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미 중에 암컷 사마귀가 수컷을 잡아 먹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에 대한 그럴 듯한 설명을 본 적이 있다. TV의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거기에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암컷이 수컷의 머리를 뜯어 먹으면 수컷은 더 강렬하게 교미를 하며 정액을 많이 쏟아낸다고 한다. 그리고 암컷이 수컷을 잡아 먹는 이유는 정자를 더 많이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사마귀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진화 생물학에 대한 나의 지식에 비추어 볼 때 위의 설명은 거의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암컷이 수컷을 잡아 먹는 이유는 더 많은 정자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인 듯하다. 수컷이 자식을 키우는 일에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암컷의 입장에서는 교미 중에 수컷이 죽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사마귀의 경우 암컷이 수컷에 비해 더 크기 때문에 잡아 먹을 수 있을 만큼 수컷을 압도할 수 있다.

 

수컷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교미도 하고 잡아 먹히지도 않으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암컷이 교미 중에 수컷을 잡아 먹으려고 한다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교미를 하는 수밖에 없다. 아예 교미를 하지 않는 것은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더 큰 재앙이기 때문이다. 수컷은 교미 중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상당히 조심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잡아 먹힌다. 이미 머리를 많이 뜯어 먹혀서 살아날 가망이 없을 때 수컷의 입장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열심히 교미를 해서 자신의 정자를 최대한 암컷에게 전달하는 것이 죽어가고 있는 수컷에게는 최선일 것이다.

 

 

 

수컷이 자식을 돌보지 않으며 암컷보다 작다는 조건 때문에 암컷이 수컷을 교미 중에 잡아 먹는 전략이 유효해졌으며 실제로 사마귀 암컷은 그런 식으로 진화했다. 이 때 수컷-잡아먹기 메커니즘의 진화적 기능은 영양분을 얻는 것일 것이다. 암컷이 이런 식으로 진화하자 수컷은 이미 늦은 상황에서는 남아 있는 몸이라도 최대한 열심히 교미에 응하도록 진화한 것 같다. 이 때 이미-늦었다면-교미나-허벌나게-하자 메커니즘의 기능은 정자를 최대한 많이 암컷에게 전달하는 것인 것 같다.

 

교미 시에 정자를 최대한 많이 전달하는 것은 죽어가는 수컷의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다. 어차피 죽는데 몸 속에 정자를 남겨 두어서 무엇에 쓰겠는가? 반면 암컷은 많은 정자로 그리 이득을 볼 것이 없어 보인다. 자신에게 잡아 먹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수컷이 그리 좋은 유전자(good gene, 번식에 이로운 유전자)를 넘겨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자신에게 잡아 먹히지 않은 수컷의 정자는 많이 얻고 자신에게 잡아 먹힌 수컷의 정자는 조금 얻는 것이 암컷에게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수컷의 입장에서는 반대다. 잡아 먹히지 않은 수컷의 경우에는 다른 암컷과 교미하기 위해 정자를 남겨두는 것이 유리하지만 잡아 먹히는 수컷의 경우에는 남김 없이 주는 것이 유리하다.

 

 

 

요컨대, 잡아 먹힐 때 정자를 많이 넘기는 것은 수컷을 위한 적응이지 암컷을 위한 적응은 아닌 것 같다. 암컷의 입장에서 볼 때, 암컷이 수컷을 잡아 먹을 때 정자를 많이 받게 되는 것은 효과지 기능이 아니다. 따라서 암컷이 정자를 많이 얻기 위해 수컷을 잡아 먹는다는 설명은 효과와 기능을 혼동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사마귀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제시한 설명이 내 기억 속에 있는 TV 다큐멘터리의 설명보다는 훨씬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사마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문헌을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제시한 설명이 진화 생물학자들이 널리 받아들이는 설명일 것 같다.

 

 

 

201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