 아종이 없다. 우리 종 안의 생물학적 변이 중 절대 다수는 개체군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군들 내에 있다. 게다가 개체군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은 서로 이웃하는 개체군들 사이에서 점차적으로 존재한다. 이런 이유들과 다른 이유들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사회적 범주로서 인종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생물학적 인종 개념이 오류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Is the Biological Concept of Race Useful for Studying Physical Variation in Humans?

No. Biologically defined, race refers to subspecies, and no subspecies exist within modern Homo sapiens. The vast majority of biological variation within our species occurs within populations rather than among them. Furthermore, the differences that do exist among populations occur in gradations from one neighboring population to another, without sharp breaks. For these and other reasons, anthropologists have actively worked to expose the fallacy of race as a biological concept while recognizing the significance of race as a social category. (Cultural Anthropology: The Human Challenge, William A. Haviland , 12, 69)

 

생물학자들 중에는 아예 아종(subspecies) 개념을 쓰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아종 개념이 너무 애매해서 안 쓰느니만 못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아종 개념 자체를 쓰지 않는다면 생물학적 인종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속 편한 해결책이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아종 개념이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종이라는 용어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위에서 인용한 문화인류학자 Haviland도 아종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것 같지는 않다. Haviland는 두 가지 근거를 대며 생물학적 인종 개념을 거부한다.

 

개체군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은 서로 이웃하는 개체군들 사이에서 점차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아종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주장을 먼저 살펴보자. Haviland가 아래의 글을 보게 된다면 뭐라고 할까?

 

번식 격리(reproductive isolation)라는 기준은 애매한 경우가 있다. 유기체들은 서로 이계교배(interbreed)할 수 없을 때 서로 다른 종에 속하는가? 아니면 그냥 이계교배를 하지 않을 때 서로 다른 종에 속하는가? 늑대, 코요테, 개는 서로 다른 종으로 여겨지지만 이계교배가 일어나며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와는 달리 그렇게 태어난 자식은 보통 불임이 아니다. 닥스훈트(Dachshund)와 아리리쉬 울프하운드(Irish wolfhounds)는 같은 종으로 생각되지만 그 주인들이 명백히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박쥐와 돌고래 사이만큼이나 서로 번식적으로 격리되어 있다. 사실 메인(Maine) 주에 사는 흰꼬리 사슴(white-tailed deer)은 메사추세츠(Massachusetts) 주에 사는 흰꼬리 사슴과 이계교배를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멀리 여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옮겨 놓는다면 분명히 이계교배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당연히 같은 종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자들을 위해 주문 제작한 것 같은 실제 사례인, 북반구에서 북극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고리 모양의 지역에서 서식하는 재갈매기(herring gull)를 살펴보자.

 영국에서 북아메리카로 서쪽으로 가면서 재갈매기를 살펴보면 재갈매기로 알아볼 수는 있지만 영국의 형태와는 조금 다른 갈매기를 보게 된다. 모습이 점점 변하는 것을 보면서 시베리아까지 따라가 보자. 이 연속체의 이 지점쯤에서 갈매기는 영국에서 작은검은등갈매기(lesser black-backed gull)라고 부르는 형태와 더 비슷하게 생겼다. 시베리아에서 러시아를 지나 북유럽으로 가면서 갈매기는 점점 영국의 작은검은등갈매기와 비슷해지는 쪽으로 변한다. 마침내 유럽에서 고리는 완성된다. 지리적으로 극단적인 두 형태가 만나서 완벽하게 구분되는 두 종을 형성한다: 재갈매기와 작은검은등갈매기는 그 모습에서도 구분되며 자연 상태에서는 이계교배를 하지 않는다. [Mark Ridley 1985, p. 5]

잘 정의된 종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기원을 설명하려는 것이 다윈의 책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는 종 개념의 원리에 입각한 정의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라고 한다.

