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핵 위기를 돌아보며

sonnet님이 쓴 긴 글을 요약하자면 결국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도를 지니지 않았으나, 노무현 정부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미국과의 관계를 틀어버렸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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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그렇다면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튀는 행동이 "부시 행정부의 무모하리만치 과격한 대북외교정책" 때문에 정당화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한 번 돌이켜 보기로 하자.

북한정책에 관한 한 새 부시 행정부에서 아무리 온건한 인사라도 민주당 행정부에 비하면 훨씬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출범할 당시, 이들을 포함한 어느 불카누스도 북한과 맺은 협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월포위츠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1994년 제네바 합의의 폐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단 한마디로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는 새 행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대결정책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감세, 미사일 방어, 중동 평화 문제 등 새 행정부가 추진할 다른 목표들이 있다며, “우리는 (북한보다) 더 중요한 일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불카누스들의 새 독트린이 이라크와 달리 북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북한은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남한을 공격해 서울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선제공격이 가능한 국가가 아니었다. 북한은 또한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시범 프로젝트의 대상 국가가 될 수도 없었다. 일부 불카누스들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 이라크를 아랍의 정치문화와 중동 전체의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 모델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 이미 일부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있는 상태였고, 나머지들도 북한의 뒤를 따르지는 않을 국가들이었다. 이라크는 정세가 불안정한 지역의 중심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그것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라였지만, 북한은 급성장하는 지역의 한가운데 놓여 있지만 고립돼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 불카누스들은 북한문제만 만나면 미봉책으로 대처해왔다. 이들은 세계 다른 지역의 현안들에 대해서는 대담한 접근법과 신속하고 항구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면서도,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심지어 위험한 핵무기 프로그램이 더욱 진전될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기다리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가 결국 북한 지도자 김정일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압력을 넣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은 또 북한의 절망적인 경제문제가 북한을 더욱 타협적으로 나오게 만들 날이 오기를 갈망했다. 일부 불카누스들은 나아가 북한의 붕괴와 정권교체를 희망했다.

부시 행정부는 긴급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시간을 끌었다. 국무장관 파월은 북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상투어가 돼버린 “위기가 아니다”는 말을 되뇌었다. 북한이 핵 원자로를 재가동했을 때도 관리들은 “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이 국제사찰단을 추방했을 때도, 핵무기 개발을 위해 다시 한 번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도 위기가 아니었다.

하나의 그룹으로서 불카누스들은 자신들의 경력 내내 군사력에 집착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라크 문제와는 달리 군사적 해법이 유용하지 않을 것 같은 나라였다. 부시 행정부는 결코 찾을 수 없는 해결책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럼스펠드는 “북한은 위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종류의 위협이다. 적어도 지금은 외교를 통해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 처리할 수 있는 위협이다.”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행동을 준비하고, 평양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해 나갈 무렵인 2002년 말과 2003년 초, 미국의 불확실하고 임시방편적인 북한 정책은 럼스펠드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는 말로 요약됐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외교관들의 손에 맡겨 놓고 있었다.[10]

이처럼 미국은 북한보다 더 우선순위가 높은 나라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북한은 일단 전쟁 이외의 방법으로 상대하겠다는 의도를 여러 모로 드러내고 있었다.

미국 측의 분위기는 두 번의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잘 드러난다.
2002년에 있었던 김대중-부시 정상회담을 보자.

김대중이 레이건 대통령의 이야기를 한 대목에서 부시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북한을 침략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 부시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대중이 미국의 역사를 상기시켜 주었다”며 레이건에 대해 언급한 사실을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우리의 태세는 순수하게 방어적이다. 그 이유는 위협에 취약한 DMZ의 존재에 있다”고 덧붙였다. …

다음날 아침 한국의 언론은 일제히 “북한을 침략할 의사가 없다”는 부시의 발언을 톱뉴스로 다뤘다. 그 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부시는 “그런 게 뉴스가 되나”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11]


2003년의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측의 반응은 비슷했다.

