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두 편의 영화, 그 안의 정치성 2

                 -  <포레스트 검프>와 <아이 앰 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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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라이즈 비니스..... 공화당 정치선동물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


1. 당신들은 정말 불행한 사람들이군요!

미몹에서 가족에 대한 담론을 나누던 중 누군가가 한 말이다. “가족에 대해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니..... .당신들은 불행한사람들이군요. 불쌍합니다.”

왜 이 이야기를 꺼내냐고? 바로 이 시각이 ‘보수주의’의 한 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가족주의’ 혹은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비판해? 왜? 너네들의 가족이 비정상이기 때문이겠지? 불쌍한 것들.........


영화 <포레스트검프>는 이런 바로 이런 시각으로 당대의 진보정치운동을 바라본다. 그들은 ‘정상인’이 아니다. 그들은 트라우마를 가진 채 자신의 정신적 상처를 사회에 투사하는 환자들이다. 그들은 ‘치료’가 필요한 무리들인데 남들도 정신병자로 만들고 싶어 ‘정치’를 한다.


급진흑인운동단체인 블랙팬더의 리더를 보자. 그는 반사회적성격장애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가 가진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분노’이지 사회적인 공분이 아니다. 그의 뇌는 50%의 증오, 30%의 지배욕, 20%의 열등감으로 구성되어 있을뿐 동포에 대한 애정이나 동포들이 겪은 차별과 인권유린에 대한 슬픔과 아픔 따위는 없다.


영화의 히로인인 제니를 보자. 제니는 명문대생이다. 그런데 왜 누드모델이 되고 밤무대 누드가수가 되었다가 반전운동을 벌이는 히피가 되었을까? 정말로 전쟁을 막고싶어서?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으로 죽어가는 미국과 베트남의 희생자들이 불쌍해서? 원, 천만의 말씀을. 인간은 절대로 그런 이유로 운동을 벌이는 생물이 아닌 걸.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을 위해서만 움직일 뿐이지 그런 고귀한 동기 따위는 있을 수 없어. 이 영화의 나래이터가 가만히 속삭이는 말들이다.


제니가 ‘방황’하는 이유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상처 때문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이짓 저짓을 하는 것 뿐이다. 그 이짓 저짓 중 자신의 분노를 풀만한 대상이 되는 것이 반전운동이다.


정확하게 이것이 영화 <포레스트검프>가 진보세력을 보는 관점이다. 쟤네들 참 불쌍한 애들이다. 그러니 쟤네들이 하는 이야기, 귀 기울이지 마라. 너네도 불쌍해 진다.



2. 어머니는 위대하다!

이렇게 보수적인 정치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이 영화 내에서 성적인 부분은 또 상당히 관대하다. 제니가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는 것도 긍정적으로 그리고 포레스트의 어머니가 포레스트를 위해서 선생님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니.

그러나 이 두 부분도 실상은 보수적인 정치이데올로기인 ‘위대한 모성’을 설파하는 것뿐이다. 어릴 적 상처를 극복못해서 이짓 저짓하며 방황하는 제니가 '철'든 것은 포레스트의 사랑때문이기도 했지만 모성에 눈뜨면서 철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그녀에게 아이가 없었다면 여전히 그녀는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포레스트의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에게 삶에 관한 아름다운 아포리즘을 새겨넣을 만큼 지혜로우면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몸이라도 바칠 수 있는 헌신적인 모성을 가진 엄마다. 그런 엄마가 키운 아들이니까 선천적으로 지능이 모자라도 저렇게 위대한 미국시민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제발 이것 저것 해보겠다고 설치지 말고 아이나 똑바로 키워라. 아이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기울여라. 그러면 그 아이가 비록 조금 모자랄지라도 포레스트처럼 위대한 미국시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3.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 해!

<아이앰 샘>은 <포레스트검프>의 후편이라고 이야기 했다. 차이가 있다면 아이의 성별이 바뀌었고 아버지인 샘이 포레스트보다는 경제적인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정도. 문제는 바보인 아버지가 똑똑한 아이를 키울 수 있냐는 것. 과연 포레스트는 자신의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말해보겠다. 아니다. 보호자의 지능이 보통이하이고 그가 다른 보호자 없이 혼자서 아동을 키우는 상황은 가능하면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딸아이를 키우는 경우라면 성적학대가 일어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가 지역 사회복지사라면 절대로 그런 상황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앰 샘>에서는 반대의 결론을 내린다. 부모가 아닌 사람은 절대로 아이를 부모처럼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다. 대안가족? 그런 건 이상론자들의 헛소리일 뿐이다. 아이는 부모가, 양부모 말고 친부모가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복지예산도 줄일 수 있고 아이도 건강하게 자란다. 아..... 복지예산이 먼저 나온 것은 실수다.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복지예산이 줄어들고 세금도 줄일 수 있다는 사이트 이펙트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4. 거대담론? 그런 거 가짜라구!

이 두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쯤 되겠다. 인간은 각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다. 그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가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시스템을 만든다. 각자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면 남머지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해준다. 신자유주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상의 기반은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동기 이외의 것은 모두가 거짓이고 가짜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런 위선은 진실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영화의 나래이터는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거대담론? 이데올로기? 그런 건 모두가 가짜야. 그게 가짜라는 것은 바보도 아는 사실이야. 그런데 바보가 아닌 너희들은 왜 모르지? 그건 너희들이 바보만큼도 못되기 때문이야. 바보가 왜 아냐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야. 바보라도 자신의 가족은 사랑할 줄 알거든.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거든. 그럼 알게되는 거야.


이 두영화는 인간의 본성이 지극히 아름답고 선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캐릭터를 배치하여 설득력을 얻는다. 제니는 저럴만하고 포레스트 역시 그럴만하며 샘도 충분히 저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두 영화는 완전한 판타지다. 그 판타지를 벗겨보면 추악한 이데올로기가 드러난다. 인간은 모두가 이기적인 존재이고 그 이기적인 존재가 타인을 위한 운동을 하거나 정치이데올로기를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강변한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허위거나 위선에 속한 것이라고 외친다. 바보 포레스트의 가면 뒤에는 부시일가와 럼스펠트의 얼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두 영화는 철저하게 미국 공화당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있다. 미덕을 이야기하면서 추악함을 전달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미덕의 책”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이에게 교육시킬 목적으로 공화당대변인이 쓴 이 책이 실제로 전달하는 것은 허위와 거짓이다. 이 책에 나오는 신화를 한꺼풀만 벗겨보면 온갖 추잡한 현실들이 터져 나온다.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난 공화당인사들이 덕과 정의를 외치는 것을 볼 때마다 “What lies beneath"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온갖 미사여구들 아래에 놓여 있는 것. 그것은 시커먼 정치적 욕망과 인간에 대한 불신이다.



5. 아름다움, 그 균형점에 대하여

가장 아름다운 두 영화가 이런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름다운 장면은 아름다운 것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속에 놓인 추악함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모든 것을 정치적인 눈으로 본다면 메마른 삶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정치적 의도를 볼 수 없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삶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어쩌면 이퀄리브리엄일지도 모른다. 삶의 아름다운 국면을 즐길 것. 그러나 아름다움, 그 이면의 것도 놓치지 말 것.


정치과잉이 된다는 것은 삶의 여러 국면을 놓치며 산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맹이 된다면 삶 그 자체가 흔들릴 지도 모른다.


적절한 균형,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