The criterion of reproductive isolation is vague at the edges. Do organisms belong to different species when they cant interbreed, or when they just dont interbreed? Wolves and coyotes and dogs are considered to be different species, and yet interbreeding does occur, and unlike mules, the offspring of horse and donkey their offspring are not in general sterile. Dachshunds and Irish wolfhounds are deemed to be of the same species, but unless their owners provide some distinctly unnatural arrangements, they are about as reproductively isolated as bats are from dolphins. The white-tailed deer in Maine dont in fact interbreed with the white-tailed deer in Massachusetts, since they dont travel that far, but they surely could if transported, and naturally they count as of the same species.

And finally a true-life example seemingly made to order for philosophers consider the herring gulls that live in the Northern Hemisphere, their range forming a broad ring around the North Pole.

As we look at the herring gull, moving westwards from Great Britain to North America, we see gulls that are recognizably herring gulls, although they are a little different from the British form. We can follow them, as their appearance gradually changes, as far as Siberia. At about this point in the continuum, the gull looks more like the form that in Great Britain is called the lesser black-backed gull. From Siberia, across Russia, to northern Europe, the gull gradually changes to look more and more like the British lesser black-backed gull. Finally, in Europe, the ring is complete; the two geographically extreme forms meet, to form two perfectly good species: the herring and lesser black-backed gull can be both distinguished by their appearance and do not naturally interbreed. [Mark Ridley 1985, p. 5]

Well-defined species certainly do exist it is the purpose of Darwins book to explain their origin but he discourages us from trying to find a principled definition of the concept of a species. (Darwin's Dangerous Idea: Evolution and the Meanings of Life, Daniel C. Dennett, 45)

 

재갈매기와 작은검은등갈매기는 고리 종(ring species)이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한다. 이 사례에서도 두 종은 칼로 자르듯이 분리되지 않으며 하나의 연속체를 형성한다. Haviland가 일관성 있게 주장하려면 재갈매기와 작은검은등갈매기를 두 종으로 나누면 안 될 것이다.

 

생물 분류학에서 종 개념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종 개념조차도 상당히 애매하다. 아종 개념은 종 개념보다 더 애매하다. 따라서 그런 아종 개념을 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개체군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은 서로 이웃하는 개체군들 사이에서 점차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생물학적 인종이 없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 종 안의 생물학적 변이 중 절대 다수는 개체군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군들 내에기 때문에 아종으로 나눌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떤가? 이것 역시 제대로 된 논거가 아니다. 아종 개념을 정의할 때 개체군 간의 변이가 개체군 내의 변이보다 더 커야 한다는 조건을 포함시키는 생물학자는 없어 보인다. 심지어 그런 조건은 종 개념에도 없다. 생물학적 변이 중 절대 다수는 개체군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군들 내에 있다 하더라도 번식 격리가 있다면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개체군 간의 변이를 수치화하는 방식과 개체군 내의 변이를 수치화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둘을 비교하는 것은 길이와 넓이를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이 문제까지 여기서 파고들지는 않겠다.

 

Francisco Gil-White는 『Resurrecting Racism: The modern attack on black people using phony science (2004)』에서 아종의 조건으로 생물학적 불연속성(biological discontinuity), 지적할 수 있는 유전적 경계(identifiable genetic boundary), 똑부러지는 구분(crisp categories) 등을 내세운다. 아종과 아종 사이의 경계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Gil-White Haviland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http://www.hirhome.com/rr/rrcontents.htm

 

생물학적 인종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종 개념이 종 개념보다도 덜 애매해야 한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인류가 그런 아종 개념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도대체 아종 개념을 쓰는 생물학자들 중에 누가 아종 개념이 종 개념보다 덜 애매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 Haviland는 인종 개념은 거부하지만 개체군이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다. 아종으로 부르든 개체군으로 부르든 어떤 면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종들 사이에 선천적 IQ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냥 인간 개체군들 사이에 선천적 IQ 차이가 있다고 말만 살짝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2010-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