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사회주의 사회 또는 공산주의 사회는 쓰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를 때가 많다. 어떤 사람은 두 용어를 동의어로 쓰고 어떤 사람은 두 용어를 구분한다. 두 용어를 구분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에게 사회주의 사회는 북유럽식 복지 국가를 뜻하고 공산주의 사회는 구소련식 국가를 뜻한다. 어떤 사람에게 사회주의 사회는 노동자 혁명 직후의 사회를 뜻하고 공산주의 사회는 혁명 이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의 사회를 뜻한다.

 

공산주의 사회가 어떤 사람에게는 구소련식의 현실 공산주의를 뜻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세상을 뜻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무계급 사회를 뜻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완전 평등 사회를 뜻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된 사회를 뜻한다.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 체제와 상상할 수 있는 사회 체제는 너무나 다양한 반면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라는 단어와 어울려 보이는 사회에 대해 엄청나게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상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불평등한 사회를 상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장 경제를 상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배급 경제를 상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세상을 상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못하는 세상을 상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극히 민주적인 세상을 상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지독한 독재 국가를 상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무정부 상태를 상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현재와 비슷한 국가 권력을 상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어느 정도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포기한 것은 이것이 진정한 공산주의다라는 식의 이야기다. 세상에 진정한 공산주의란 없다. 자신이 원하는 공산주의의 상이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공산주의의 상을 그릴 것이다. 따라서 다른 공산주의자들의 생각과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다를 수 있다. 이 글에서 공산주의덕하가 원하는 공산주의를 뜻하는 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념과 체제의 하이퍼스페이스」에서 공산주의의 전체적인 상을 개략적으로 그렸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98

 

이 글에서는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상당히 상세히 공산주의 사회의 상을 그릴 것이다.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것은 혁명 이후에 미래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공산주의자는 자신이 공산주의 사회라는 단어로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소련이나 북조선 같은 사회를 만들자고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또한 공산주의가 불가능하거나 자본주의만도 못하다는 비판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나의 공산주의 사회는 소박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온갖 비판에 응답하기 위해 선천성을 거의 완전히 부정하는 길을 택할 때가 많다.

 

그들은 선천적 지능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전문 노동자과 단순 노동자 사이의 장벽이 깨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노동이 누구에게나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임금을 주지 않아도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일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세상 일할 놈은 일하고 놀고 싶은 놈은 놀아도 누구나 필요하면 가져다 쓰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선천적 인간 본성이 식욕, 성욕, 학습 메커니즘 등만 있다면 교육만 잘 시키면 사람들을 원하는 대로 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겨운 단순 노동도 기쁨에 차서 열심히 하는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 속은 참 편할 것이다. 만약 지위에 대한 욕구, 자원에 대한 욕심 등이 학습의 산물이라면 교육만 잘 시키면 그런 욕심이 없는 사람을 주조해낼 수 있을 것이며 권력 독점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것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개인 사이의 선천적 차이를 연구하는 행동 유전학과 선천적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진화 심리학에 그렇게도 적대적인 이유다. 만약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의 연구 결과가 옳다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희망에 타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에 호의적이다. 나는 극단적인 선천론자에 가깝다. 나는 인종간 선천적 차이, 남녀간 선천적 차이, 개인간 선천적 차이, 인간 본성의 사악한 측면 등과 같은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내가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가 다른 공산주의자들의 것보다 상당히 소박해진 것 같다.

 

나는 전문 노동자와 단순 노동자 사이의 분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능의 선천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사회를 글자 그대로 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나는 임금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정부주의자들처럼 국가를 처음부터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처럼 국가가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현재의 가장 민주적인 국가들보다 더 민주적인 국가를 원할 뿐이다.

 

나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평등한 사회도 빈부격차가 거의 없는 사회도 꿈꾸지 않는다. 내가 상상하는 공산주의 사회에는 상당한 빈부격차가 있다. 빈부격차는 임금 제도를 유지하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직종에 따라 시간당 임금이 다를 것이며,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이 다르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박한 꿈이 공산주의라고 불릴 자격이 있느냐고 누가 핀잔을 준다면 나는 굳이 반박할 생각이 없다. 나는 내가 그리는 사회를 되도록 상세히 기술할 생각이며 그것을 전체적으로 이해해주면 그만이다. 그것을 공산주의로 부르든 수정 공산주의로 부르든 소박한 공산주의로 부르든 부르주아적 공산주의로 부르든 혼합 경제로 부르든 또는 다른 식으로 부르든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지 소득: 이윤, 임금, 복지

 

자본주의 사회에는 세 가지 종류의 소득이 있다.

 

첫째, 이윤 소득 또는 자본 소득. 기업이 상품을 판매해서 얻는 이윤, 예금 이자, 임대료, 주주가 받는 배당금, 부동산 시세 차익, 증권 시세 차익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윤 소득은 부자들의 불로소득이다. 이윤 소득의 양은 노동이 아니라 자본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둘째, 임금 소득. 노동을 해서 받는 임금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 노동 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복지 소득.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또는 전국민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를 말한다. 복지 소득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불로소득이다. 복지 제도는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 아무도 입양하지 않으려는 고아가 있을 때 국가가 너를 돌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굶어 죽어라라고 말하는 법은 없다. 고아원이 지극히 불량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국가는 고아원을 만든다. 물론 복지 소득의 크기는 국가마다 매우 다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윤 소득이 사라지며, 임금 소득은 유지되며, 복지 소득은 자본주의에 비해 확장된다. 내가 상당한 빈부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이윤 제도가 폐지되기 때문이다. 이윤 제도가 폐지되기 때문에 사소한 수준을 넘는 개인적 영업은 금지된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공산주의 혁명 이후 부르주아적 권리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 때 레닌이 염두에 둔 것이 임금 소득이었던 것 같다. 레닌은 공산주의가 무르익으면 임금 소득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쓴다는 원칙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 나는 임금 소득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가 위에서 부르주아적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201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