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후 - 고통과 희망의 보고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새로운 책 한권을 가지고 우리사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이책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발자취를 아쉬워하는 많은 대한민국의 양심들에게 고통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짙게 드리웠기 때문이다." "시대의 어둠을 보는자에게만 노무현이 보인다"

라는 서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열광적인 지지로 취임한 노무현 전대통령이 불과 몇년만에 국민들에게 거의 버림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낮은 지지율로 퇴임을 하게된 점과 그의 서거 이후 대다수 국민들이 보인 추모열기를 한국사회의 본질에 촛점을 맞춰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논객들도 짚어내지 못한 한국국민들이 보이는 이런 손바닥 뒤짚듯한 지지성향의 역동성을 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한국사회의 이면을 들춰보는 다소 낯선 방법으로 접근한다.

필자가 명색이 서평이란 형식으로 김대호 소장의 『노무현 이후』를 언급하고 있지만, 필자는 책 내용의 세세한 부분을 따로 정리해서 써내려갈 생각은 없다. 이미 이 책의 출판사인 동국대 출판부 홈페이지(링크)를 방문하면 책내용 소개와 여러 저명인사들의 서평, 그리고 목차까지 확인할 수 있다. (책 소개 링크)

그의 이번 저작은 참여정부 기간 내내 지속된 보수와 진보 양진영의 비합리적 비난과는 달리 적어도 논리와 자료를 두고 토론을 할 수 있는 마당을 제시했 다는 점에서 『노무현 이후』는 지금까지 참여정부나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그 어떤 평가서와도 다른 명백한 차별성을 보인다. 필자가 김대호 소장의 『노무현 이후』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의 해석이나 해법에 동의한다기 보다는 앞으로 이루어질 노무현 재평가의 기본 뼈대를 제공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각론에 가면 부정확한 통계나 자료 미비같은 미흡한 점이 있지만 전체 해석의 틀 자체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서재를 꾸미는데 튼튼하고 규격에 맞는 책장을 들여 놓은 격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의 눈에 김대호 소장은 그 책장에 일부는 격에 맞는 책을, 일부는 규격에 맞지 않는 책을 가져다 놓아 보인다. 물론 어떤 곳에는 아예 책이 없는 빈공간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책장이 마련된 이상 어떤 곳에 어떤 책을 꽂아 넣을지는 앞으로 우리의 몫일 것이고 합리적 토론의 영역이 될 것이다.

오늘 필자는 김대호 소장의 『노무현 이후』라는 책장에 꽂혔더라면 좋았을 몇가지 책을 골라 봤다.


(1) 비전 2030과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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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

김대호 소장은 '비전 2030'의 의의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직업 관료의 상상력과 문제의식'의 틀에 갇힌 '대중에게 꿈과 기대를 주지 못한 비전'이라 평가한 후 이런(?) 참여정부의 비전 2030과 '직업 관료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나아가 이들을 휘어잡아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제를 밀어붙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교한다. 그리고는 비전 2030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정치인이 자신의 대담한 상상력을 제도·정책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해 관료와 학자들을 틀어쥐고 끌어가지 않는 한, 직업 관료가 불러 모은 그 민간 전문가들은 관료들의 문장·자료 도우미 이상이 되기 어렵다." (출처: 김대호, '노무현 이후', 161쪽)