한국 측은 공동 성명에 군사 옵션을 넣지 않은 것이 외교적 승리라고 선전했으나 미국 측은 이런 반응에 의아해 했다. 미국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당시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군사 옵션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노무현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미국은 대북 군사 공격을 하려 한다’고 심각하게 믿고 있었다. 청와대 직원들이 노무현을 그렇게 세뇌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12]

물론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북한 공격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한 것은 분명하다. 원한다면 그 의도까지는 순수했다고 평가[13]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건 사실 워싱턴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설레발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설레발 때문에 한미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는 부시나 네오콘, 공화당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당 측에서도 동맹의 미래를 우려하는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폭에 대해서는 김영삼이나 김대중도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미국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서 미국을 안심시키며 일했다. 적어도 해외에 가서 미국은 중국과 한국의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한다든가 하는 식은 아니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무현은 윤영관을 내치고 이종석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과거의 한국 정부들과는 전혀 다른 한미관계를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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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et님이 간과하는 부분은, 저와 같은 언사들은 언론에 의해 겉으로 공개된 레토릭들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부시라도 전쟁 직전이 아닌 이상 언론에 대놓고 북한을 쓰러뜨리겠다고 공언을 하지는 않는다. 그 당시 부시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는 아래의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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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의 한반도 경험부족은 부시 대통령이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에게 처음 전화했을 때 분명히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은 신중한 태도로 세계적인 지도자들, 특히 미국의 이웃 국가인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우리의 동맹국들에게 우선적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한국은 이 점에서 분명히 앞 순서였다. 전화 통화를 준비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대화할 때 사용할 짧은 보고서가 대통령을 위해 준비되었다. 거기에는 동맹강화와 대북 정책에서의 공동 노력의 중요성에 관한 발언 요점이 담겨 있었다. 보고서는 국가안보 보좌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포용할 필요성을 대통령에게 말하기 시작하자, 대통령은 손으로 전화기의 송화구를 막으며 "이 자가 누구야? 이렇게 순진하다니 믿을 수 없군(Who is this guy? I can't believe how naive he is!)"이라고 말했다.

통화는 백악관의 사저에 있는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전화가 끝날 때 쯤에는 해들리와 전화 연결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는지를 관리하는 상황실 소속 공군 대령,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사저의 몇몇 방을 쫓아다녀야 했다. 짧게 돌아다닌 끝에, 우리는 영부인 실로 들어갔다. 대통령은 먼저 '해들리', '전화 담당자(Telephone boy)'라고 부르면서 우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내게 붙여질 별명이 두려워 스스로 내가 누군지 소개했다. 그날 저녁에 대통령에게 '이 자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더 심층적인 보고서를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밤 11시 경에 백악관으로 돌아가서 보고서를 썼다. 국가안보 보좌관이 다음 날 출근해서 바로 볼 수 있도록 그녀의 책상에 보고서를 올려놓았다. 그 보고서에는 김대중의 배경,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야당에서의 그의 역할, 투옥, 한국을 이끌기 위해 준비했던 30년의 세월, 그리고 그의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 접촉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보고서로도 대통령의 견해를 바꾸지는 못했다.

봅 우드워드는 그의 책 [부시는 전쟁 중]의 에필로그에서 2002년 8월 20일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그리고 있다. 그때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털어놓았다. 그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범위를 안 이후였지만, 그러한 우려는 대통령의 말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북한 얘기 좀 합시다." 대통령은 상체를 내민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북한 지도자에 대해 말할 때에는 자리에서 껑충 뛰어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격앙되어 있었다. "나는 김정일을 증오합니다." 부시는 허공에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나는 이 자에게 본능적인 반발심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 백성들을 굶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 범죄수용소에 대한 첩보를 봤소. 엄청난 규모요. 이 큰 시설들을 이용해 가족을 갈라놓고 사람들을 고문합니다. 나는 질렸습니다. ...... 나는 바보가 아니오." 대통령은 계속 말했다.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시도할 경우, 그러니까 이 자가 쓰러질 경우 국민들이 져야 하는 재정 부담이 너무 클 거라는 거요. 그럼 누가 이 자들을 챙겨야 하냐? 글쎄요, 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유를 믿든가, 그래서 자유롭게 인간답게 살든가, 아니면 그렇지 않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거지요."

대통령이 우드워드와 나눈 대화는 명확했다. 대통령이 그에게 대통령의 자격으로 강조한, '북한은 나쁘다'는 기본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기본적인 생각은 사담 후세인과 김정일이 똑같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들의 인민을 고문하는 실패한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런 서술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책 결정에서는 부적절한 기본 가정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책이 김정일을 타도하는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말이 기록되고 있음을 알고 북한의 정권교체가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선언한 것을 취소했다. 다 말해놓고서, 그는 만약 북한이 붕괴한다면 한국이 부담해야 할 엄청난 비용에 관련된 보고를 이해하게 되었고,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했다고 털어놓았다.
찰스 프리처드, [실패한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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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읽어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사항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부시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그가 어떤 인물인지조차 몰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점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 김정일에 대한 그의 이해 수준은 '백성을 굶기는 나쁜놈'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또한 sonnet님은 불카누스라는 그룹이 주로 북한에 대한 전쟁을 주장했고, 부시는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온건한 입장이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행동을 준비하고, 평양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해 나갈 무렵인 2002년 말과 2003년 초, 미국의 불확실하고 임시방편적인 북한 정책은 럼스펠드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는 말로 요약됐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외교관들의 손에 맡겨 놓고 있었다

