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선거도 끝나고 모처럼만에 아내와 함께 시골에 놀러 갔다.

 

이번 선거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글도 쓰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추모하는 글도 썼다. 이번 지방 선거를 통해 어떻게든 민주주의가 회복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들어 그 동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가 억압당하고 민주가 후퇴하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모든 국민들이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일보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역주를 한 것이다. 그것도 아무 일 없을 것 같이 가볍게 행사한 국민투표에 의해서 대통령을 잘못 뽑고, 공당이라고 할 수도 없는 파렴치한 한 정당을 밀어주게 되어 더욱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저들은 지난 2년 반 동안의 정치행위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괴상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버려야 할 모든 사악한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막강한 권력과 힘을 위임했더니 저들은 받들고 모셔야 할 국민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면서 제 배 불리기기에 급급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발 쭉 펴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번에 지방선거 혁명으로 저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줄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적들은 음흉하고 포악하다. 쉽게 물러날 자들이 아니다. 야당은 국민이 밀어준 힘을 이용하여 저들의 야욕을 끝까지 분쇄해야만 한다. 명심 또 명심해야 할 일이다.

 

토요일 늦게 집에 들어가서 딸아이와 함께 케이블 TV도 보았다.

아이들의 사생활이란 프론데, story on에서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다중재능에 관한 이야기인데, IQ라고 하는 단순한 지능 테스트로 사람들의 능력에 등급을 메기는 무식한 제도는 하루 빨리 없애야 할 것 같다. 다들 꿈나라로 가고 늦게까지 혼자 이런 저런 영화를 보았다.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영화도 조금 보았는데,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1시 30 집을 나서기 전까지도 TV를 보았는데 그린 마일이라는 영화도 보았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영화였다. 두 영화 모두 중간에 조금씩밖에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꼭 한번 제대로 보아야겠다.

 

드디어 일요일 아침. 아내도 일찍 일어났다.

오후에 아내와 함께 시골에 있는 친구 부부네 별장에 놀러 가기로 했다. 수원에 사시는 분들인데 작년에 수원과 발안 사이의 한 농촌 지역에 집을 구입했다. 삭막한 도회지 삶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아저씨가 자신의 공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골에 농가를 구입한 것이다. 약간의 텃밭도 있고 해서 올 봄에는 갖가지 야채를 심으셨다. 지난번에는 상치 등 갓 자란 야채를 얻어와 쌈싸먹고 비벼먹고 했다.

 

그 별장엘 이번 일요일에 놀러 가기로 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데, 점심 때 그곳에 가서 삼겹살 파티를 할 것을 고려해 아내는 양을 조절하는 것 같았다. 나는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그런데 일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아내 친구 부부가 며칠 전에 부부싸움을 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아내가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사업을 하시는 아저씨가 10시경 외출을 하셨단다. 미리 우리 부부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는 얘기도 하시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고 얘기도 할 수 없고. 아내에게 둘이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티비를 보거나 명상이나 하면서 느긋하게 보내는 것도 좋아하니깐 말이다. 그 시골 별장엘 가고 싶어하는 다른 아주머니 포함해서 셋이서 가기로 이야기가 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막판에 그마저 틀어졌다. 아내 친구와 우리 부부 셋이서 가면 어떨까 하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자들 틈에 끼어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아서 정중하게 사양을 했다. 그러자 결국 둘이서 다녀올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둘이 통화를 하더니 애석하지만 다음 기회에 가자고 합의를 하는 것 같았다. 애써 가고 싶어했던 아내가 측은해 보였다. 그래서 그렇다면 셋이서라고 함께 가자고 했다. 아내가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얘기하니 일이 일찍 끝나게 될 것 같다며 나중에 합류하시겠다고 했다. 이렇게 어렵게 해서 어렵게 시골 별장에 놀러 가게 되었다 

 

<부르릉, 시골로 달려가자!>

 

 

동네 슈퍼에서 삼겹살 두어근하고 막걸리와 소주를 사서 출발했다.

수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금방 도착했다. 방을 꾸며 놓고 외관도 수리를 해서 농가지만 도시 집처럼 말짱해 보였다. 저쪽 한 켠엔 야채들이 소복소복 자라고 있었다. 휙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시골에서 오래 자란 나에겐 모든 것이 금방 익숙해진다.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 전원생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내와 친구, 두 분이 분주하게 상차림을 한다. 나는 그사이 또 디카질을 한다.

 

 

 

< TV가 없어, 조용히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어 좋았다! >

 

 

2 40분경에 상을 차려놓고 셋이서 먼저 술잔을 돌렸다.

