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근처 식당에서 밥을 기다리다 조선일보에 실린 이인식의 <멋진 과학>을 읽어 보았습니다.
제목은 <누가 진실을 거부하는가> 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04/2010060401783.html
 

이 글을 읽고 씁쓸했는데 그것은 이 <멋진 과학>은 최근 NewScientist에 실린 아래 글을 요약한 아래 글
 <인정을 하지 않는 삶 : 왜 알 만한 사람이 진실을 거부할까 ? >을 그대로 요약-정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http://www.newscientist.com/article/mg20627606.100-living-in-denial-why-sensible-people-reject-the-truth.html

  

불행히도(?) 위 NewScientist 글은 제가 천안함에 꽂혀있든 관계로 비교적 꼼꼼하게 읽어 본 글이였거든요.
NewScientist는 년 구독료가 한 30만원 정도합니다. 아마 특별히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년 30만원을
잡지 하나 보는데 투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주로 언론사 기자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는 잡지입니다. 
그 중에 보면 좀 엉터리같은 해석도 간혹보입니다. 문제는 이 이인식 선생의 글에 보면 아래와 같은 문단이 나옵니다.

  

<부인주의 연구 권위자인 영국의 마틴 맥키에 따르면 부인주의자는 여섯 가지 수법을 구사한다.
2009년 '유럽공중보건저널(European Journal of Public Health)' 1월호에 실린 논문에 수법 6개가 소개되어 있다.>

  

이 “논문”은 http://eurpub.oxfordjournals.org/content/vol19/issue1/index.dtl 에 있는 것으로 논문이 아니고
 Viewpoint라는 일종의 초청 글 같은 것 입니다.  http://eurpub.oxfordjournals.org/cgi/content/full/19/1/2
  
그 객관성이 일정정도 담보되는 논문이라함은  peer review를 거치는 학술적인 내용의 글을 말합니다. 
<관점>과 <논문>은 다르죠. 그러니까 학술적 검증거친 내용이 아니라  그냥 말그대로 저자의 관점이죠. 
제 말은 맥기의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험과 검증이 필연시 되는
논문과는 다른 격의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볼 때 이인식 선생은 이 논문을 직접보지 않고 그냥 NewScientist에 있는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주장을 간접참조(indirect referencing) 라고 하는데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부정행위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의 참고자료, 또는 출처인 
<NewScientist 2010년 5월 15일> 를 정확히 밝혀야 정상적이죠. 그런데 이 글에 이런 말은 전혀없어요. 오퍼상이
자신의 독점적 이익을 지속하기 위하여 수업처를 남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좀 심한 말인지...
    

인문학에서의 지식 오퍼상이 지금은 좀 수그러들었지만, 한참 깃발을 날릴 때가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국외이론을 수입해서 번역해서, 그 위에 자신의 지식 살짝 토핑(topping) 쳐서 많이 팔아먹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많이 팔려면 토핑을 잘 쳐야합니다. 잘못하다간 그 밑에 원판이 쉽게 뽀록나기 때문에.
과학계에는 이런 일은 드물죠. 워낙 국외 유학자도 많고 학술지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 국외 논문지를 살짝 업어다
국내에서 팔아먹는 것은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는 구 러시아권에서 발간된 공학논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논문냈다가 개망신 당한 국내연구자가 있었죠. 그 구석에 있는 러시아 논문도 모두  뽀록이 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국내 교양과학계에서는 이런 일이 아직 느슨하게 제어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 현장 연구자들은
제 앞가름한다고 교양과학  이런 것 관심도 없죠. 그리고 연구실적으로도 쳐주지 않으니까.
국내 과학평론의 세상은 이렇게 척박합니다. 정치평론가의 1/10 정도의 제대로 된 과학 평론가만 있어도 좋겠습니다.

  

그 사악한, 조선일보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요, 이인식의 글에 보면 천안함 이야기는 없는데
위 글의 삽화를 보면 천안함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하는, 저 같은 사람을 한심한 홀로코스트 반대자,
지구온난화 반대자. 창조론자 이런 류로 묶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하.. 좀 어이가 없습니다. 
천안함에 대하여 토를 달면 창조론자나 AIDS, 9/11,  백신의효능 등을 부인하는 생또라이와 같아진다는 말인데..흠..
  
  천안함의 그 과정과 자료, 뭐 하나 제대로 된 과학적 과정은 거친 것이 없죠. 마술이죠. 마술,,,
마술의 특징은 절대 마술사에게 가서 소매 안을 보자고 하거나, 무대 위로 올라가서 마술가 가방을 뒤지면 안되죠.
예의없는 행동이죠. 마술은 그렇게해서 성립이 됩니다. 즉 그냥 무대 밑에서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마술의 protocol인데 천안함이 바로 그 꼴입니다. 저는 마술과 천안함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저나 이인식 선생, 조선일보에서 좀 나와 주시면  안될까요, 젊은 분들 보고 배울까봐 걱정이 됩니다.
열렬한 DJ 지지자이셨든 분이 그렇게 오랫동안 조선일보에 계시니 참 그렇습니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겠죠