김대호 소장은 결국 자신의 두가지 주장... (1) 정치인이 관료와 학자들을 틀어쥐고 끌어가야한다는 점과 (2) 그일을 성공적으로 이룬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당시 보인 성과를 왜 국가 지도자가 되어서는 지속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연결점을 찾지 못한 채 글을 마무리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그 해답을 대통령의 자리는 국가 정책결정과정의 최정상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찾고 싶다. 대통령이란 국가 정책의 잡다한 요소를 모아 합리적 과정을 걸쳐 결과와 목표를 도출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돕는 일종의 총괄적 조율가 자리(orchestrating position)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자리란 철학과 비전은 제시하지만, 디테일에 대해서는 관료들의 제안에 오픈마인드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고 그럴때만이 관료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거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그의 전공분야인 건설사업에는 관료들이나 학자들을 들러리로 세워 오직 자신이 이미 작심한 내용을 집행하는 졸개 역할만 수행케해도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훨씬 더 다양한 이해집단이 관여하고 실제로 태반이 이명박 대통령의 전문분야가 아닌 국정전반에 있어서는 정책결정과정이 생략된 채 이명박 대통령이 독불장군식으로 북치고 장구치는 절름발이 정책결정 조언자 겸 최종 결정자 역할을 한 결과 이미 대한민국은 충분히 엉망진창의 국정 결과물만을 경험했을 뿐인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내에서 관찰되는 활발한 토론문화와 공무원들의 창의력과 열정을 격려한 청와대문화는 참여정부 시절 그 결과물이 현실을 100% 해결해 주고 있지 못한다고 해도 결코 폄하될 사항은 아니다. 김대호 소장에게 감히 아래와같은 반론을 해 보자. 이건 꼭 김대호 소장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이던 보수진영이던 지난 참여정부 시절의 각종 문제점을 지적한 모든 학자나 정치가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김대호 소장이 인용한 『노무현시대의 좌절』에서 비전 2030이 구체적인 성장 전략을 찾기 어렵다고 했지 않은가? 그럼 과연 현재 대한민국에서 관료던 학자던 아니면 경제연구소던... 그 누가 과연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성장전략의 정답을 가지고 있는가?"

누구나 공감하는 정답이 될 국가 성장전략이란 앞서 언급한 국가 정책결정과정중 오픈 마인드로 활발한 토론을 거치고, 매번 정책 결정의 집행 결과를 피드백하여 재수정과정과 재집행과정을 거쳐 조금씩 진화시켜 나가면서 얻어지는 것이지 영웅적 지도자나 정부가 절대적 진리의 정책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고나가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 줄 정답 정책이란 없는 거다.


(2) 사회적 갈등의 해결

지난 참여정부 시절 필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중에 하나가 노무현 전대통령이 검찰, 감사원, 국정원같은 국가권력의 핵심을 너무 일찍 풀어 놓았다는 것이다. 김대호 소장의 『노무현 이후』에서 어김없이 이런 주장이 등장한다.

이제 기본적인 민주주의 절차마저 퇴보하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이런 이야기를 논하는 것 자체가 한가하기 짝이 없는 노릇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김대호 소장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 한마디를 하고 싶다.

지난 시절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던 수많은 우리사회의 문제점들이 이제는 모두 이명박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소리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이명박 대통령만 물러나면... 마치 노무현 정부가 집권 말기에 처참하리만큼 시민들에게서 버림받았듯이 이명박 대통령만 물러나면 우리사회의 각종 문제들이 말끔히 해결이 될까? 우리사회의 갈등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김대호 소장의 지적처럼 노무현 정부 초창기에 검찰, 감사원, 국정원같은 권력기관에서 일찌감치 손을 떼어 버렸기 때문에 개혁의 동력이 힘을 잃은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면 집권하자마자 검찰, 감사원, 국정원은 물론 각종 편법, 탈법을 동원해서 KBS와 YTN를 포함한 각종 언론사를 전면에 세워 자신들의 방법과 방향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리려는 이명박식 자칭 개혁(?)에 동력이 있는가? 과연 그런식으로 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권력 기관과 언론사를 통해 밀어붙이는 개혁(?)이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는가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공권력 드라이브를 통해 지출하고 있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가 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공권력을 앞세워 지금 이명박 정부가 밀어 붙이듯 개혁을 이루어 나갔다면 과연 어떤 식의 저항과 사회적 비용이 동반되었을까? 과연 노무현 전대통령은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처럼 권력을 휘두르면 얻어질 단기간의 효율증대에 대한 인식이 없이 정말 순진무구하게 인간의 선의만에 기대었을까?

박정희식의 강력한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참여정부 초창기에도 그런 목소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청와대 집무 시작 6개월만에 SK 정치자금문제가 터졌다. 물론 여기에는 손길승 회장이나 최태원 회장들도 엮여있었지만 민주당 전고문 권노갑의원도 연루되어 있었다. 더불어 최도술, 안희정같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최측근들도 걸려있었고 말이다. 재계는 재계대로 뒤가 구린 점이 있었으니 선제적 방어활동에 나서서 특별 간담회까지 열었다. 2003년 9월 16일 신라호텔에서 모여 4시간이 넘는 긴 회의를 가지며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없는 것이 아쉽다"라는 발언까지 털어냈다. 쉽게 얘기해서 대놓고 당시 신생 노무현 정부를 까댔던 거다.

