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이야기: 유전자를 몰랐을

 

여기서 조화란 번식을 위해 신체의 각 부품들이 또는 유전체(genome)의 각 유전자들이 잘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다윈은 유전자를 몰랐기 때문에 신체의 각 부품들이 잘 협력하는 측면만 생각했다.

 

다윈에 따르면 직계 자손을 더 많이 남기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는 형질이 결국 개체군 내에서 퍼지게 된다. 따라서 신체의 각 부품들이 직계 자손을 남기는 일을 잘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도록 자연 선택이 일어나게 된다. 그 결과 신체는 조화로운 상태가 된다. 만약 그 조화를 깨는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그 돌연변이는 개체군 내에서 축출될 것이다.

 

 

 

 

 

해밀턴의 이야기: 유전체내 갈등을 고려하지 않았을

 

해밀턴(William Hamilton)이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에 대해 몰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해밀턴이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 개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유전체내 갈등이 없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한편으로,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이론 또는 친족 선택 이론은 다윈의 모델에 비해 일보전진이었다. 개체는 직계 자손만 최대한 많이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한다기보다는 직계 자손과 방계 자손의 합을 최대한 많이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 직계 자손을 남기기 위한 노력과 방계 자손을 남기기 위한 노력의 비중은 해밀턴의 규칙(Hamiltons rule)에 따라 정해진다.

 

다른 한편으로, 해밀턴의 이론은 유전체내 갈등을 무시한다. 따라서 자연 선택의 방향성에 대한 근사치일 뿐이다. 물론 다윈의 모델보다는 더 정밀한 근사치다.

 

 

 

 

 

유전체내 갈등

 

개체군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에서는 보통 공평한 감수분열(fair meiosis)이 가정된다. 공평한 감수분열이란 감수분열로 생식체(gamete)가 만들어질 때 한 유전자좌(locus)에 있는 한 쌍의 유전자 각각이 50%의 확률로 생식체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Y-염색체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각 유전자는 보통 생식체 속에 들어갈 기회를 공평하게 얻는다.

 

분리 왜곡(segregation distortion)은 공평한 감수분열을 왜곡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유전자가 분리 왜곡 효과를 발휘해서 자신이 생식체에 포함될 확률을 50%보다 높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유전자에게는 이로울 것이다. 그 유전자가 개체의 포괄 적합도에 폐를 끼친다 하더라도 만약 분리 왜곡으로 얻는 이득이 매우 크다면 그 유전자는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퍼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분리 왜곡을 통해 이득을 얻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보통 생물이 아들을 낳을 확률과 딸을 낳을 확률은 반반 정도다. 그 이유는 포괄 적합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수컷이 많은 개체군에서는 딸을 낳는 것이 유리하고 암컷이 많은 개체군에서는 아들을 낳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암컷과 수컷의 비율이 50:50 정도가 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포괄 적합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럴 뿐이다.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유전자와 인간의 Y-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미토콘드리아는 난자에만 들어가며 Y-염색체는 정자에만 들어간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딸만 만들어내는 것이 유리하며 Y-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아들만 만들어내는 것이 유리하다.

 

 

 

 

 

유전체내 갈등은 어떻게 극복되는가?

 

유전체내 갈등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또한 실제 사례들이 실증적으로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이제 포괄 적합도 개념은 근사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좀 더 정밀한 설명을 위해서는 유전체내 갈등까지 고려해야 된다는 것은 진화 생물학계의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괄 적합도 개념은 여전히 대단히 쓸모가 있다. 그 이유는 유전체내 갈등이 대부분의 경우 미미한 수준의 영향밖에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수분열은 놀라울 정도로 공평하며 대다수 생물은 아들과 딸을 반반씩 낳는다. 아들과 딸의 비율이 50:50에서 많이 벗어나는 경우도 대체로 미토콘드리아나 Y-염색체의 농간 때문이라기보다는 포괄 적합도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 듯하다.

 

왜 유전체내 갈등이 잘 억제되는 것일까? 왜 유전체에 속하는 각 유전자들은 고도로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일까?

 

한 가지 설명에 따르면 이기적인 소수의 배신을 다수가 억압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경우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마을에 매우 싸가지 없는 남자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 남자는 폭행, 절도, 사기, 강간 등을 일삼는다. 그래서 그 남자를 제외한 모든 마을 사람들이 손해를 본다.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회의를 한 끝에 그 남자를 추방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결국 그 남자는 추방된다. 마을 사람들이 그 남자를 쉽게 추방할 수 있는 이유는 한 남자가 수십 명과 대결해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을 이야기는 분리 왜곡을 통해 이득을 얻으면서 개체의 포괄 적합도에 폐를 끼치는 한 유전자와 관련된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분리 왜곡을 통해 이득을 보는 유전자는 하나지만 그 분리 왜곡으로 다른 모든 유전자들이 손해를 본다. 다수 유전자들의 힘이 한 유전자의 힘보다 세기 때문에 결국 그 유전자(또는 그 유전자의 분리 왜곡 효과)는 제압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설명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겠다.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통해 사전에 모의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들이 모여서 모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싸움의 양상도 다른 것 같다. 만약 그 싸가지 없는 남자가 마을 사람들의 추방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육탄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슈퍼맨이 아닌 이상 한꺼번에 달려드는 수십 명과 한판 붙어서 이길 수는 없다. 분리 왜곡의 경우에는 이런 식의 싸움이 아니다.

 

미토콘드리아나 Y-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숫자에 비해 핵에 있는 상염색체(autosome)에 있는 유전자의 숫자가 훨씬 크다. 따라서 얼핏 보면 상염색체에 있는 유전자들의 뜻대로 아들과 딸의 비율이 반반이 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과연 이 갈등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육탄전처럼 다수가 유리한 싸움인가?

 

세상에는 다수가 전혀 유리할 것이 없는 싸움도 있을 수 있다. 열 명이 모여서 자연수 하나씩 제시하는 게임을 한다고 하자. 이때 그렇게 나온 모든 자연수를 합해서 짝수가 나오는지 홀수가 나오는지를 따진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똘똘 뭉쳐서 짝수를 만들려고 하며 나머지 한 명은 홀수를 만들려고 한다고 하자. 아홉 명이 사전 모의를 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래도 절대 다수인 아홉 명에게 유리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육탄전은 절대 다수가 유리한 싸움이지만 위에서 소개한 홀짝 게임은 절대 다수라고 해도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는 싸움이다. 유전체내 갈등이 홀짝 게임의 모델보다는 육탄전 모델에 가깝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글을 나는 아직 못 본 것 같다.

 

 

 

 

 

2010-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