곧이어 아저씨도 합류하고 화기애매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아내 친구인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분위기는 아직도 냉랭하였다. 우리 부부가 중간에서 애를 조금 썼지만 쉽게 화해가 되지는 않았다. 삼겹살과 막걸리로 파티를 하자니 어느새 배가 불러왔다. 배가 불러 더는 들어갈 데가 없고 해는 조금씩 기울어가 한낮의 더위가 수그러들 무렵, 텃밭으로 나갔다. 풀도 뽑고 물도 주었다. 풀을 뽑으며 잠깐 정치 이야기도 나눴다. 아저씨는 고향이 경상도로 한나라당 쪽이다. 나는 그와 정반대이니 정치 문제로는 둘이 절대 어울릴 수가 없다. 이야기 중에 광우병과 급식 문제가 잠깐 언급되었는데, 역시 나와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 나는 그냥 묵묵히 잠시 얘기만 들었다. 곧 화제는 바뀌고 풀 뽑으며 농사 이야기로 이어나갔다.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근데 많이 말라 죽었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 심은 순이 비닐이 닿아 녹았던 것이다. 한낮의 폭염에 뜨거워진 비닐이 모종으로 심은 고구만 순이 녹아서 죽어갔던 것이다. 구멍을 넓게 뚫어주거나 흙으로 세워주었다. 나중에는 물도 주었다. 꽤 오랫동안 풀도 뽑고, 또 고구마 밭 정리를 했다. 가을에 고구마 한 박스는 확보하셨다는 말로 애썼다는 얘기를 대신하신다. 올 가을 고구마 수확 때는 힘쓰러 다가 한번 더 놀러가야할 듯 싶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어 농사를 그만 둔 지 몇 해던가, 십오륙 년 만에 허리굽혀 농삿일을 해 보았다. 땀 한줄기가 등뒤로 흘러내리기도 하였으니 정말 오랜만에 농사꾼으로 돌아가 땅을 밟아본 셈이었다.

 

 

 

<텃 밭에는 야채가 많이 심겨져 있다>

 

 

<경상도에서 나는 몸에 좋다는 상치>

 

 

 

<야채를 골고루 많이도 심었다!>

 

 

 

 

<아랫집에서 넘어온 감나무 줄기>

 

 

<큰 도토리 나무를 배경으로 셀카 한컷!>

 

 

동갑인 아저씨는 요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매일 텃밭에 들린다고 하셨다.

하룻밤 새 야채들이 불쑥불쑥 자라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떤 정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셨다. 농부의 마음이겠지. 어쩌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연과 호흡하는 삶으로 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땅을 벗어나서 살았고, 땀을 흘리지도 않았던 것이리라. 요즘 점차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한다고 하는데, 머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땀을 흘리며 즐거운 삶을 살게 되리라.

 

저녁을 먹고,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 동안의 시골여행이었지만 자연의 냄새를 한껏 맡고 돌아왔다. 언제든 돌아가야 할 고향의 냄새인 것이다. 월든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호숫가에 작은 오두막 지어놓고, 스콧 니어링처럼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다가 영원한 세계로 금의환향하고 싶다. 원래 낳던 자리로 돌아가야겠지.

 

우리는 감정에 민감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세계는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감정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감정을 다스리려면 - 화를 내지 않으려면 -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야만 한다. 우리는 더 아름다운 세계,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 서로 화합할 수 있는 만남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세계를 일러 진보라고 한다. 우주도 자연도 공생과 상생을 원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후퇴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삶, 그것을 위해 우리 의식도 진일보해야만 한다. 자연과 우주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한다.

 

진정한 교육을 위해 우리는 구태를 개혁해야만 한다.

그것은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길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다양한 재능을 함께 갖고 태어난다. 한쪽이 뒤떨어진다고 해도 다른 재능은 뛰어나거나 더 발전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한가지 재능으로 인간을 재단할 수 없다. 그가 가진 재능을 최대할 발전시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그의 인간성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 바로 적성을 발견하고 소질을 계발하는 것이다. 또 그에 합당한 직업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 부모된 자들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어떻게 교육을 개혁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자녀들 교육을 위해서도 깊이 깊이 반성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고 모두가 힘을 합해 노력해야만 한다. 이것은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교육 방법이기도 하다. 모든 농작물과 야채가 다 고유하고 그만의 특성이 있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자연은 언제나 풍성하게 베풀어 준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삶을, 인간답게 사는 삶을 찾아 나서자!

 

 

 

 

2010. 6. 7.     22:45

 

 

 

 

자연을 호흡하고 돌아온

고서 김선욱

 <참>사랑

 

 

 

[출처] :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39&mode=read&premode=list&page=1&ftype=&fval=&backdepth=&seq=425&num=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