9월 22일 노무현 대통령과 손길승 SK회장은 '제2차 경제 민생 점검 회의'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 노무현 전대통령은 아주 중요한 발언을 한다.

"전경련이 모인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을 이야기 했다는데, 그 때 어느 기업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도 제게 보고서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그 날 저녁으로 보고서가 올라왔을 것이고, 국세청에서는 세무조사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기업이나 정부나 옛날 방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게임의 룰을 가지고 갑시다. 결정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부입니다. 정부가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자꾸 박정희 대통령식으로 하라, 합니다. 그 식으로 하자면, 오늘부터 은행 대출 받으려면 나한테 와서 결재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세청 가지고 뒷조사도 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업도 권력 앞에 가서 무릎 꿇고 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중략)... 룰로 승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 고충을 이해하고 좀 도와주십시오." (출처: 이진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235쪽)

당시 발언을 보면 노무현 전대통령은 권력의 힘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대통령 손에서 권력 기관을 놓아주는 것은 개혁의 동력을 놓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회를 변혁시킬 첫 걸음인 것이다. 시간이 길게 걸릴지라도 그 첫 걸음이 없으면 아예 변혁은 시작조차 될 수 없는거니까.


(3) 검찰

김대호 소장은 또한 검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다.

"검찰은 애초부터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면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독점 권력이었다. 따라서 대통령의 통제가 느슨해지자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버렸다. ...(중략)... 요컨대 검찰을 포함한 사법 권력은 정치적 중립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기관 간의 견제와 민주적통제가 문제였다." (출처: 김대호, '노무현 이후', 161쪽)

이 문장은 김대호 소장을 위시해서 수 많은 진보인사들, 개혁인사들이 참여정부 초창기 장탄식을 하던 내용이다. 그럼 노무현 전대통령이 이와 관련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2003년 3월 9일 평검사들과의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살펴보자.

당시 평검사들은 김대호 소장이 지적한대로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 (라고 쓰고 자신들에게 권력을 집중하기 위해서 라고 읽는다) 법무부 장관이 가지고 있던 검사들에 대한 인사제청권(자료링크)을 검찰총장에게 이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대해서 노무현 전대통령은 "검찰 인사권은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에게 주어진 합법적인 권한"이라며 그 요구를 거절했고 "권력기관에 대한 문민통제 때문에 법무부장관을 두는데 그동안 한국에는 통제를 받아야 될 검찰이 법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라고까지 비판을 했다. (출처)

결국 검찰의 수사권 독립은 존중한 채 검찰 권력의 문민통제는 법무부를 통한 인사권을 통해 제어한다는 제도적 장치를 고수한 것이다.

이제 다시 김대호 소장과 수 많은 진보, 개혁인사들에게 반문을 하자. 이런 제도적 통제장치 이외에 어떤 통제를 원하는 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면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다시 박정희 시절로 돌아가 대통령이 일선 검사의 수사에 압력을 가하라는 것인가?

그럼 무슨 논리로 촛불재판에 압력을 가한 신영철 대법관의 행동을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진보신당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신 대법관이 판결이 아니라) 판사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대고, 그것도 모자라 모아놓고 훈계를 하는 행위는 판사들이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것을 막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중략)... 권력의 요구에 따라 판결하도록 종용하는 것...

신영철 대법관의 당시 행동을 비판적으로 본다면 제왕적 대통령을 그리워하며 제도적 검찰 통제가 아닌 그 이상의 통제를 그리워하는 행동은 자가당착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4) 부동산 통계 자료

참여정부 기간 부동산 정책은 진보, 보수 양진영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았다. 그런데 논리는 주로 진보진영에서 얻어오고 자료는 주로 보수진영의 자료를 서로 나누어쓰는 것을 보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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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김대호 소장의 『노무현 이후』 91쪽의 그림 1-5는 매일경제신문의 2007년 7월 25일 기사를 근거로 삼고 있다. 국가별 개인자산 포트폴리오이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시민재산중에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등락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크게 보면 이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한 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근거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매경 기사가 주장하는 한국 시민들의 재산중에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 89.8%의 진실을 살펴보자. 일본이나 미국이 60%대 인데 한국은 거의 90%에 가까운 수치이다. 이 수치를 보면 과연.... 하며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할 거다.