프리처드의 글에 의하면 북한에 대한 부시의 입장은 sonnet님이 불카누스라 묘사한 그룹과 동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시도할 경우, 그러니까 이 자가 쓰러질 경우 국민들이 져야 하는 재정 부담이 너무 클 거라는 거요.

이 문장을 보면 부시는 '너무 서두르는 입장'에 속해 있고, 서두르지 말자는 입장을 표하는 사람들에 대해 참조하는 정도 수준의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게다가 sonnet님은 드러난 정보를 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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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측은 공동 성명에 군사 옵션을 넣지 않은 것이 외교적 승리라고 선전했으나 미국 측은 이런 반응에 의아해 했다. 미국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당시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군사 옵션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노무현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미국은 대북 군사 공격을 하려 한다’고 심각하게 믿고 있었다. 청와대 직원들이 노무현을 그렇게 세뇌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12]

물론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북한 공격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한 것은 분명하다. 원한다면 그 의도까지는 순수했다고 평가[13]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건 사실 워싱턴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설레발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설레발 때문에 한미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는 부시나 네오콘, 공화당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당 측에서도 동맹의 미래를 우려하는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폭에 대해서는 김영삼이나 김대중도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미국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서 미국을 안심시키며 일했다. 적어도 해외에 가서 미국은 중국과 한국의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한다든가 하는 식은 아니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무현은 윤영관을 내치고 이종석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과거의 한국 정부들과는 전혀 다른 한미관계를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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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노심초사를 설레발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이 문장을 보면,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책이 김정일을 타도하는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말이 기록되고 있음을 알고 북한의 정권교체가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선언한 것을 취소했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부시의 입장과 실제 입장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과의 전쟁을 원한다는 말이 언론에 공개되면 파장은 엄청나다. 부시의 속 마음은 전쟁을 원하고는 있지만 공개적으로 거론하게 되었을 때의 파장 때문에 에둘러 말했음을 알 수 있고,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야말로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부시의 속마음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리고 sonnet님은 이렇게 말했지만,

또한 한국측이 집요하게 요구할 경우 미국 측은 내키지 않지만 이 점에 대해 양보하기도 하였다. 이라크 침공의 경우처럼 미국이 단단히 결심한 경우엔 그런 것은 불가능했다. 이것은 앞서 내가 지적했던 것처럼 미국의 강경정책이라는 것이 대단한 실체가 없는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미국은 몇 차례에 걸쳐 북한과의 전쟁을 단단히 결심한 바 있다. 하지만 전략 시뮬레이션 결과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재래식 전투를 치르더라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포기했다. 이걸 뭐 북한 측 주장이라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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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은 균형자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4대 강국 속에 끼인 작은 나라로 한·미 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고,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고, 4대 강대국과 협력·보완해 나가는 세 가지 틀 속에서 외교 관계를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4]


김대중이 제시하는,
1순위: 한미동맹
2순위: 한미일 공조
3순위: 미일중러와의 협력

이란 전략적 틀의 서열은 명쾌한 데가 있다. 이런 시각은 북방정책으로 중러에 접근했던 노태우 이래 김대중까지 정권에 관계없이 다들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이 서열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어설프게 등장해 미국을 열받게 만들었던 2002년의 '중재자'니 2005년의 '동북아 균형자'등은 모두 김대중이 운명이라고까지 말하는 전략적 틀의 서열을 무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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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남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오직 '김정일 나쁜놈'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민주투사에 대한 존중도 없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는 부시 행정부를 보면서, 한미관계에 대한 재검토를 고려한 것이 잘못된 것일까,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철석같이 미국에 들러붙는 게 잘못된 것일까. 이 문제는 가치 판단의 문제이니 sonnet님이 옳다 그르다 논평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멀쩡히 잘 유지되던 한미관계를 노무현 정부가 아마추어리즘으로 들쑤셔놓은 것처럼 묘사한 sonnet님의 현실인식은 너무나 피상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