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난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어릴 때 읽은 [소공자], [소공녀]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가난에 대한 공포는 점점 커졌다.
특히 안데르센의 동화 '행복한 왕자'는 너무 가슴 아프고 무서웠다.

또 나는 오래 전부터 두 가지 문제점을 느껴 왔다.
첫째는 [빠빠라기]를 읽은 이후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마음껏 돕지 않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굶어죽는 사람이 있어도 못 본 체하고, 가난한 나라가 있어도 도와줄 생각을 안 한다.
자비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모자라서도 아니 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
둘째는 자본주의에서는 기업도 개인도 판매 경쟁에 내몰린다.
장래에 자본주의가 망한다면, 어쩌면 판매 경쟁이 자본주의를 망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첫째 문제점은 내가 양심(기독교 교리 선한 사마리아인 이웃 때문에 생긴 것이다)에 가책을 느끼게 했다.
둘째 문제점은 모든 지구인이 영향을 받으며,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이 문제점을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첨언하자면, 백화점에 걸린 옷들은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것들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보기는 하지만, 가질 수도 없고, 내 것이 되지도 않고, 내가 누릴 수도 없다.
예쁜 여자도, 멋진 여자도, 예쁜 옷도, 멋진 집도 대체로 '그림의 떡'이다.
실제로 먹을 수 있는 떡은 눈에 보이는 떡과 비교하면 적다.

2008년 9월에 다큐영화 [시대정신]을 보고 난 후 나는 다시 [빠빠라기]를 읽었다.
머리 속에 넣고 계속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모든 의문의 해답-화폐교환경제와 네오경제-을 얻었다.

영화 [매트릭스]에는 가상현실이 나온다.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인간전지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모피어스는 자신이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음을 알아챈 사람이었고,
네오는 그런 매트릭스를 깨고 리얼 월드로 사람들(인간전지)을 이끈다.
(네오경제학에서 네오는 바로 영화 주인공 네오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화폐교환경제에서 살고 있다.
화폐교환경제는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매트릭스다.
우리는 인간전지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내가 뭘 깨달았는지를 지금부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아주 옛날에 자급자족하던 시대가 있었다.
자급자족에서 물물교환하던 시대로 이행했을 것이다.
이런 이행은 분업이 생겼기 때문이다.
분업으로 사람들이 각자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함으로써 생산량이 증대하고,
생산물 중에서 여유분을 다른 물자와 교환하면,
자급자족할 때보다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물물교환은 불편하므로 화폐가 등장해서 교환을 편리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못쓰게 된다.
예를 들어 식량은 장기간의 축적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화폐는 축적이 가능하다.
식량을 대규모로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식량을 화폐로 교환하고,
화폐를 축적하였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물건과 교환한다.
나는 이것을 한 마디로 '부의 축적'이라고 부른다.
 '부의 축적'이 가능하면, 자급자족하고 남는 것을 모두 화폐로 바꾸어 축적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이 '부의 축적'이라는 가치관에 따라 살게 된다.
팔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팔아서 부를 축적하려고 하기 마련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구걸하는 사람을 만나면 돈을 적선할 수 있겠는가?
(자비심이 많아서 돈을 적선하는 사람이 부를 덜 축적하게 될 것이다.)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내가 번 돈은 내 것이고, 네가 번 돈은 네 것이다.
내가 번 돈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는 가치관이 만연한다.
누군가가 가난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건 내 책임은 아니라고 스스로 면제해 준다.
그 누군가가 부모든 형제든 조카이든 친척이든 친구이든 상관 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다 죽든 말든, 가난해서 학교도 못 다니든 말든 그건 우리나라 책임은 아니라고 스스로 면제해 준다.

우리는 이런 화폐경제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
화폐교환경제에서는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화폐와 교환하려면 판매 경쟁을 해야 한다.
왜냐 하면 다른 사람도 내가 생산한 물건과 같은 물건을 생산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내가 생산한 물건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잘 파는 것도 문제이다.
아무리 잘 생산해 봤자, 안 팔리면 생산비용만 날리게 되어 이미 획득한 부를 잃을 수도 있다.
화폐교환경제에서 가장 약한 입장에 놓이는 사람은 노동자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해고되고, 실업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결국에는 살아갈 수가 없다.
농부는 자기가 지은 농사를 먹고 근근이 살 수라도 있지만, 노동자는 그럴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가난한 나라를 방치하는 이유도 판매 경쟁에 있다.
삼성전자에는 돈도 있고 기술도 있고 인력도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이디오피아에 반도체공장과 텔레비전공장을 짓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반도체도 텔레비전도 팔리지 않는데,
가난한 나라에 생산시설을 지으면 그것은 생산비용만 날리는 꼴이 되고, 이것은 경영진의 귀책사유가 된다.
또 한국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해고하게 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핵심만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화폐교환경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부의 축적'이라는 가치관에 따라서 산다.
화폐교환경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판매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행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부의 축적'을 위해서이거나 '판매경쟁'을 위해서다.
좋은 대학에 가려고 죽어라 공부하는 것도, 야근을 하는 것도 다 화폐교환경제에서 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화폐교환경제에서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혹시 일시적이거나 장기적인 돕기 운동은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운동은 충분할 정도로 대규모가 되기 어렵고,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나라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 화폐교환경제는 대공황이나 불황이나 외환위기나 인플레이션 같은 경제위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때 대규모로 발생하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안전망이라는 것은 충분하지가 않다.
이 때 가난은 가난한 사람의 책임으로 떠넘겨질 것이고, 부자인 사람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노동자가 가난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좀 이상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다들 죽기살기로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형편이다.
의지가 부족하거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돈을 조금 벌고,
의지가 많거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번다.
그러나 많이 벌어 놔도 마음은 안심이 덜 되고, 가난에 대한 공포와 돈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이런 점에서 [빠빠라기]를 읽어 보면 투이아비의 비판이 칼날처럼 예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화폐교환경제에서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더 좋은 경제체제가 있다면, 우리는 그 경제체제로 이행해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화폐교환경제를 대신할 네오경제를 궁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오경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첫째는 화폐를 없애는 것이다. 화폐를 없애면 부의 축적이 불가능해진다.
둘째는 교환을 없애는 것이다. 교환을 없애면 생산은 있되 실업은 없다.

네오경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하나씩 올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