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본다고해도 이건 조작이 맞아요
실수도 아니고
국정원 직원은 승진을 위해 국정원은 조직의 존재감을 위해 검찰도 건수를 위해 간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양심을 속인겁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이런 수준이라니 참
자세한 이야기가 한겨레에 실렸네요
그리고 유우성씨는 화교지만 국적은 중국 국적이 아니었습니다
기사에 보면 아버지가 중국 국적을 취득하는 중이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유씨는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한반도에서 한민족처럼 살아왔기에 중국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남한에서의 ‘제2의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유씨는 2004년 3월 북한을 나와 중국-라오스-베트남-타이를 거쳐 한달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살아남기 위해 막노동, 보따리상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고생 끝에 2007년 연세대학교 중문학과에 편입했고 2011년 6월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계약직 공무원이 되었다. 생활이 안정되자 동생 유가려(27)씨를 데려와 함께 살고 싶었다. 동생은 아버지 유아무개씨와 함께 2011년 7월 북한을 완전히 나와 중국 국적 취득을 위해 연길시에 머무르고 있었다.

유우성씨는 평소 자신과 연락하고 지내던 국정원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동생을 한국에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니까 선생님(국정원 관계자)은 ‘한국에 데려오면 잘 도와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데려온 건데 마치 제가 북한 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데려온 것처럼 국정원과 검찰은 주장했어요.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유씨는 국정원을 믿었다. 2012년 10월30일 동생을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시켰다. 국정원에 자진신고했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경기도 합동신문센터(탈북자 신원 등을 확인하는 기관)에서 동생이 몇개월 머물다 조사가 끝나면 곧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유씨는 기대했다. 동생은 바로 합동신문센터로 보내졌다.

그러나 동생은 풀려나지 않았다. 2013년 1월10일 아침 국정원 수사관들이 유우성씨의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눈을 가린 채 승합차에 태워졌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서울구치소에 입감됐고 파란색 수형복을 입게 됐다. 동생을 한국에 데려오면 도와주겠다던 국정원 관계자는 더이상 유씨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