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에 메모해 둔 글인데 정리하다가 눈에 들어와서 옮겨와 봤습니다.

...쿠바의
아바나의 문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어떤 교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백년동안의 고독' 분석한 끝에, 작품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기쁘고 우울한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모든 것을 통해 나는 작품 해석을 하려는 광기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소설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아주 순진한 독자이다. 왜냐하면 소설가들이란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날 아침 깨어나보니 자신이 아주 거대한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했을 , 그것이 어떤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마음속에 남아서 괴롭혔던 궁금증은 그게 과연 어떤 부류의 동물이었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중략)..나는 가르강튀아가 파리의 대성당 위에서 소나기처럼 오줌을 누었다는 아주 즐거운 사실도 믿는 사람이다. 게다가 이와 비슷한 기적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대부분의 그런 기적을 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문학 선생님이 우리의 눈을 이성주의라는 어둠으로 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잊을 없는 선생님은 내가 다섯살 글을 가르쳤던 여선생이다. 그녀는 아주 예뻤으며, 자기가 아는 이상으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녀는 너무도 젊게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보다도 어릴 있게 것이다. 그녀가 바로 수업시간에 영원히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시를 읽어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문학 수업은 훌륭한 독서를 위한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의 또다른 의도는 아이들을 놀라게 ,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출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어린이들도 읽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