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와 진화 윤리학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데이비드 흄(David Hume)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제3(A Treatise of Human Nature, Book : Of Morals)』에서 인간의 도덕성이 선천적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20세기에 상당히 유행했던 백지론적 경향과는 대조를 이룬다. 상당히 순수한 형태의 백지론을 주창했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죄책감조차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강화(reinforcement)의 결과라고 이야기했다.

 

진화 윤리학계 내부에도 도덕성 중 어느 정도가 선천적인지에 대해 논쟁이 여전하지만 인간의 도덕적 감정과 도덕적 직관의 상당 부분이 선천적이라는 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진화 윤리학자들이 스미스와 흄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다.

 

 

 

 

 

보이지 않는 손과 집단 선택

 

스미스에 따르면 공익(common good)은 개인의 사익 추구 때문에 가능해진다. 각 생산자는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기 위해 더 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싸고 품질 좋은 상품이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상품들은 점점 더 싸고 품질이 좋아진다.

 

스미스의 이런 설명 방식은 집단 선택론보다 개체 선택론을 닮았다. 서열과 도덕성의 사례를 살펴 보자.

 

집단 선택론자들은 서열이 존재하는 이유가 집단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서로 모르던 닭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면 처음에는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열이 정해지며 그 후에는 상당히 평화롭게 산다. 이런 현상을 보면 서열이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인다.

 

개체 선택론자는 서열이 존재하는 이유를 개체의 이기심에서 찾는다. 개체의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힘 센 자에게 시도 때도 없이 도전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반면 자신에게 약한 자를 착취하지 않는 것도 좋은 전략이 아니다. 자신보다 힘 센 자에게는 어느 정도 양보하고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어느 정도 착취하는 것이 최적 전략에 가깝다. 그래서 개체는 그런 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 결과 서열이라는 현상이 생기며 개체들은 어느 정도 평화롭게 살게 된다.

 

다윈은 도덕성의 진화를 집단 선택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더 도덕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더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도덕성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반면 개체 선택론자들은 도덕성을 개인의 최적화된 전략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스미스와 상당히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상품 시장에서 잘 팔리기 위해서는 더 싸고 품질이 좋은 것이 유리하다. 물론 속임수나 강제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서로 힘과 지능이 비슷한 인간끼리 그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정 시장과 짝짓기 시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이 좋을수록 우정 시장과 짝짓기 시장에서 더 잘 팔린다. 즉 더 좋은 친구들과 더 좋은 짝짓기 상대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어느 정도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좀 더 양심적으로 살아갈수록 사회는 더 잘 굴러가는데 이것은 도덕성 진화의 이유가 아니라 효과일 뿐이다.

 

스미스의 설명 방식은 기능론적 사회학과 대조를 이룬다. 기능론적 사회학은 공익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거의 신학적 설명에 의존한다. 그들은 그냥 무언가가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되도록 사회 과정을 이끈다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굴러가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기능론적 사회학은 집단 선택론을 닮았다. 그나마 집단 선택론은 나은 점이 있다. 집단 선택론에서는 집단 간 경쟁이라는 메커니즘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집단 간 경쟁에 의한 적응이라는 생각이 거의 가망성이 없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공익 문제를 해명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손의 첫 번째 얼굴이다.

 

 

 

 

 

보이지 않는 손과 수정 자본주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거의)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손의 두 번째 얼굴이다. 나는 첫 번째 얼굴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만 두 번째 얼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도덕성의 진화를 개체 선택론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어느 정도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간이 어느 정도 도덕적으로 살도록 진화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결국 인간 사회가 어느 정도 매끄럽게 굴러가도록 생겨 먹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의 진화한 도덕성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어느 정도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한 것이지 우리의 도덕적 이상에 부합할 정도로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론적으로 정신병질(psychopathy) 전략이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남들이 대부분 어느 정도 착하게 산다면 아주 싸가지 없는 전략을 취하는 소수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생산자는 더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속임수나 강제를 사용해서 성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사람들도 사기와 강제를 사용하는 것 정도는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겪은 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사기와 강제와 같은 특수한 경우만 국가가 법으로 막아야 하며 다른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공황 이후에는 국가의 개입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 중 다수는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손과 공산주의

 

나는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의 핵심 중 하나를 없애자는 입장이며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렇다고 내가 보이지 않는 손 즉 개인의 사익 추구를 몽땅 없애자는 입장은 아니다. 나는 임금 제도에 찬성한다. 임금 제도란 노동자가 임금이라는 사익을 위해 일하는 제도다. 이것은 노동과 소비 사이에 상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노동자가 하기 싫은 일도 하도록 만든다.

 

반면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서는 그 상관 관계가 사라진다. 따라서 재미 없고 고되기만 한 일을 노동자가 해야 할 동기가 어느 정도 사라진다. 나는 돈이라는 동기가 사라진 사회에서도 노동자가 어느 정도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윤 논리이며 다른 하나는 임금 제도다. 나는 이 두 가지 보이지 않는 손 중 하나를 없애고 하나는 남겨 두자는 입장이다. 자유방임주의자들은 사기나 강제와 같은 특수한 것들을 제외하면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자는 입장이고, 수정 자본주의자들은 공황 등을 막기 위해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자유방임주의자와 수정 자본주의자는 이윤 논리와 임금 제도를 모두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입장이 같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을 한편으로는 긍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한다.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손이 공익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문제와 보이지 않는 손에 거의 모든 것을 또는 많은 것을 맡기는 것이 공익을 위한 최선인가?라는 문제가 서로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공익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더 나은 방식 즉 공산주의 체제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윤 논리가 사라지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상세히 다룰 생각이다.

 

 

 

 

 

2010-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