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는 상업성에 충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볼 만한 영화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이 지상 목표다.

 

할리우드 영화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지루하지 않으며, 잘 생긴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리고 인과응보가 실현된다. 이런 특성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도록 만든다.

 

 

 

영화학도라면 다를 수도 있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나 <노스텔지아> 같은 영화를 보면 대중은 지루해한다. 그런 영화는 인기가 없다. 인간은 지루함을 싫어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듯하다.

 

잘 생긴 배우가 나오는 영화나 광고가 인기가 있다. 편의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가 아주 예쁘다면 장사가 잘 된다. 인간은 잘 생긴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듯하다. 심지어 갓난아기도 잘 생긴 사람을 더 오래 쳐다본다.

 

 

 

인간은 인과응보를 좋아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일까?

 

인간에게는 성적 충동과 성적 쾌감이 있다. 이것은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인간 본성인 듯하다. 성적 충동 기제와 성적 쾌감 기제가 있었던 우리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 더 잘 번식했을 것이다. 성교가 번식에서 매우 중대한 단계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설명은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인다.

 

인간에게는 “인과응보 충동”과 “인과응보 쾌감”이 있어 보인다. 즉 인간은 못된 짓을 한 악당이 된통 당하기를 원하며, 그런 장면을 보면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이 보상을 받기를 원하며, 그런 장면을 보면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또한 악당이 보상을 받고, 선한 사람이 된통 당하면 짜증을 내는 것 같다.

 

 

 

Morality fascinates us. The stories we enjoy the most, whether fictional (as in novels, television shows, and movies) or real (as in journalism and historical accounts), are tales of good and evil. We want the good guys to be rewarded—and we really want to see the bad guys suffer.

(Just Babies: The Origins of Good and Evil, Paul Bloom, 2)

 

 

 

인간에게는 식욕이 있으며 먹을 때 쾌감이나 불쾌감을 느낀다. 식욕이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본능이라는 점은 뻔해 보인다. 식욕이 있어야 먹고, 먹어야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에너지를 얻어야 생존할 수 있고, 생존해야 번식할 수 있다.

 

인간은 독을 품은 식물이나 썩은 고기(우리에게 해로운 세균이 많다)를 먹을 때에는 불쾌감을 느끼고 우리에게 필요한 당분, 지방, 소금 등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는 쾌감을 느낀다. 이런 쾌감이나 불쾌감은 미래(1초 후 또는 1주일 후)의 행동에 적응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아주 쓴 음식을 먹으면 당장 먹기를 그만 두고, 나중에 그 음식을 보더라도 웬만해서는 먹지 않는다. 맛에 따른 쾌감과 불쾌감이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본능이라는 점도 뻔해 보인다.

 

물론 뻔해 보이는 것을 확실히 입증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며 여기에서 제시한 것보다 더 상세하고 엄밀한 가설을 만들어서 검증해야 할 것이다.

 

 

 

성욕과 성적 쾌감(또는 불쾌감)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교를 해야 번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에 우리 조상들에게 성욕은 번식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여자는 강간을 당할 때 불쾌감(넓은 의미의 불쾌감에는 고통도 포함된다)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발적으로 성교를 할 때에는 쾌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런 쾌감과 불쾌감은 미래의 행동에 적응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강간에 따르는 불쾌감은 당장 강간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하거나 미래에 강간 당할 상황을 피하도록 영향을 끼칠 것이며 여자는 강간을 피함으로써 번식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인과응보 충동과 인과응보 쾌감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과응보의 경우 식욕이나 성욕만큼 뻔해 보이는 “진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폴 블룸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 글은 독서 노트다. 블룸이 이 책에서 이와 관련하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끝까지 기다려볼 생각이다.

 

 

 

만약 인과응보와 관련된 본능들이 진화했다면 인과응보 충동과 인과응보 쾌감은 인류 보편적인 패턴을 보일 것이다. 즉 인간이 사는 곳 어디에서나 악당이 된통 당하는 장면을 담은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이 고소해할 것이다. 악당이 된통 당하는 장면을 보면 짜증을 내고, 선한 사람이 된통 당하는 장면을 보면 고소해하는 문화권은 성립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인과응보와 관련하여 인류가 보편적인 패턴을 보이는지 여부를 다룬 논문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지식에 비추어 볼 때 이것도 인류 보편적인 패턴을 보이는 것 같다.

 

 

 

만약 내 추정대로 인류 보편적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냥 우연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세상에 문화권이 너무나 많다.

 

만약 그것이 자연 선택의 산물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인류 보편적인 패턴이 나타나는 것일까? 진화 심리학의 “인과응보 적응 가설”에 맞설 대안 가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과응보와 관련된 적응 가설의 경우 “그럴 듯한 진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도대체 인과응보 충동과 인과응보 쾌감이 자신의 번식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때 집단 선택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인과응보 충동과 인과응보 쾌감으로 무장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더 번성할 것이다. 하지만 집단 선택 모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진화 생물학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적응 가설이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다고 하더라도 진화 심리학자들이 아주 풀이 죽은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대안 가설을 만드는 것도 아주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적응 가설에 의존하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인과응보와 관련된 인류 보편적인 패턴을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 윤리학에서 다루는 문제는 식욕이나 성욕 문제보다는 훨씬 어려워 보인다. 어렵기 때문에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