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은 도덕 감각(moral sense)을 다음과 같이 짧게 정의(?)한다.

 

* a moral sensesome capacity to distinguish between kind and cruel actions

(Just Babies: The Origins of Good and Evil, Paul Bloom, 5)

 

between right and wrong actions”라고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between kind and cruel actions”라고 쓴 이유를 모르겠다.

 

 

 

“도덕성”과 “이타성”을 동의어로 쓰겠다고 우긴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개념은 정의하기 나름이니까. 하지만 일상적인 맥락에서도 학술적인 맥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두 개념을 구분해서 쓰고 있다.

 

자기 자식이 입학할 수 있도록 대학 교수에게 뇌물을 먹이는 것은 이타적인 행위(친족 이타성)지만 도덕적인 행위는 아니다.

 

자신의 자식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이타적인 행위(복수를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잔인한 행위다)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용납된다고 생각한다.

 

 

 

유태인을 찾고 있는 나치에게 친절하게(kind) 유태인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것은 (적어도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옳은 일이 아니다.

 

나치 전범을 죽을 때까지 추적하는 것은 좀 잔인하다고(cruel)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의의 실현 즉 도덕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평범한 사람들도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의 차원 즉 이타성의 차원과 “옳은 일을 하는 것과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의 차원 즉 도덕성의 차원을 잘 구분한다. 가끔 말로 표현을 할 때에는 헷갈리게 쓸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많은 학자들이 두 개념을 혼동해서 쓰고 있는데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학술 용어는 일상 용어보다 더 엄밀하게 정의하고 구분해서 쓰는 것이 낫다.

 

 

 

여기에서 인용할 구절만 보면 블룸이 도덕성과 이타성을 동일시하는 것 같다. 이것이 경솔한 표현에 불과한지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