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데 필요해서 난생 첨으로 좀 쓸만한 중고 컴퓨터(내 상황에서)에 엘지 27인치 TV 겸용 모니터를 샀다. 모니터는 옥션에 있는 엘지 유통점에서 샀는데 배송하면서 문제가 있었는지 켰더니 액정에 세로로 줄 무늬만 가득하고 화면이 나오질 않는다.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끙끙대보다가 이건 불량품이다 싶어 구매처에 전화했더니 여튼 엘지 서비스센터에 기사 불러서 불량 확인 후 다른 걸로 배송해 준단다. 동네 대리점에서 샀으면 이런 낭패는 없었을 것을 한 이만원 아껴 보려다 젠장 이삼일은 더 기다려야 하나.


엘지 서비스 센터에 전화했더니 친절하게도 일찍 와서 살펴보더니 센터에 새 제품이 입고되는 대로 바꿔주겠단다. 목요일이었으니 월요일 쯤에다 입고될 것 같다고. 그런데 토요일 오전 일찍 전화가 와서 바꿔주길래 서비스는 신경 써서 해주는가 싶어 기분이 좋았다. 고급 제품은 아니지만(내 입장에서는 비싼 것임 :)) 여튼 나름 만족스러웠다. 흐강님 말대로 앞으로 SSD 하드만 장착하면 될 것 같다.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서두. 따라서 SSD는 나중 일.


그런데 옛말에 화불단행이라더니 컴퓨터 사운드카드 출력 단자에 선을 꽂고 모니터 뒷편 스피커 단자에 연결했는데 죽어도 소리가 나질 않는다. 혹시나 싶어서 설명서를 살펴보았다. 단자가 둘인데 욱에꺼 말고 아래께 스피커 단자다. 혹시 사운드 카드 이상인가 싶어 쓰던 스피커 연결하니 잘 된다. 사운드 카드 이상은 아니고. 연결선 이상인가 싶어 새로 하나 샀다. 그런데 그것도 되질 않는다. 이런 젠장. 그렇게 이삼일이 흘렀다.


혹시나 싶어 센터에 전화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는데 스피커 단자는 욱에꺼란다. 음. 그렇군. 나는 분명히 욱에꺼에도 꽂아봤는데 왜 소리가 나질 않았을까? 그건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아래쪽이 녹색이길래 보통 스피커 입출력 단자가 녹색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사전 지식 때문에 그쪽에 계속 꽂았는데.


그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어쩌면 설명서 그림도 내가 잘못 본 것일지 모르겠다. 선지식이 현실을 왜곡하는 풍경. 뭐 이런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이건 나와 사물 사이의 관계이니 뭐 슬쩍 웃으며 지나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선지식이 실제를 왜곡한다면 그건 생각보다 문제가 크다. 물론 넉넉한 사람일수록 그 왜곡을 둘러싼 문제를 부드럽게 풀어내겠지만. 그 선입견을 깨달았을 때 사과하면 될 일인데 사람에게 사과라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보통 스스로 생각들 하는 것보다. 별 것 아닌 착오나 실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월매나 좋을까? 말이 좀 꼬인다 싶은데 이런 경우엔 자신의 실수에 관대한 이가 타인의 실수에도 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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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일 어쩌면 딱 천 만원까지는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좀 무리를 했더니 내일 하루 일하면 딱 천 만원하고 4만원을 넘어선다. 다음 달 일도 어느 정도 잡혀 있고. 지금 봐서 문제는 버는 게 아니라 잘 쓰는 일인 것 같다. 소유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여튼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무언가 손에 쥐고 있으면 어디에, 누구한테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하나, 월매나 곳간에 남겨둬야 하나 그런 고민이 찾아든다. 어떻게 좀 많이 벌었으니 물질 부족에 허덕이던 처지에서 잠시나마 나름 안도감도 있다. 


나는 뛰어난 번역자가 아니다. 번역 생태계에서 지천으로 흐드러진 방초도 아니지만 외딴 산간에 고고히 자리잡은 희귀한 약초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그런 중급 번역자. 그래도 저건 보수가 얼마 정도가 타당한 것인지, 이건 내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더 있는데 그냥 넘겨 버렸어 그런 건 스스로 파악하는 수준은 된다. 


내가 요즈음 해서 보낸 물건들은 실상 예전에 2-3년 번역으로 먹고 살 때 보였던 품질에 비하면 조금 낮다. 그런데 단가는 당시 국내 업체의 단가에 비해 곱절이나 높다. 이제 거래처 업무 방식을 파악했으니 품질을 높이는데 신경을 쓰는 게 대서양/태평양 건너 사람들에게 나름의 도리가 되겠다. 그쪽에서도 내가 나름 신경 써서 하는 편이라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편.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생각해 보자면 이상한 일이다. 품질이 상당히 나았던 시절엔 많이 벌질 못했다. 그래 제값을 주는 생태계를 찾아 나섰다. 시행착오를 거쳐 살짝 뿌리를 내렸다. 단지 다른 생태계에 들어선 것으로 소득은 2-3배 뛰었다. 좀 비약하자면 양반집 양자로나 들어간 셈이 되겠다. 내가 지금 겪는 vertigo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 서구에 정착한 한국인들이 겪는 감각 이상과 어느 정도 맥이 닿는다... ... .


비유하자면 나는 내 상식이 통해야 한다고 한국에서 당위 명제를 외쳤고 그게 잘 통하질 않으니 내 상식이 존재 명제인 생태계를 찾아 나선 것이다. 물론 한국에 내 상식이 존재 명제인 생태계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내가 찾질 못한 것이거나 내 실력이 그 생태게에 들어설 수준이 아니거나.


이건 서구가 동양 혹은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혈연이나 지연에 구속되는 문제 혹은 조직과 개인의 대립 문제에서 나는 한국 평균에 비해 좀 많이 벗어나 있으니까. 


어쩌면 내 천만원에서 많은 부분은 무임승차이다. 그저 내가 아는 상식이 통하는 생태계에 들어선 것일 뿐. 그쪽은 자원과 금전이 풍부한 곳인데 그렇게 된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어쩌면 나는 피비린내 나는 서구 제국 시절 유산의 수혜자일지도 모르겠다. - 이걸 다르게 빗대면 돈을 주고 빽을 써서라도, 그 일을 맡을 실력이 되든 말든,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 정규직 생산직으로 들어가는 것, 잘 나가던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인기가 사라졌을 때 그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보이는 모습과도 얼마간은 풍경이 겹친다. 항산에 항심, 무항산 무항심은 누구에게나 고민거리이다. 공무원 연금이며 기타 등등 수많은 음서제가 달리 생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