그런데 이 89.8%라는 수치는 대한상공회의소가 2006년에 발표한 자료(링크) 로서 전국 7개 대도시의 7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이다. 일단 표본이 700여 가구라는 점도 문제지만 대도시 가구만을 표본으로 삼은 것도 문제다. 이런 식의 자료 인용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 여부와 상관없이 학문적 양심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자료이다. 왜냐하면 이미 2007년 통계청이 전국 9300여 가구를 설문조사한 보다 신뢰성이 높은 자료(링크)가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07년 자료를 사용하면 부동산 비중은 76.8%이고 기타 부동산 관련 자산을 모두 합쳐도 81% 정도다.

그리고 64.3%라는 일본의 경우도 살펴보자. 일본 내무성의 '2004년 가계 소득 및 지출 설문조사 결과'를 직접 찾아 봤다. (링크) 이 링크를 따라가면 엑셀로 차트가 나온다. 여기에 보면 일본 가계의 자산총액에서 금융자산과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나온다. 부동산 비중은 69.4%이고 기타 부동산을 포함한 실물자산을 모두 합치면 73.3%로 나온다.

이제 우리나라 시민재산중에 부동산 비중을 다른 나라들과 조금은 더 합리적으로 비교해 보도록 하자.

전세계 각국의 가계자산 비중 통계를 담고 있는 'The World Distribution of Household Wealth' (링크) 가 가장 신뢰할만 하다. 실물자산의 비중은 적게는 미국의 58%에서 많게는 인도네시아의 97%까지 있다. 우리나라의 실물자산 비중 자료를 김준경 교수의 보고서 값인 83%로 잡고 한번 도표를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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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한국은 금융자산에 비해 실물자산의 비중이 높은 나라이긴 하다. 하지만 바로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국가보다 2~3배 수준이 될 정도로 높지는 않다. 고만고만한 수준이란 말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핀란드나 네델란드 혹은 스페인 정도가 되겠다.


참여정부 기간중에 OECD 평균 주택가격 상승에 비해 절반정도만 오른 한국의 주택가격 인상폭의 의미는 한국 가계자산 비중때문에 그 의미가 상쇄될 정도는 아니었다.

김대호 소장님께 부탁이 있는데, 개정 증보판에는 부디 매경 기사를 인용한 저 자료는 통계청의 자료로 대체해 주시기를 바란다.


(5) 결론

필자 역시 참여정부에 대한 생각들이 파편적이었다. 두리뭉실하게 감만을 잡고 있는 터에 김대호 소장의 책을 손에 잡고 생각들을 하나씩 꿰맞춰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김대호 소장의 우리사회 분석과 해결책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면들이 많다. 비록 그의 시도가 분명히 공정한 틀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그의 이번 저서는 친노이던 반노이던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그 무엇이던 적어도 그의 책은 노무현 전대통령과 그의 정부에 대한 객관적 판단 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아주 기초적인 민주적 권리마저 염려해야 되는 시기에 살고 있다. 김대호 소장이 책중에 언급한 제왕적 대통령의 재림을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노무현 전대통령을 평가하는 작업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질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대통령 시기에서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최근 시민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반이명박 분위기는 지난 시절 반노무현 분위기의 또다른 형태로 지나가고 말지도 모른다.

이미 노무현 전대통령은 자신의 임기중에 자신이 이룰 일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싸울 상대가 분명하지 않다.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영웅이 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죽을 각오가 영웅을 만든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이미 민주화 투쟁을 하기엔 너무 진보했다. 내가 싸울 상대는 무형의 것이다. 그것은 제도이다. 정책이다.  정책의 투명성, 제도의 합리화가 내 싸움의 상대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것들은 내 시대 내게 빛과 영광을 주지 못할 것이다." (출처: 이진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318쪽)

아직도 노무현 시대의 정신을 이해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를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